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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갑작스런 커밍아웃…‘성소수자 부모’가 사는 세상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캐나다 토론토 퀴어 축제에 아들 예준과 함께 참여한 비비안은 ‘나의 게이 아들을 사랑한다(I LOVE MY GAY SON)’는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다큐에 당시 모습이 담겼다. [사진 엣나인필름]

캐나다 토론토 퀴어 축제에 아들 예준과 함께 참여한 비비안은 ‘나의 게이 아들을 사랑한다(I LOVE MY GAY SON)’는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다큐에 당시 모습이 담겼다. [사진 엣나인필름]

“한결이가 얼마나 힘들지 실감 못 했는데 인천퀴어문화축제(2018) 가서 나도 맞았잖아요. 대명천지에 경찰들이 그렇게 많은데 성소수자란 이유만으로 때릴 수 있는 세상, 이런 세상에 살고 있었단 말이야? 부모라도 싸워야지란 생각이 들더군요.” 소방공무원 ‘나비’가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에서 한 말이다. 그는 트랜스젠더인 자식 한결과 함께 혐오에 맞서는 투사가 됐다. 아들 예준의 게이 선언에 당황해 위로랍시고 “불행한 인생 살게 낳아준 엄마가 미안하다”며 오열했다는 항공승무원 ‘비비안’. 그는 2년 만에 아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동성 연인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인권운동가로 거듭난다.

17일 개봉한 다큐  ‘너에게 가는 길’은 자녀의 커밍아웃으로 갑작스레 ‘성소수자 부모’가 된 50대 두 엄마의 여정을 담았다. ‘나비’와 ‘비비안’은 이들이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얻은 활동명. 새 이름처럼 전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 엄마들의 변화가 솔직하고 유쾌하게 펼쳐진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심사위원 특별언급 및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걸 시작으로 DMZ국제다큐영화제 용감한 기러기상(특별상), 제23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관객상) 등을 받았다.

다큐를 만든 변규리(32·사진) 감독을 13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성적 소수 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으로 출발한 창작집단 ‘연분홍치마’에서 활동해온 그는 “부모님들이 자신의 삶을, 세계관을 확장하면서 성소수자 당사자에 다가가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전히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이란 이미지로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친구에게 어느 성소수자 장례식에 갔는데 그 부모님은 고인이 성소수자인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마음이 아팠죠. 부모님은 고인이 생전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 알 수 없게 됐잖아요. 그런 와중에 성소수자부모모임을 만났죠.”

변규리 감독

변규리 감독

2017년 촬영 작업의 일환으로 성소수자부모모임 월례 정기 모임에 나간 변 감독은 새삼 성소수자 부모도 당사자 못지않게 사회적 혐오, 폭력적 시선에 노출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아이가 성소수자가 된 것이 잘못 키웠기 때문이라든가 태교를 잘못했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올바르지 않은 정보들이 있잖아요. 또 성소수자 혐오나 비하를 들을 때 부모님들도 똑같이 불편하고 공포를 느끼죠. 자식을 위해 인권 활동을 시작하지만, 점차 ‘성소수자 부모’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다고 하더군요.”

나비와 비비안을 주목한 이유는.
“비비안님은 자신이 겪는 감정, 혼란함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했다. 나비님은 한결님이 커밍아웃했을 때 이를 부정한 것에 대한 미안함, 후회가 있었고 만회하려는 생각이 컸다. 두 분을 통해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상상해볼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2017년 말부터 8개월 사전 취재해 지난해까지 2년 동안 촬영했다. 나비는 한결의 법적 성별 정정을 위해 부모동의서·성장환경진술서 등 18종 서류를 만들며 자식의 고충을 공감해간다. 비비안은 아들의 남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한다.

촬영하며 변화를 느낀 순간은.
“부모님들이 자식의 동성 애인을 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비비안님이 많이 노력하는 걸 느꼈다. 나비님은 한결님에게 속마음 표현하는 것을 낯간지러워했다.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포기 사건 때 지금 감정을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전화 주시더라.”

최근 나비와 비비안은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에 나섰다. 연분홍치마와 성소수자부모모임이 이 다큐를 제작하기로 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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