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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VR 기술이 빚어낼 국악의 신세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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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전인 2019년 겨울, 나는 처음으로 VR(가상현실) 오큘러스 고글을 사용해봤다. ‘비트세이버’ 게임으로 3D 공간에서 고래와 심해에서 헤엄을 치고,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엘튼 존과 피아노를 치고, 제트팩을 메고 어릴 적에 살았던 알래스카주 산맥과 유사한 풍경 위를 날아다녔다. VR 고글을 벗고 털썩하고 현실로 돌아오자 다소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무척 짜릿했다. 이 신기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의 전통예술을 접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립국악원에서 그런 작업을 이미 시작했음을 알게 됐다.

2020년 2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국립국악원 공연장, 학교, 스포츠센터에 인적이 끊겼다. 다행히도 국립국악원은 혁신성장재단의 지원을 받아 신기술을 통한 한국문화 보급에 힘쓰고 있었고, 2020년 7월 1일 63가지 레퍼토리의 VR 공연 서비스를 시작했다. 8K 고해상도로 녹화된 3D 영상 기술 덕분에 VR 헤드셋이나 유튜브가 있으면 무대 위 공연자들 사이를 거닐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19로 깨달은 진실
공연장의 땀 더욱 그리워
사람 중심의 기술 기다려
예술은 또다른 세상 열 것

지난달 29일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회사명을 ‘메타’로 변경하면서, 근전도 신호를 감지하는 팔찌를 통한 신경감지기술(EMR)을 이용해 키보드 없이 컴퓨터에 문자를 입력하는 미래가 곧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나는 VR 고글과 EMR 팔찌, 디지털 제트팩을 착용하고 열대 해변으로 날아가 가야금을 연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지도 않고, 모래나 햇볕, 소금기로 피부나 악기가 손상될 염려도 없을 것이다.

국립남도국악원의 ‘씻김굿’ VR공연 영상 중 한 장면. [사진 국립국악원]

국립남도국악원의 ‘씻김굿’ VR공연 영상 중 한 장면. [사진 국립국악원]

어느 주말 전주 한옥마을에서 가야금 수업을 듣고 온라인 강의를 하기 위해 대전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변화가 얼마나 빠르게 일어나는지 생각해봤다. 와이파이 연결이 되지 않는 스승님댁에서 전통악기인 가야금을 배운 뒤 5G 인터넷이 설치된 현대식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에서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최근에 아메리칸 컴포저스 오케스트라 측이 원격 가야금 연주로 ‘뉴 캐논’ 온라인 콘서트에 참가해 달라고 요청해서, 전통과 첨단이라는 두 세계를 화합하려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참여한 곡은 작곡가 트레버 뉴의 설명에 따르면 ‘분권화된 텔레마틱 퍼포먼스’ 형식이었고, 세계 각지의 연주자들이 원거리에서 ‘서로 보고, 듣고, 반응하며’ 실시간으로 협연했다. 나는 핸드폰 두 대를 각각 소리와 영상을 위해 켜 놓고 연주했다. 새벽 3시에 방에 홀로 앉아 아이폰의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고 귀 기울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웃 사람들을 깨울까 봐 걱정하면서, 나는 머나먼 곳에 흩어져 있어 센박을 연주하기 직전의 숨소리를 거의 감지할 수 없는 다른 멤버들과의 유대감을 실감하려 애썼다.

이달 초 미국 축구선수 메건 라피노는 존 파브로 감독의 ‘팟 세이브 아메리카’ 팟캐스트에 출연해 도쿄올림픽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환호하는 관중이 없는 경기장에 나가니 경기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운동선수에게 관중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이온음료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국악 연주자들도 추임새나 박수 없는 공연에서 생기를 느끼기 어렵다고 말한다.

디지털 세계는 짜릿하지만, 팬데믹을 통해 나는 사람의 체취도, 촉감도, 청국장의 맛과 코를 찌르는 냄새도 느낄 수 없는 가상세계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경험을 더 그리워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신기술이 국악 보급에 미칠 유익이 기대되지만 훗날 코로나 시대를 돌아볼 때, 첨단기술 전격 도입이 코로나 시대에 기여한 가장 큰 공헌은 가상의 연대를 맺는 삶과 번거로움이 따르더라도 자연스러운 인생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누리는 삶의 대조였다고 말할 것 같다.

2018년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모두를 위한 미래’ 부분 ‘시간의 강’ 말미에 다섯 어린이가 등장했다. ‘미디어가이드’ 리포터는 이렇게 보도했다. “아이들은 꿈을 그려 보이면서 자기가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서로 이야기한다. 그때 문이 열리고, 아이들은 그 문을 통해 멋진 미래 세계로 나간다. 그 세계는 (…) 사람들이 AI, 로봇, 인터넷 등을 갖춘 세상이지만, 맨 앞에는 사람 중심의 기술이 있다.”

집에 격리돼 스크린 앞에서 2년을 보낸 우리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모습이 됐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 중심의 기술’을 갖춘 바로 그 미래의 ‘사람들’이다. 메타버스(metaverse)는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이 될 것이다. 국악의 가능성, 또 모든 것의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