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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이가 울면 누구든 달려가는, 그런 사회 만들어야" [세계 아동의 날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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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아동 학대를 없애려면 옆집에서 아이가 심하게 울 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볼 수 있는 어른들이 있어야 하고, 가해자에게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고 외칠 수 있는 아동을 키워야 합니다.”

김인숙 국제아동 인권센터 이사(79)는 지난 1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선 감히 아이들을 때릴 수 없다’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아동학대를 근절할 수 있다”며 이처럼 말했다. 함께 인터뷰에 응한 이양희 이사장(65)은 “국내에서 여러 양육시설을 전전하는 아동이 지난해 기준으로 1만 4000여명인데, 어느 순간 이런 아동들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기록이 뚝 끊겨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아동 인권과 관련한 시스템 자체가 미비한 것으로,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아동인권센터 김인숙 이사(왼쪽)과 이양희 이사장(오른쪽)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국제아동인권센터 김인숙 이사(왼쪽)과 이양희 이사장(오른쪽)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양희 이사장과 김인숙 이사는 ‘가장 작은 자를 위한 더 나은 세상 만들기’라는 비전 아래 국내 최초의 아동인권옹호기관인 국제아동 인권센터를 2011년 4월 설립했다. 활동가들은 수십 년 간 아동 인권 옹호를 위해 힘을 합쳐온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아름다운 동행’으로 부른다.

유엔이 지정한 ‘세계 아동의 날’(Universal Children's Day, 11월 20일)과 ‘세계 아동학대 예방의 날’(11월 19일)을 앞두고 두 사람을 서울 중구 중앙일보 서소문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Q.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및 학대 판단 건수가 지난 6년 동안 꾸준히 늘었다. 반복되는 학대를 끊을 해결책이 있을까.

김 : 아동 학대 예방을 위해 모두가 눈을 똑바로 뜨고, 옆집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나면 무슨 일인지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깨어있는 분위기’여야 한다. 문화가 완전히 달라지지 않으면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대 받는 아이들의 고통을 끊을 수 없다. 또 차별 행위 등으로 인권을 침해당한 아이가 그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가해자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외칠 수 있도록 키우는 것도 양육자의 책임이다. ‘한국에선 감히 아이들을 때리거나 험한 말을 할 수 없다’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아동 학대 신고ㆍ학대 판단 건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아동 학대 신고ㆍ학대 판단 건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Q. 센터의 정신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기초한다. 한국은 1991년 협약을 비준했는데, 책임 있는 당사국이었나.

이: 한국은 협약 비준 이후 당사국으로서 면모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법적ㆍ제도적 측면에서 긍정적 변화가 있었고, 시민사회와 비정부기구(NGO)의 역량이 강화되며 아동 인권 실태 관련 모니터링 기능도 강화됐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중 아동만 전담하는 위원이 아직 없는 등 여전히 미진한 부분도 많다. 국내 아동 인권 실태 관련 문제를 하나 지적하자면, 아동의 생애를 지속해서 추적(tracking)하는 시스템이 미비하다. 여러 시설을 전전하는 아동의 경우 관련 자료가 어느 순간 끊겨 버리는데 이에 대한 보완책이 시급하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관련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유엔 아동권리협약 관련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Q. 북한도 아동권리협약을 1990년에 비준했지만, 당사국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듯하다.

이 : 유엔에서 활동했을 당시에 보면 북한은 협약 이행 보고서를 거의 제때에 제출했고, 내용도 기가 막히게 잘 작성해 의외였다. 북한은 아이들을 마치 왕처럼 상당히 높여서 묘사하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 북한에서 자란 아동들은 영양실조로 인해 성장 상태도 열악하고, 여가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한 채 어린 나이부터 각종 노동에 동원된다. 당시 한 유엔 아동권리위원은 ‘북한에선 아동이 왕이라는데, 왕을 이렇게 대우하면 보통 사람들은 어떤 처지냐’고 자조하기도 했다. 역대 한국 정부가 대부분 북한의 반발을 의식해 북한 내 아동 인권에 대해선 말을 아껴왔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아동 인권만큼은 어느 나라든 반드시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큰 소리로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Q. 아동 인권 옹호와 관련해선 NGO가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나.

김: 센터는 매년 100명의 아동권리 옹호 활동가 양성을 목표로 아동 양육시설 종사자 등에 100시간의 교육 훈련을 하고 있다. 여기엔 3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센터의 후원자는 총 322명이고, 후원금은 6000만원 정도로 크게 부족하다. 아동권리 옹호 활동가가 많을수록 아동 학대 예방 등 실질적 보호의 가능성이 커진다. 보다 많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Q. 정부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아동 인권 보호라는 의무의 이행자가 돼야 할 텐데.

김 : 정부, NGO, 기업 등 우리 모두가 아동 인권 보장의 의무가 있고 이 중에서 정부가 첫 번째 의무 이행자라고 생각한다. 또한 기업의 아동 인권 인식 수준이 아직 낮은데 향후 개선의 여지가 많다.

이: 유엔은 30년 전 ‘기업가 인권’의 틀을 만들었다. 기업의 활동이 아동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는 아동 인권영향평가 등을 도입할 경우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경영 화두로 내건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도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아동인권센터 김인숙 이사(왼쪽)과 이양희 이사장(오른쪽)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국제아동인권센터 김인숙 이사(왼쪽)과 이양희 이사장(오른쪽)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양희 이사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 출신(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 2014~2020년)이다. 또 2003년부터 10년 넘게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김인숙 이사는…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40년 넘게 아동 권리 옹호를 위해 활동해왔다. 1989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접한 뒤 국내에 협약의 정신을 알리고, 아동 인권 옹호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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