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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도 부처도 한 뿌리" 톨스토이·간디도 반한 바하이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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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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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의 북쪽 윌멧에는 바하이교 사원이 있다. 시카고의 명물이 된 이 사원의 기공식은 1912년에 있었다. 당시 10년 가까이 미완성 건축물이었다. 항상 공사 중인 이 건물을 보고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가 비서에게 물었다. “저건 뭐 하는 건물이지? 왜 저렇게 더디게 올라가는 거야?” 사정을 알아본 비서가 보고했다. “바하이교 사원입니다. 전세계에 있는 종교의 경전을 낭독하는 곳입니다.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불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경전까지 말입니다. 낭독만 하고 해석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해석을 하면 서로 싸우게 되니까요.”

미국 시카고 북쪽에 있는 바하이교 사원. 바하이교는 신자가 돼야만 헌금을 할 수 있다. 비신자의 헌금이 들어올 경우, 바하이교를 위해서 쓰지 않고 다른 곳에 기부한다. [중앙포토]

미국 시카고 북쪽에 있는 바하이교 사원. 바하이교는 신자가 돼야만 헌금을 할 수 있다. 비신자의 헌금이 들어올 경우, 바하이교를 위해서 쓰지 않고 다른 곳에 기부한다. [중앙포토]

그 말을 들은 카네기가 답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 그럼 내가 돈을 줄 테니까, 저 건물을 빨리 지으라고 하게.” 자초지종을 알아본 비서가 다시 보고했다. “회장님은 바하이(바하이교 신자)가 아니라서 헌금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바하이교는 그런 헌금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시카고의 바하이 사원은 제1ㆍ2차 세계대전이 모두 끝나고서야 뒤늦게 완공이 됐다.

바하이교는 페르시아인 바하 올라(1817~92)가 1844년에 창시한 종교다. “지구는 한 국가, 인류는 한 가족, 모든 종교는 한 뿌리”를 표방하는 바하이교는 1921년 한국에 처음 전래했다. 올해가 바하이교 한국 전래 100주년이다. 11일 서울 을지로에서 바하이교 신자인 김영경(70) 박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인 종교학자 중에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다.

김영경 박사는 국내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다. 그가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 하고 독일 유학을 떠난 이유도 바하이교를 더 알고 싶어서였다. 김상선 기자

김영경 박사는 국내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다. 그가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 하고 독일 유학을 떠난 이유도 바하이교를 더 알고 싶어서였다. 김상선 기자

바하이교는 언제 한국에 들어왔나.  
“꼭 100년 전이다. 하와이 출신의 미국 여성 아그네스 알렉산더 여사가 조선에 와서 처음 바하이 신앙을 전했다. 1921년 9월 2일에 공초 오상순(시인ㆍ수필가)의 도움으로 아직 오픈도 하지 않은 천도교 대교당(수운회관)에서 900명 청중을 앞에 두고 바하이교를 소개했다. 공초 선생이 직접 통역을 맡았다. 9월 1일자 동아일보에는 김소월의 스승인 김억이 바하이교를 소개하는 장문의 기사를 썼다.”

이후 알렉산더 여사는 조선을 떠났다. 그녀와 펜팔을 주고받던 김창진이란 사람이 조선에서 처음으로 바하이교 신자가 됐다. 그의 묘비명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한국에 온 유엔군 미군 병사 중에도 바하이가 있었다. 그들을 통해 통역사와 하우스 보이 등 한국에도 바하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후에 바하이 신앙이 한국에서 어떻게 유지됐나.
“전역한 두 미군이 한국에 남았다. 흑인인 윌리엄 맥스웰은 전남대 영문과 교수, 백인인 윌리엄 스미츠는 한국외대 영어과 교수가 됐다. 그들이 한국에 바하이 신앙을 알렸다. 알다시피 바하이교는 전문 성직자가 따로 없다. 평신도가 주축인 종교다.”  
김영경 박사는 젊은 시절부터 "만약 부처님과 예수님이 직접 만난다면 서로 어떻게 대할까?"라는 물음을 품었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김영경 박사는 젊은 시절부터 "만약 부처님과 예수님이 직접 만난다면 서로 어떻게 대할까?"라는 물음을 품었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김영경 박사는 바하이가 된 지 꼬박 40년이다. 대학생 때부터 궁금했다. “만약 부처님과 예수님이 뉴욕에서 만난다면 서로 어떻게 대할까. 자기만 진리라며 상대를 배척할까. 아니면 ‘브라더’라며 함께 의기투합할까.” 대학 졸업반 때 우연히 만난 고교 선배가 바하이였다. “종교가 한 뿌리야. 부처님과 예수님이 모두 한 뿌리에서 오신 분들이야.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왔어”라는 선배의 말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그래서 바하이 신앙에 매료됐나.  
“그렇다. 세계 평화와 남녀평등 등 지향점도 좋았다. 특히 종교와 과학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상보적이란 가르침에 매료됐다. 과학이 종교를 무시하면 물질주의의 늪에 빠지고, 종교가 과학을 무시하면 맹신ㆍ광신이 된다고 했다. 결국 바하이 신앙을 더 알고 싶어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김 박사는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유럽 최초의 개신교 대학)에서 바하이교의 뿌리인 이슬람학을 전공했다. 아랍어와 히브리어는 부전공이었다. 그는 “이슬람학을 연구하며 많은 걸 새롭게 느꼈다”고 말했다.

무엇이 새로웠나.
“독일에 가기 전에는 ‘이슬람’ 하면 딱 떠오르는 게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꾸란’이었다. 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중세 유럽은 암흑기였다. 정체돼 있었다. 그때 아바스 제국과 오스만 제국 등 이슬람은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나라가 최전성기였다.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태동도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넘어갔다. 아라비아 숫자도 인도에서 이슬람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갔다. 커피, 소파, 카페, 재킷, 기타, 깁스, 슈가(설탕) 등이 모두 아랍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인도 뉴델리의 로터스 템플. 무려 1만 개의 대리석 조각으로 만든 연꽃 모양의 사원이다. [중앙포토]

인도 뉴델리의 로터스 템플. 무려 1만 개의 대리석 조각으로 만든 연꽃 모양의 사원이다. [중앙포토]

바하이 세계 본부는 이스라엘 갈릴리 서쪽의 하이파에 있다. 오스만 제국이 바하 올라를 귀향 보낸 곳이다.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바하 올라의 묘지도 그 근처인 아카에 있다. 또 인도의 뉴델리에는 바하이교 예배원인 로터스 템플이 있다. 연꽃 모양의 사원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연간 방문객이 400만 명에 달한다. 타지마할보다 연간 방문객 수가 더 많을 정도다.

바하이는 한 마디로 무엇의 종교인가.
“모든 종교는 특징이 있다. 이슬람은 정의의 종교,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부른다. 바하이교의 핵심 화두는 ‘유니티(Unity, 융합ㆍ통합)’이다. 획일적 통합이 아니라 다양성을 살리는 통합이다. 바하이 공동체에서는 백인, 흑인, 황인 할 것 없이 모두가 형제이고 자매다. 이슬람 수니파, 시아파, 불교 신자, 기독교 신자 등이 다 모여서 평화롭게 어울린다.”
레프 톨스토이는 바하이교에 대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종교"라고 칭찬한 바 있다. [중앙포토]

레프 톨스토이는 바하이교에 대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종교"라고 칭찬한 바 있다. [중앙포토]

세계적 문호인 톨스토이도 바하이를 무척 좋아했다. 김 박사는 “바하 올라와 동시대를 산 톨스토이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우주의 신비를 풀기 위해서 평생토록 연구한다. 그런데 그 열쇠를 터키의 한 수인(囚人)이 갖고 있다’고 썼다”고 말했다. 당시 박해를 당해 오스만 제국의 감옥에 갇혀 있던 바하 올라를 일컫는 말이었다. 톨스토이는 바하이교를 가리켜 “인류 역사상 가장 순수한 형태의 종교”라고도 평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바하이 신앙은 인류의 위안”이라고 했다. 바하이교 역시 철저하게 비폭력을 지향한다.

바하이교는 다른 종교와 무엇이 다른가.
“전문 성직자가 없다. 지도부를 직접 민주적 투표로 선출한다. 9명을 뽑아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한다. 선거 때는 9명의 이름을 각자 종이에 써서 낸다. 동점자가 나오면 사회적 마이너리티에게 우선권이 간다. 그럼 여성이나 유색 인종이 뽑힌다. 서울 용산 후암동에 바하이 센터가 있다. 최고 요직인 중앙회 서기를 20대 청년이 맡고 있다. 민주적으로 뽑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영경 박사는 "바하이교는 이슬람권 종교임에도 남녀평등의 정신이 강하다. 아울러 철저한 비폭력주의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김영경 박사는 "바하이교는 이슬람권 종교임에도 남녀평등의 정신이 강하다. 아울러 철저한 비폭력주의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바하이교는 아브라함 계통의 유일신 종교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연장선에 있다. 그런데 불교도 한 뿌리라고 말한다. 왜 그런가.
“바하이교는 부처님도 하느님의 현시자로 본다. 신의 진리가 투영되는 순수한 거울이라고 본다. 종교 창시자에는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하늘에서 점지돼 계시가 내리꽂는 인물이다. 아브라함이나 무함마드가 그렇다. 또 하나는 치열하게 노력하는 수도자다. 수운 최제우나 부처님, 인도의 수도자들도 그랬다. 그렇게 수행을 하다가 진리와 접속이 된 거다.”

바하이교는 예배의 관점도 독특하다. 예배 의식이 따로 없다. 바하 올라는 “인류에게 봉사하는 정신으로 하는 일상의 노동이 곧 예배다”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각자의 일상에서 그런 정신으로 일을 한다면, 그게 바로 예배”라고 강조했다.

종교전문기자

전 세계 바하이교 신자는 700만 명

 바하이교는 아브라함 계통의 유일신 종교다. 신이 보낸 마지막 사자라고 믿는 바하 올라가 1844년에 설립했다. 바티칸 시국과 북한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에 바하이교가 들어가 있다. 전 세계 바하이교 신자 수는 약 700만 명이다. 한국은 2만 명까지 달했다가 지금은 많이 줄었다. 바하이교는 세계 종교를 배타적으로 보지 않고 모두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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