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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따라하네···‘동생회사’ 삼성전기의 ‘인사실험’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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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현 삼성전기 사장이 지난달 열린 경영현황 설명회에서 임직원들에게 사업 성과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기]

경계현 삼성전기 사장이 지난달 열린 경영현황 설명회에서 임직원들에게 사업 성과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기]

삼성그룹의 전자부품 계열사인 삼성전기 소속 임직원 3만6000여 명은 임원이나 그룹장, 파트장 등 직책자를 제외하고 모두 서로를 ‘프로’라고 부른다. 입사 30년이 지난 고참도, 처음 출근한 신입사원도 똑같이 프로다. 지난해 10월 경계현 사장이 주도해 4단계 직급의 호칭을 하나로 통일했다. 수평적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뜻에서다.

삼성전자가 내년부터 새로운 인사제도를 도입 예정인 가운데 이 같은 삼성전기의 ‘인사 실험’이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15일부터 사내 설명회를 연 가운데 인사제도 개편안에 ▶직급 단순화 ▶동료평가제 도입 ▶임금 베이스업(기본인상률) 폐지 등이 담길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삼성전기를 벤치마킹한 것이냐”는 반응도 나온다.

직원 3만6000명이 모두 ‘프로’

17일 삼성전기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사내메신저·이메일·녹스(인트라넷)·명함 등에서 직급 표시를 모두 없애고 호칭을 ‘프로’로 통일했다. 삼성전자·전기·디스플레이·SDI 등 삼성의 전자 관련 계열사 중 처음이다.

삼성전기의 직급은 전체 4단계로 직무역량 발전 정도에 따라 ‘CL(경력개발단계·Career Level) 1~4’로 나뉜다. CL1은 고졸과 전문대졸 사원, CL2는 대졸 사원, CL3는 과장·차장급, CL4는 부장급에 해당하는데 각각 어시스턴트(AP), 프로페셔널(P), 시니어 프로페셔널(SP), 프린시플 프로페셔널(PP)로 불린다.

현재 삼성그룹 인트라넷에서 직원 이름을 검색하면 삼성전자 소속 부장급이라면 프린시플 프로페셔널이라고 직급이 표기된다. 하지만 삼성전기 소속 직원은 프로라고만 나온다. 다만 임원·그룹장·파트장처럼 업무 역할을 나타내는 직책은 공개돼 있다.

삼성전기의 인사실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삼성전기의 인사실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연차를 짐작할 수 있는 입사 연도도 노출하지 않는다. 회사 측은 보통 입사한 해로 시작하는 사번의 앞부분을 비공개 처리했다. 매년 2월이면 승격자 명단을 사내망에 공개하지만 올해부터는 이마저도 공개하지 않았다. 조직 내 위화감을 줄이고 승격 탈락자를 배려하기 위한 조치다.

다른 직원에게는 노출되지 않지만 직급 자체를 아예 폐지한 것은 아니다. 본인은 인사 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후배사원에 존댓말, 동료평가도 

직급이 낮은 직원에게도 존댓말 쓰기를 시행하고 있다. 서로 존중하면서 원만한 의사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인사평가에서는 ‘동료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상사가 부하직원을 평가할 뿐 아니라 부하직원이 상사를 평가하고, 동료끼리도 고과평가를 한다. 동료 평가 방식도 파격적이다. 가령 A씨에 대한 평가에서는 그가 속한 부서의 구성원이 참여한다. A씨가 원하면 다른 부서의 동료에게도 평가받을 수 있다.

경계현 사장이 직접 아이디어 내기도

삼성전기가 이런 인사 실험을 하는 배경에는 수평적 조직문화 정착이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기업문화 개선을 위해 사원1~3→대리→과장→차장→부장 등 기존 7단계 직급을 현 4단계로 줄였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직급을 유추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 수평적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기의 ‘직급 가리기’는 이런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조처인 셈이다.

이 같은 인사 실험은 경계현 삼성전기 사장이 주도하고 있다. 경 사장은 1988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장, 메모리사업부 솔루션개발실장 등을 거쳐 지난해 1월 삼성전기 대표에 취임했다. 평소 수평적 조직문화와 직원들과 소통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에 따르면 인사 혁신안의 주요한 내용을 경 사장이 직접 제안했다고 한다.

삼성전기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삼성전기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대체로 긍정적···‘동료평가’엔 반응 엇갈려

인사제도 개편에 대해서 지난 1년간의 내부 반응은 긍정적이다. 삼성전기의 한 직원은 “이메일을 보내거나 호칭을 할 때 ‘프로’로 통일하면 되니 소통을 할 때 부담이 줄었다”고 평가했다. 가령 여러  명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 서열이나 연차를 고려하지 않아도 돼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대부분의 혁신 조치는 잡음 없이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동료평가제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에게 피드백을 받아 의미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반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를 보면 “(동료평가는) 의도적으로 나쁜 사람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 “진짜 문제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조치가 있는지?” 등의 의견이 나왔다. 이에 관해 삼성전기 관계자는 “이제 처음 시행한 점을 고려해 달라”며 “점차 평가 수준이나 수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노사협의회와 노동조합, 부서장, CA(변화관리자·Change Agent) 등 사내 의견을 청취한 후 개편안을 확정, 내년부터 신인사제도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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