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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범 몰려 전국적 망신 당했다...생사람 잡는 '디지털 괴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아직도 ‘먹튀범’으로 오해받고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남양주 먹튀범’으로 몰린 김모(27)씨는 아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지난 1일 남양주의 한 술집의 오해로 커뮤니티에 일행의 사진을 올라가면서 전 국민에게 망신을 당했다. 가게 측이 다른 테이블과 착각을 한 실수가 드러났지만, 김씨는 최근까지도 동네 식당에서 불편한 눈길을 느꼈다고 한다. 김씨는 “계산하고 나간 지 두 시간 만에 커뮤니티에 글을 올라왔다. 그 시간에 CCTV로 우리가 계산하는 장면을 확인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며 “‘인생 망해봐라’는 식으로 올린 글에 아직도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슈추적]

인터넷 커뮤니티의 힘은 막강했다. 소박한 글이 대형 폭풍이 되고 때로는 가혹한 폭력이 되기도 한다. 최근 김씨처럼 확인되지 않은 커뮤니티의 글이나 사진으로 피해를 본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나약한 개인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국가권력이 상상 속의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됐던 것처럼, 디지털 시대의 커뮤니티의 힘은 그에 못지않은 힘을 가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기도 모르게 커뮤니티에 종속돼 있거나 뜻하지 않게 피해를 본 사람들은 ‘디지털 리바이어던’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다.

1651년에 출판된 『리바이어던』의 표지다. 상단에 리바이어던을 묘사하는 욥기 41장 24절(“그것의 가슴은 돌처럼 튼튼하며 맷돌 아래짝같이 튼튼하구나”)이 쓰여 있다. 절대군주의 상체에는 수많은 자유로운 시민 군중이 그려져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1651년에 출판된 『리바이어던』의 표지다. 상단에 리바이어던을 묘사하는 욥기 41장 24절(“그것의 가슴은 돌처럼 튼튼하며 맷돌 아래짝같이 튼튼하구나”)이 쓰여 있다. 절대군주의 상체에는 수많은 자유로운 시민 군중이 그려져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①허위 정보도 폭발한다

지난 3월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엔 “여자친구에게 여러 남성과 성관계를 하도록 했다”는 한 남성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이 다른 커뮤니티에도 알려지면서 젠더 갈등의 주제가 됐다. 지난 4월 3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에펨코리아 사이트에 올라온 성범죄 글을 수사해 달라”는 청원이 게시됐다. 16만8427명이 동의했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 글은 허위로 밝혀졌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게시물은 없는 내용을 지어낸 허위 글이다. 30대인 피의자(글 작성자)는 ‘관심을 받고 싶어서 작성했고 이렇게 이슈가 될지 몰랐다’고 했다”고 말했다. 피의자는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유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커뮤니티의 힘은 기존 미디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54개 주요 언론사의 기사를 분석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빅데이터 서비스(빅카인즈)에 따르면 2021년 1월 1일부터 11월 16일까지 보도된 기사 중 본문에 ‘온라인 커뮤니티’가 정확하게 포함된 뉴스는 1만 8021건이다. 하루 평균 56건의 뉴스가 생산되는 셈이다. 2016년 8694건이었던 것에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온라인을 뺀 ‘커뮤니티’로 검색된 기사 수는 4만3997건으로 하루 평균 137건이었다. 일각에서는 “레거시 미디어가 커뮤니티 받아쓰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경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커뮤니티에 글을 쓰기만 하면 노출이 되고 폭발적 반응을 갖고 올 수 있는 시대”라며 “작성자 입장에서는 과거 기자에게 연락해야 했던 것에 비해 훨씬 편리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언론이 커뮤니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②‘내 편’ 찾아 모이는 그들

커뮤니티의 힘을 키우는 핵심에는 충성도 높은 이용자들이 있다. 일어나자마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기 게시물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직장인 A(26)씨는 “내 글에 동조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자주 글을 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A씨는 뉴스도 커뮤니티를 통해 확인한다. 그는 “내 관심사에 맞는 뉴스가 주로 있고 공감이 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고 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지난 3월 만 15~40세 9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20대 응답자의 74.8%, 30대 응답자의 71%가 최근 한 달 내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했다고 답했다. “매일 이용한다”는 비율은 각각 41.9%, 51.4%였다.

지난 5월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발표한 자료. 이 기관은 지난 3월 전국 17개 시도 만 15~40세 남녀 9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패널조사를 통해 최근 한 달간 사용 커뮤니티 현황을 분석했다.[대학내일20대연구소 제공]

지난 5월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발표한 자료. 이 기관은 지난 3월 전국 17개 시도 만 15~40세 남녀 9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패널조사를 통해 최근 한 달간 사용 커뮤니티 현황을 분석했다.[대학내일20대연구소 제공]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혐오라는 이유로 댓글 창을 닫아버리는 등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게 보편화하면서 사람들이 이제 자신들 편히 있는 공간을 찾고 그곳에 몰리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가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4월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에펨코리아 집단성범죄 게시물' 수사 요구 청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지난 4월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에펨코리아 집단성범죄 게시물' 수사 요구 청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③소통과 범죄의 경계에 서다

커뮤니티 힘은 빛과 그림자를 낳고 있다. 무차별 폭로로 인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 거의 유일한 처벌 규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태연 변호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인터넷 글로 피해를 보고 찾아오는 피해자가 부쩍 늘었다”면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은 인터넷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인데, 제 역할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법정형(최대 7년형)은 높지만 대부분 소액벌금형으로 끝난다. 처벌 적용 기준을 완화하거나 실질 형량을 강화하는 등 법적 보완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일탈 현상 때문에 커뮤니티의 순기능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구정우 교수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에게 참여의 장을 열어주고 소통 창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언론의 게이트키핑으로 사회의 주요 의제가 설정됐다면, 이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발언하겠다’는 MZ 세대의 성향이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작용은 고민해봐야 하지만, 커뮤니티 활성화는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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