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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업무폰은 그냥 뒤져도 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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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업무폰’을 쓰는 공무원이 많습니다. 중앙부처 과장급 이상에게 스마트폰이 지급됩니다. 회사 명의의 스마트폰을 쓰는 사기업 임직원도 있습니다. 퍼스널 컴퓨터(PC)나 노트북으로 확장하면 정부나 기업이 주인인 전자기기가 태반입니다.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이 노트북도 제 것이 아니라 회사 소유물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감사팀에서 업무폰을 압수하거나 쓰고 있던 PC 또는 노트북을 가져가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뭔가를 조사하기 위해서라면 단순히 열어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포렌식 능력을 갖춘 사설 업체가 곳곳에 있습니다. 큰돈이 들지도 않습니다. 딱히 감사팀이 문제 삼을 일을 한 적이 없어도 쓰고 있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누군가가 샅샅이 들여다보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대검 감찰부는 “그래도 된다” 주장
법원 판단은 사건에 따라 오락가락
기준 없으니 늘 힘 있는 쪽이 유리

업무폰과 노트북은 사용자 허락 없이 명의자인 정부나 회사가 임의대로 뒤져도 되는 것일까요? 지운 내용까지 다 복원해 들여다봐도 되는 것일까요?

검찰은 그래도 된다고 합니다. 대검 감찰팀이 최근에 전 대검 대변인들이 쓴 스마트폰을 가져가 포렌식 작업을 벌였습니다. 대변인실에 보관돼 온 것들을 임의 제출 형식으로 받아갔습니다. 영장도 없이 통신기기를 뒤지는 것은 위법이라고 전직 대변인들이 주장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대검 감찰부의 공식 입장은 그 스마트폰이 업무폰이라 검찰의 소유물이고, 따라서 과거 사용자들에게 처분을 막을 권한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법원의 견해는 다소 애매합니다. 2017년 이른바 ‘사법 농단’ 의혹이 불거졌을 때 법원행정처의 PC들이 문제가 됐습니다. 법원 자체 조사단이 PC에 저장된 문서를 사용자 동의나 영장 없이 열어 봐도 되느냐는 물음에 부닥쳤습니다. 사용자는 동의하지 않았고, 수사권 없는 판사들이 하는 조사였기에 영장 청구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판사들이 갑론을박을 벌였습니다. PC 세 대를 ‘봉인’한 채 몇 달을 보냈습니다. 법적 모호성이 있음을 판사들이 인식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조사단이 사용자 동의나 참관 없이 PC를 열어 저장 자료를 추출했습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법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사용한 PC의 저장장치를 내주기도 했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업무폰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판사 PC 조사 경우와는 달랐습니다. 경찰이 박 전 시장 사망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조사하려 할 때 유족이 반대하며 법원에 이를 막아 달라는 집행정지 가처분을 요청했습니다.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시청은 유족이 박 전 시장이 사용하던 폰을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문제의 그 스마트폰은 서울시청 소유물이었고, 요금도 서울시청이 냈습니다. 당시 서울시청 간부는 “업무폰 등록 명의가 서울시라 하더라도 자체 조사를 위해 살펴보려면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변인들이 사용하던 폰을 가져가 포렌식 작업까지 한 대검의 입장과는 상반됩니다.

대다수 사람이 늘 디지털 기기를 옆에 두고 삽니다. 그중 상당수는 조직이나 회사의 것입니다. 업무폰과 업무용 노트북을 사용자 동의 또는 법원에서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 없이 열어 봐도 되는지가 불분명합니다. 대검 감찰부처럼 자기들 판단이 옳다고 우기면 그만입니다. 근거가 될 법이나 명확한 판례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됩니다. 대개 힘 있는 쪽에 유리하게 일이 진행됩니다.

분명한 법적 근거가 생길 때까지 각자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용까지 스마트폰을 두 개 가지고 다니고, 노트북도 업무용과 개인용을 구분해 사용하는 게 안전합니다. 특히 정부 부처의 대변인을 포함한 공직자들은 더 그렇습니다. 기자와 주고받은 메시지 때문에 사생활이 탈탈 털릴 수 있습니다. ‘설마 영장도 없이?’ 이런 안이한 생각이 화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