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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인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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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북위 30~48도에서 자라는 인삼은 백두산, 헤이룽강 일대, 러시아 연해주 인근 및 한반도 전역에서 자란다. 흔히 고려와 조선의 특산물로 생각하지만, 만주 지역에 들어선 요나 금 같은 유목민족 국가도 인삼을 상품화했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가 조선에 요구한 공물 목록에 금·은·종이는 있었지만, 인삼은 없었다. 만주의 특산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삼에 대한 만주족의 애착은 각별했다. 조선인이 인삼을 캐러 만주로 들어오는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히 항의했다.

김회룡기자

김회룡기자

후금(청)을 건국한 누르하치도 젊은 시절 백두산 인근에서 인삼을 캐다 팔아 기반을 마련했다. 후금에게 인삼은 명나라와 교역하는 중요한 물품이었다. 임진왜란 후 명나라에서는 조선에 파병한 군인들을 통해 인삼 붐이 일었다. 후금은 이때 인삼을 중국에 팔아 짭짤한 이익을 거뒀다. 때마침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중국은 차와 도자기를 팔아 유럽과 일본의 은을 빨아들였는데, 이중 적지 않은 은이 만주로 흘러 들어갔다. 신생국가 후금은 이 은으로 나라를 유지하고, 군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16세기 말~17세기 초 후금의 급격한 성장엔 이런 세계사적 배경이 있다.

역사 교육의 가치는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것보다 당대의 상황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돕는 데 있다. ‘인삼=고려·조선’ 같은 도식에 취해 있으면 16~17세기 만주족의 성장이나 조선과 후금의 갈등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세계가 돌아가는 흐름을 보는 시야가 좁아지면 요소수 사태 같은 상황에서도 허둥거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