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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죽을까 걱정, 생지옥 따로없다"...요양병원 악몽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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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중인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이 속출하고 있지만, 병상 대란 탓에 확진자를 전담병원 등으로 제때 이송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확진자와 비확진자를 사실상 한데 가두어 두는 코호트 격리로 환자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감염자가 음성 판정자에게 추가 전파해 집단확진, 집단사망으로 이어지는 지난해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전담병원 포화에 확진돼도 이송 지연 

지난 16일 낮 12시쯤 경기도 고양시 A 병원 1층 엘리베이터에는 ‘당분간 외래 진료 휴진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200병상 규모의 이 병원에는 치매, 만성질환, 요양·재활 환자 등 100명가량이 입원해 있다. 일반 병원으로 등록돼 있지만 요양병원처럼 이곳 입원 환자 약 80%는 고령이며, 거동이 불편한 와상 환자가 많다. A 병원은 요양병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올 초 요양병원 환자 대상 코로나19 접종이 진행될 때 환자들에게 백신을 놓지 못했다. 보호자가 희망하는 경우에 한해 외부에서 접종이 이뤄졌지만, 입원 환자 상당수가 미접종 상태로 지냈다. 그러다 최근 집단감염이 터졌다. 관할 보건소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종사자와 환자 등 20여명 확진을 시작으로 16일까지 최소 102명의 환자가 나왔다.

확진자를 신속히 빼내 치료해야 하지만, 16일까지 2명만 코로나19 전담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병원에 어머니를 모셨다가 최근 확진 소식을 듣게 된 B씨는 “환자들이 집단 격리 중인데 간병인들도 상당수 확진돼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됐다고 들었다”며 “와상 환자가 많아 식사 보조부터 기저귀 교체, 거동 보조 등 손 가는 일이 많은데 몇 안 되는 의료진이 이런 일을 맡고 있어 생지옥 수준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이 병원에 있다 확진된 간병인은 “물리치료사도 확진돼 치료를 못 하고 있다”며 “간호사 몇 명이 전체 환자를 돌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관할 덕양구보건소 관계자는 “전담병원이 포화상태라 확진자 이송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완전히 위중증인 분들만 빼내고 안에서 치료하는 방향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환자 기준이 올라가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호흡곤란, 의식저하 등이 와야 이송을 신청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병원 측은 “차분히 대처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가족들은 불안감을 호소한다. B씨는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 환자들이 대다수인데 최소한의 돌봄, 치료만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코로나도 그렇지만 굶어 돌아가실까 봐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올 초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중인 인천 한 요양병원 내부에서 방역 당국 관계자들이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 초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중인 인천 한 요양병원 내부에서 방역 당국 관계자들이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55곳 요양병원·시설, 코호트 격리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16일 기준 전국 요양병원 31곳, 요양시설 24곳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해 이렇게 코호트 격리하고 있다. 55곳에서 현재까지 1759명이 감염됐고, 관련한 사망자가 77명 나왔다. 수도권 다른 요양병원은 지난달 27일 첫 환자 발생 뒤 현재까지 종사자, 환자 등 70명이 확진돼 두 병동을 코호트 격리하고 있다. 30명가량의 확진자를 이송하지 못하고 돌보는 중이다. 이 병원 원장은 “상당수 환자가 고령이고 중증으로 갈 위험이 있어 최대한 확진자를 빼내야 하는데 병상 배정이 지연되고 있다”며 “오늘도 확진 일주일된 분에게 폐렴이 왔다. 중증 환자라도 빨리 빼달라고 보건소에 요청하는데 받을 곳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접종 효과로 한동안 이런 취약시설에서의 감염이 뜸했다가 최근 다시 터지면서 무분별한 코호트 격리가 자칫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역사회로 추가 전파를 막기 위해 코호트 격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요양병원 등은 코로나19 중환자를 치료할 시설과 인력 등을 갖추지 못해 확진자가 중증, 사망으로 갈 위험이 크다. 지난해에도 문제가 됐었다. 당시 코호트 격리된 병원에서 가족을 잃은 한 청원인은 올 초 국민청원에서 “장비와 치료 약도 전해주지 않은 채 코호트에 갇혀 알아서 하라니 그렇게 노인들을 버려야 했냐”며 “K 방역은 고려장인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요양병원 확진자들을 받고 있는 수도권 한 전담요양병원 관계자는 “환자 5명이 오면 4명은 폐렴으로 진행할 정도로 고위험군”이라면서 “10명 중 1~2명은 결국 중증 폐렴으로 진행하고 기관 삽관이나 인공호흡기를 고려해야 해서 타 병원으로 전원시킨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 치료법이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전담병원에서 치료받아야 사망률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집단감염이 발생한 부산 한 요양병원 환자가 119구급차량을 이용해 격리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집단감염이 발생한 부산 한 요양병원 환자가 119구급차량을 이용해 격리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중앙포토

수도권 2곳 전담요양병원은 포화…최근에야 추가 지정

요양병원 확진자는 더 많은 간병 인력을 필요로 하다 보니, 일반 전담병원 등으로 이송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정부가 전담요양병원을 지정했는데 한때 11곳까지 늘었다가 3차 유행 이후 환자가 크게 줄면서 대다수 지정 해제됐다. 현재 전국 4곳만 남았고 수도권에는 경기와 서울 2곳에 353병상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최근 요양병원 집단감염이 잇따라 터지며 2곳의 병상은 이미 80~85% 차 있다. 최근에서야 정부가 수도권 4곳을 신규로 지정해 405병상을 추가한다고 밝혔지만, 이곳들도 음압시설과 인력 등을 갖춰야 해 당장 환자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동현 한림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3차 위기 때 요양병원에서 사상자가 많이 나왔고 당시 코호트 격리에 대해 방역은 했을지 몰라도 치료적 대응이었냐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 1년 가까이 지나도 보완이 된 것 같지 않다”며 “코호트 격리를 넘어서 이들에 대한 치료적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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