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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불국사, 알록달록 대릉원… 경주 단풍은 이번 주말 피크

중앙일보

입력

경주 대릉원은 지금 울긋불긋한 단풍과 낙엽으로 가을 분위기가 물씬 흐른다. 11월 12일 찍은 모습이다. 백종현 기자

경주 대릉원은 지금 울긋불긋한 단풍과 낙엽으로 가을 분위기가 물씬 흐른다. 11월 12일 찍은 모습이다. 백종현 기자

가을을 붙잡을 방법은 없겠으나, 오래 즐기는 요령은 있다. 우리네 단풍 전선은 북에서 남으로 이동한다. 서울과 중부지역은 이미 끝물이지만, 저 먼 남쪽 지방은 아직 유효기간이 남아있다. 마음껏 가을을 누리고자 경북 경주에 다녀왔다. 이름난 유적지 대부분이 깊은 숲과 너른 공원을 끼고 있어, 경주는 이맘때 유독 더 화려하게 빛난다. 단풍 명소만 훑고 다녀도 근사한 경주 나들이 코스 완성된다.

추억이 머무는 불국사

불국사 관음전에서 내려다본 불국사 경내의 가을 모습. 회랑 안쪽으로 다보탑이 보인다. 불국사는 이번 주말까지, 석굴암 가는 산길은 다음 주말까지 절정의 가을 풍경이 이어질 전망이다. 백종현 기자

불국사 관음전에서 내려다본 불국사 경내의 가을 모습. 회랑 안쪽으로 다보탑이 보인다. 불국사는 이번 주말까지, 석굴암 가는 산길은 다음 주말까지 절정의 가을 풍경이 이어질 전망이다. 백종현 기자

추억 속 경주는 늘 봄이었다. 그 시절 수학여행 대부분이 학기 초 이뤄졌으므로 가을에 관한 기억이 많지 않다. 봄도 좋지만, 불국사는 가을날의 풍경이 한 수 위다. 문자 그대로 찬란하다.

11월 12일 이른 아침 불국사에 들었다. 일주문 주변은 단풍이 절정이어서 마치 가을로 드는 입구 같았다. 천왕문 앞 ‘반야연지’ 맑은 물에는 해탈교의 육중한 몸체와 단풍의 붉은 기운이 함께 반사돼 비쳤다. 불국사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관음전에서 내려다보니 가람 전체에 붉은빛이 돌았다. 총지당 회랑 바깥의 감나무엔 붉게 익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불국사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에 있는 연못 '반야연지'에도 가을빛이 물들었다. 백종현 기자

불국사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에 있는 연못 '반야연지'에도 가을빛이 물들었다. 백종현 기자

불국사 최고의 포토존은 누가 뭐래도 대웅전 길목의 청운교와 백운교다. 학창시절 이 돌계단 앞에서 ‘V’를 그리며 찍은 단체 사진 하나쯤은 누구나 갖고 있다. 현재의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건물 대부분이 소실된 것을 1970년대 초 복원한 결과물이다. 연간 10만2500명을 투입한 대공사. 천년의 세월을 복원하는 데 불과 4년이 걸리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가 재벌의 시주금과 국고를 끌어다 절을 재건하면서 국민 관광지로 거듭났고, 오랜 기간 인기 수학여행지로 군림했다. 당시 정부는 원형 그대로 재건했다고 천명했지만, 연못이 있어야 할 자리에 흙을 매우면서 청운교와 백운교는 다리의 기능을 잃게 됐다. “복원된 불국사에서는 그윽한 풍경 소리 대신 씩씩하고 우렁찬 새마을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법정의 『무소유』 중)”고 아쉬워하는 이도 있었다. 벌써 반세기가 흘러가 버린 이야기다. 마침은 청운교와 백운교 일대는 단풍이 고왔다. 가을 소풍에 나선 중학생 무리와 중년의 단체 관광객이 정겨운 포즈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봤다.

불국사 안양문 일대의 단풍. 백종현 기자

불국사 안양문 일대의 단풍. 백종현 기자

불국사 일주문에서 석굴암을 잇는 산길이 2.2㎞가량 이어지는데, 오동수 약수터 일대도 단풍 명소다. 단풍나무 늘어서 이른바 단풍 터널을 이루는 곳이다. 최귀필(57) 문화관광해설사 “경주 사람이 꼽는 최고의 단풍 명소다. 찻길이 있지만, 가을에는 산길이 더 붐빈다. 27일까지 단풍이 절정일 것 같다”고 귀띔했다.

거닐기 좋은 대릉원  

경주 대릉원 황남대총 연못 주변도 지금 가을이 한창이다. 백종현 기자

경주 대릉원 황남대총 연못 주변도 지금 가을이 한창이다. 백종현 기자

현재 경주 최대의 번화가는 황남동이다. 최신 유행을 접목한 한옥 카페와 식당, 액세서리 가게가 줄을 잇는다. 원조인 이태원 경리단길은 쇠락했지만, 황리단길은 여전히 핫하다. 하루가 멀다고 골목 안쪽으로 근사한 새 집이 들어선다. 경주 레트로 여행이 뜨면서 대릉원도 특수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전국이 잠잠하던 지난해에도 72만5000명 이상이 다녀갔다. 경주의 여느 유적보다 젊은 층이 많다.

대릉원이 좋은 건 반대로 특유의 느긋함 때문이다. 번잡한 황리단길과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미추왕릉을 비롯한 고분 30기가 약 12만6500㎡(3만8200평)의 너른 평지 위에 너그러운 자세로 들어앉아 있다. 고분이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떨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길도 능을 따라 둥근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왕의 무덤가를 한가로이 거니는 맛이 제법 크다. 유아차를 끌고 다닐 수 있을 만큼 땅이 평탄한 것도 장점이다.

대릉원 은행나무 아래서 낙엽을 던지며 놀고 있는 아이들이 모습. 백종현 기자

대릉원 은행나무 아래서 낙엽을 던지며 놀고 있는 아이들이 모습. 백종현 기자

지난여름 대릉원을 찾았지만, 가을날은 운치가 또 달랐다. 고분 사이사이에 뿌리내린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제각각의 가을빛을 뽐냈다. 관광객은 저마다 마음에 드는 나무 밑에 들어 기념사진을 남겼다. 대릉원에서 가장 규모가 큰 황남대총 주변의 단풍이 유독 화려해 관광객이 많이 몰렸다. 셀카 놀이에 빠진 한복 차림의 젊은이들, 은행잎을 던지고 노는 꼬마들을 질투를 누르며 지켜봤다. 전국구 명물로 통하는 황남대총 뒤쪽의 목련 나무엔 가을에도 연인들의 줄이 이어졌다. 하얀 꽃은 떨어지고 없지만, 목련 옆의 청단풍나무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550m가량 이어지는 대릉원 돌담길도 연인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새로 뜬 은행 숲 

경주 도리마을 은행나무숲. 근래 새로 뜬 가을 명소다. 백종현 기자

경주 도리마을 은행나무숲. 근래 새로 뜬 가을 명소다. 백종현 기자

경주 서면의 도리마을은 새로 뜬 핫플레이스다. 경주 서쪽 인내산(534m) 기슭 은행나무숲에 둘러싸인 자그마한 농촌이다. 은행나무는 본디 마을 안쪽에서 묘목 판매를 목적으로 심었단다. 한데 판로가 막히면서 울창한 숲이 됐고, 되레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도리마을 김연하(58) 이장은 “3년 전부터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웨딩 촬영 성지로 통한다더라. 가을철 하루 많게는 3000대가 넘는 차가 드나든다”고 전했다. 변변한 식당 하나 없지만, 마을 주민이 농산물과 먹거리를 들고나와 손님을 맞고 있었다.

대략 1만6500㎡(5000평) 규모의 은행나무 숲은 여느 가로수 길과 다르다. 빈틈없이 은행나무로 빽빽하다. 이 이국적인 풍경 덕에 입소문이 퍼졌다. 주민이 170명 남짓한 농촌이지만, 인스타그램 관련 게시물은 2만 개를 훌쩍 넘긴다.

숲은 아담해도 ‘사진발’ 하나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로 쭉쭉 뻗은 은행나무 수백 그루가 두 팔을 벌린 채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안쪽으로 드니, 노랑 빛에 파묻힌 듯한 인생샷이 자동으로 완성됐다.

통일전에서 내려다본 은행나무길. 백종현 기자

통일전에서 내려다본 은행나무길. 백종현 기자

시내에서 불국사로 가는 길에는 통일전이 있다. 김춘추와 김유신, 문무왕의 영정이 모셔진 장소. 이곳의 은행나무길도 소셜미디어에선 이미 이름난 포토존이다. 통일전 삼거리에서 통일전 입구에 이르는 3㎞ 도로 양쪽이 은행나무로 빼곡하다. 2018년 겨울 대대적인 가지치기 작업 이후 예전 같은 풍만함이 사라졌어도 관광객은 여전했다.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듯 차량 대부분이 속도를 낮춰 은행 터널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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