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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까지 있던 피아노 신동 김정원, 어느덧 데뷔 20년 음악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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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데뷔 독주회를 기념해 다음 달 협주곡으로 공연하는 피아니스트 김정원. [사진 크라이스클래식]

데뷔 독주회를 기념해 다음 달 협주곡으로 공연하는 피아니스트 김정원. [사진 크라이스클래식]

2001년 10월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꽁지 머리를 한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무대에 올랐다. 당시 25세. 1991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2000년 쇼팽 국제 콩쿠르의 3차 본선에 한국인 최초로 올라가면서 주목을 받았다. ‘데뷔 독주회’로 이름 붙은 이 날 연주곡목이 심상치 않았다. 10곡의 모음인 40여 분짜리 ‘전람회의 그림’을 1부에 배치하고, 2부엔 쇼팽 스케르초 4곡을 모두 연주했다. 한창때 피아니스트의 패기 넘치는 프로그램이었다.

‘영파워’로 나타나 한국 음악계의 중견으로 자리 잡은 김정원이 데뷔 20년을 기념한다. 16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성장과 함께 소모가 있었지만 음악이 부동의 1순위였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가고자 한다”고 했다. 예원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이른 나이에 유학을 떠난 그는 2000년대 초반의 스타 피아니스트였다. “데뷔 독주회 이후 팬클럽도 생겨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한동안 테크닉 좋고 무대 위 흡인력이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자리를 잡았다. 2005년 낸 쇼팽 연습곡 전곡(24곡) 음반에서는 놀랍게 빠른 템포와 정확한 손놀림이 돋보인다.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면으로 깊어지고, 다른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연주자가 돼야겠다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젊은 날의 화려하고 돋보이는 작품들 대신, 내면적이고 깊이 있는 곡들을 선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는 슈베르트의 21개 소나타 전곡 연주를 시작해 4년 동안 이어갔다. “20년의 여정 동안 슈베르트를 끝냈을 때의 벅찬 감정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슈베르트 디톡스’라 할 만큼 몸무게가 10㎏ 줄어들었을 정도로 고민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그사이 연주자의 외길에서 벗어나 네이버의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인 ‘김정원의 V 살롱콘서트’를 진행해 연주자들을 인터뷰하고, 기획자로 나서 베이스 연광철과 작곡가 김택수의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다. “6세에 피아노를 시작해 정상적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혼자 연습실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귀한 음악가를 보면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이런 활동을 한다.”

20년 동안 겪었던 피아노에 대한 애증도 고백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왜 피아노뿐이었을까라는 생각을 서른살이 넘어서야 했다. 슬럼프는 너무 자주 왔다.” 그는 “사람이 꼭 기쁨으로만 살아가지는 않고, 고난이 있고 이겨냈을 때의 감정이 매일의 평화로움보다 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결국엔 내가 음악이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이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20주년 기념 음악회는 다음 달 10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연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지휘 아드리엘 김)과 함께 베토벤 5번, 브람스 1번 협주곡을 한 무대에서 연주할 계획이다.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한 피아노에 앉아 슈베르트 네 손을 위한 환상곡도 들려준다. “20년을 돌아보기도 하지만, 앞으로 다시 항해하겠다는 선전포고와 같은 의미의 공연이기도 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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