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정의선·최태원…대기업 오너의 잇단 미국행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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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대기업 총수들이 잇달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해만 각각 3·2차례 미국을 방문한 데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북미 출장길에 올랐다.

이들에겐 미래 먹거리 발굴과 민간 외교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정치 지형과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하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캐나다·미국 출장을 위해 14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캐나다·미국 출장을 위해 14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4일 5년 만에 북미 지역으로 출장을 떠났다. 명분은 반도체 투자와 코로나19 백신 협력 확대 등이지만, 재계에선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과 그동안 올스톱됐던 글로벌 네트워크의 ‘부활’이 이면에 깔렸다고 분석한다. 이 부회장은 출국 당시 기자들에게 “여러 파트너를 보기로 돼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첫 행보로 캐나다에 있는 인공지능(AI) 센터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단순히 동향 점검이 아니라 향후 그룹의 먹거리와 비전에 대해 구상하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지난 7월 22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자동차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을 대신해 헌액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그룹]

지난 7월 22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자동차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을 대신해 헌액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올해 들어 세 번이나 미국을 방문했다. 이 중 6월 보스턴 출장에선 자율주행 합작법인인 모셔널 본사와 현대차가 인수한 로봇업체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방문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자율주행 등 혁신기술 분야의 사업 경쟁력 강화를 통해 ‘신성장동력으로의 대전환’을 추진하겠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최태원 회장도 올해 5월과 10월 미국을 방문해 경제 외교 활동을 펼쳤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주요 기업인이 참석한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3대 산업의 대미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 창출과 환경 보호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일까지는 워싱턴 D.C.를 찾아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등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2030년까지 미국에 520억 달러(약 61조원)를 투자하고, 이 가운데 절반을 전기차 배터리와 수소, 에너지 솔루션 등 친환경 분야에 집중해 탄소 감축에도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최태원 SK회장(오른쪽)이 지난달 27일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와 회동하고 있다. [사진 매코널 원내대표실]

최태원 SK회장(오른쪽)이 지난달 27일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와 회동하고 있다. [사진 매코널 원내대표실]

전문가들은 대기업 오너 중심의 민간 외교와 미래 먹거리 구상 행보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중 공급망 패권 경쟁이 심화한 상황에서 오너경영인이 가진 글로벌 인적 자본과 과감한 의사 결정 권한이 절실해졌다는 평가다.

구자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시장정책연구부장은 “국내 대기업이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축적해온 노하우와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여기에 국내 산업 전반이 예측 불가능한 대전환기를 맞고 있어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에 있어 ‘오너’의 역할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동안의 글로벌 분업 구조가 깨지고 무역 질서가 붕괴하면서 국내 대기업의 수익 구조가 위협받고 있다”며 “기업으로선 거대 시장이자 신산업 트렌드를 주도하는 미국에 대한 투자와 네트워크 확대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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