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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황폐해진 언론 시스템 바꿀 대선 공약은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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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여야 주요 후보들이 결정되면서 차기 대통령 선거 국면이 본격화했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선거 캠페인은 이 두 가지 선택에 필요한 상품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는 요인이 많아지면서 대의민주주의의 의미가 훼손되고 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고, 후보자들이 내놓은 공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거공약이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노조 내세워 공영방송 장악
정권 비판 언론에는 직·간접 압박

당연히 각 후보 진영에서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수많은 정책을 내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중에는 국가가 당면한 중요한 정책도 있고,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쟁점도 있다. 물론 유권자가 보기에 실현 불가능한 황당한 것도 적지 않다. 때로는 후보들이 유리한 정책만 쟁점화하면서 정말 중요한 정책 현안이 도외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후보들의 선거 공약은 집권 이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유권자에게 책임 있고 유능한 후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내용 이상의 영향을 줄 수 있다. 주요 후보 진영에서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한 공약집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역대 선거에서 언론과 관련된 정책이 별로 눈에 띄지도 않고 쟁점이 되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정치권력과 대립 관계에 있는 언론 관련 정책을 쟁점화하는 것이 선거에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 이면에는 언론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수단이라는 정치권의 고정관념이 깔려있을 가능성이 높다. 오래전부터 언론 민주화와 개혁을 부르짖어왔던 문재인 정권이 추진한 언론정책을 보면 과거의 어떤 권위주의 정권보다 더 심한 언론통제 정책이라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친정권 성향의 언론노조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장악한 공영방송의 파행적 편파보도, TBS 교통방송 같은 각종 공공방송을 이용한 불법 정치방송, 정부 광고 독점체제를 통한 친여 언론매체 지원 등 노골적인 정권 호위 언론체제를 구축했다. 반면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매체에 대한 직·간접적 압박도 자행했다. 재승인 제도를 통한 종편·보도 채널 압박, 보수성향 유튜브에 대한 가짜뉴스 공세와 규제 추진, 노란 딱지라고 하는 자율규제로 포장된 광고규제도 있었다. 급기야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원천 봉쇄하는 언론중재법 개악까지 시도되고 있다.

그동안 누적된 언론 제도의 구조적 허점을 철저하게 이용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다. 허술한 공영방송 거버넌스와 방송 인·허가제도, 정부와 공공기관이 경쟁적으로 설립한 공공채널, 정부 지원과 광고에 의존하는 군소 언론의 난립 등은 집권 정치세력이 남용을 넘어 악용할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있다.

이렇게 언론 시스템이 황폐해지고 있는데도 대선에 출마한 어느 후보도 언론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이나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번 선거에서도 언론정책이 쟁점화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언론을 정치적 통제수단으로 여기는 정치권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의 왜곡된 언론체제에 침묵하는 것은 정상국가를 만들겠다는 대통령 후보들의 책임 있는 모습이 아니다. 어쩌면 차기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가 언론 정상화일 수 있다. 권력을 감시할 수 있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언론 시스템이야말로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국가의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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