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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서머스의 승리?…인플레 확산에 양치기 소년된 Fed

중앙일보

입력

지난 12일 미국 워싱턴의 한 슈퍼마켓에서 한 시민이 물건을 사고 나오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12일 미국 워싱턴의 한 슈퍼마켓에서 한 시민이 물건을 사고 나오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양치기 소년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코로나19 충격·공급망 대란 등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강조한 Fed의 진단이 어긋날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Fed의 주장을 뒤집는 지표가 이어지며 시장의 신뢰도 떨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Fed의 안일한 인식을 비판하며 날을 세워온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의 경고가 맞아떨어지는 모양새다. 미 재무장관을 지낸 서머스 교수는 올해 초부터 “지난 40년 중 지금보다 인플레이션 위험이 큰 적은 없었다”며 “Fed가 치솟는 물가에 대한 대응에 뒤처져 있다. 곧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음을 울렸다.

래리 서머스 미 하버드대 교수.[로이터=연합뉴스]

래리 서머스 미 하버드대 교수.[로이터=연합뉴스]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Fed의 변명은 더욱 궁색해지고 있다. Fed의 변명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CNBC 방송 등이 Fed의 변명과 안이한 진단을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①인플레이션은 일시적?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변화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노동부]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변화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노동부]

Fed는 그동안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이런 진단과 전망과는 거리가 있다.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동기대비)은 6.2%로 1990년 11월 이후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망 병목 현상 등으로 인해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다.

더 중요한 건 6개월 연속 5% 이상 상승률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WSJ에 따르면 11~12월 CPI 상승률이 5% 이상을 기록하면 1991년 이후 최장 기록을 세우게 된다. WSJ은 “(이러한 데이터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고 저절로 사라질 것이란 (Fed) 주장의 근거를 약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②공급 대란 풀리면 해소?

 지난달 14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항에 있는 컨테이너 트럭의 모습.[AFP=연합뉴스]

지난달 14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항에 있는 컨테이너 트럭의 모습.[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물가 상승 폭이 더 커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품목의 가격이 급등했지만, 코로나19 충격으로 수요가 줄어 가격이 급락한 일부 품목의 가격이 아직 회복되지 않으며 이를 상쇄했다는 게 근거다.

파월은 공급망 대란이 해결되면 인플레이션은 사라질 것이라고도 이야기해왔다. 중고차 가격이 지난 8~9월 하락했던 점을 들면서다. 문제는 인플레 압력을 키우는 공급망 병목 현상이 빠른 시간 내에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 있다. 하락하던 중고차 가격은 지난달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③평균물가목표제(AIT)

지난해 8월 Fed는 평균물가목표제(AIT)를 도입했다. 기준금리 인상 조건 중 하나인 물가상승률이 2%를 달성하더라도 이를 일정 기간 용인하고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인한 경기침체와 고용불안을 고려한 조치였다.

문제는 Fed가 인내심을 발휘할 기간이 언제까지인지 명확한 원칙이 없다는 데 있다. Fed의 어정쩡한 입장 속 물가 오름세가 이어지며 경기 침체 우려는 인플레이션 공포로 뒤바뀌었다. Fed가 CPI보다 물가상승의 기준으로 더 참고하는 미 상무부의 개인소비자지출(PCE) 가격지수도 지난 9월 1년 전보다 4.4% 상승했다. 7개월 연속 2% 이상 상승했다.

빌렘 부이터 컬럼비아대 교수는 FT에 “Fed는 일정기간 평균 2% 물가상승률이 지속하면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고 했지만 이에 대한 의미는 Fed 위원들끼리도 의견이 갈린다”며 “AIT는 Fed가 물가를 다루며 저지른 최악의 실수”라고 평가했다.

미국 개인소비지출 가격 지수 변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미국 개인소비지출 가격 지수 변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시장에선 Fed가 지금이라도 빠르게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자칫 실기해 상황을 더 나쁘게 몰고 갈 수 있다는 우려다. 금리 인상 시기를 더 당기고 돈줄 죄기를 더 서둘려야 한다는 것이다.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고문은 “Fed가 중대한 정책 실수를 저지르며 신뢰를 잃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저소득층이 물가 상승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며 “영국 영란은행처럼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꾸준히 보내고 테이퍼링 속도를 높여 사람들이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머스 교수도 “Fed는 주요 위험 요인이 과열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테이퍼링 속도를 높여야 한다”며 “특히 주택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는 주택담보증권(MBS) 매입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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