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입장료 냈더니 70% 쿠폰 환불…나의 소소한 행복여행

중앙일보

입력 2021.11.17 07:00

[더,오래] 송미옥의살다보면(208)

가을이 깊어간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이 가을이 마지막인 것처럼 스산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시절이 옛날 같지 않아 낭만과 사색은 눈치 보며 따라오고, 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지출이란 녀석이 앞장선다. 한 달 전엔 남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오늘은 그때의 좋았던 기억보다 주차료, 입장료 영수증에 소심했던 기억을 꺼내본다.

경주의 만추. 단풍나무를 곁에 두고 걷는 불국사 담장 길. [중앙포토]

경주의 만추. 단풍나무를 곁에 두고 걷는 불국사 담장 길. [중앙포토]

차를 갖고 다니면 어딜 가든 안전한 주차장이 필수다. 고마운 장소인데 돈을 받으면 왠지 아깝다. 유명 문화재 관람에 입장료까지 비싸면 그 지출 느낌은 더하다. 이번에 다녀온 지역은 경주 근교다. 경주는 자주 다녔어도 석굴암과 불국사는 50년 전 수학여행 때 가보고 처음 들어가 봤다. 유명한 절이니 주차요금에, 입장 후 구역마다 따로 입장료를 받는다. 그 절의 신도와 지역민은 무료다. 멀리서 온 나를 반겨주기보다 신도와 지역주민 요금까지 내가 뒤집어쓴 것 같아 아깝다. 부잣집 방을 기웃거리는 것 같이 어색하다. 며칠 여행 경비에서 주차비와 입장료로 지출한 금액만 5만원이 넘었다. 이럴 땐 내가 궁상떠는 노인이 된다.

반면에 여행을 다녀와서도 기분이 좋고 오래 기억 남는 지역이 있다. 안동은 물론 가까운 영주만 해도 그렇다. 지인들이 오면 잘 가는 곳이다. 문화재를 방문하면 개방 주차인 곳이 많고 입구에서 입장료 할인 이벤트도 한다. 어느 곳은 자신이 사는 지역 끝 글자가 ‘주’자로 끝나면 할인을 해준다. 쭉 둘러서서 주민증을 꺼내놓고 복권 맞추듯 하다 보면 웃음이 있고 즐겁다. 한번은 함께한 지인들이 여주, 완주, 영주로 모두 할인이 되고 나만 안동이라 떨어졌다. 천원의 행복이다. 할인된 천 원 한장이 웃음과 재미를 주었다.

정동진역을 내려다보는 풍경. 푸른 하늘 아래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저 멀리 선크루즈 호텔이 보인다. [중앙포토]

정동진역을 내려다보는 풍경. 푸른 하늘 아래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저 멀리 선크루즈 호텔이 보인다. [중앙포토]

얼마 전엔 강릉 정동진을 기차로 다녀왔다. 친구가 60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전문직으로 취업되어 축하 여행 삼아 함께 걸었다. 한 곳에선 도시상생교류를 하는 안동지역 사람은 할인이란다. 강원도 강릉이 하고 많은 지역 중에 안동이랑 지역 교류를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먼 곳에서 나를 반겨주는 것 같은 착각에 많이 행복했다. 마실가듯 강릉행 기차를 자주 타게 된다.

요즘은 입장료 정액을 내면 30~50%를 쿠폰으로 돌려주는 곳이 많다. 그곳에서만 쓸 수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신안군 천사섬 주위도 그랬다. 입장료의 70%를 쿠폰으로 돌려주었다. 분위기 좋은 실내에서 차 한 잔을 마시거나 지역농산물로 교환해 준다. 그것은 보리쌀, 찹쌀, 흑미, 소금 등 한 컵 정도 되는 양을 일회용 티백으로 만들었다. 너무 앙증맞고 예쁘게 포장한 산지특산물이다. 지인에게 선물했더니 그들이 다시 그곳을 찾아 인증샷을 보냈다. 빠른 기차가 생긴 요즘, 차 한잔하러 서울 간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서울근교에도 이런 곳이 참 많았다. 계산상으론 더 비싼 입장료인데도 대우받는 것 같기도 하고 비싸다는 느낌이 안 든다.

볼거리가 아무리 넘치고 많아도 돈이 중계꾼인 세상이다. 할인 이벤트는 사람과 사람 간의 따뜻한 정이 오가는 것 같은 좋은 아이디어다. 한국인의 심리를 잘 이용한 것 같다. 입장료의 일부라도 돌려받으면 대우받는 것 같고 이득인 것 같은 이상한 심리 말이다.

극성이던 코로나도 서서히 시들고, 나의 일상에도 이벤트가 필요한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가니 어느 땐 만사가 귀찮다. 바쁠 것도 없고 특별한 일도 없는 평범한 일상, 우울과 무기력도 함께 하는 나이다. 기분이 더 가라앉기 전에, 시간이 여유롭고 걸을 수 있을 때, 마음이 떠미는 곳이면 소풍을 떠난다. 여행으로 인해 많이 걷고 좋은 사람을 만나니 참 좋다. 그나마 잡다한 일상을 콕 집어 뒷담화처럼 나눌 수 있으니 이것도 행복한 이벤트다.

떠나는 가을을 따라 친구와 기차여행을 계획한다. 가성비 좋은 곳을 검색해가며 가방을 쌌다 풀었다 하는 내 마음은 벌써 여행지에서 몇 바퀴나 먼저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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