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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한시 개방" 소문에 아수라장…벨라루스 난민사태 일촉즉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동유럽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민 사태’ 갈등이 일촉즉발로 치닫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벨라루스에 대한 추가 제재로, 벨라루스는 유럽행 가스 공급 중단 위협으로 맞붙으면서다. 여기에 러시아의 병력 배치로 군사적 긴장감까지 맴돌자 프랑스와 독일 등 전 세계 정상들이 압박 외교에 나섰다.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지대에서 한 이민자가 아이를 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지대에서 한 이민자가 아이를 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로이터·AP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해 유럽 주요국 정상들은 벨라루스의 난민 사태를 놓고 외교전에 돌입했다.

전날인 14일 푸틴 대통령이 먼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접촉을 시도했다. 러시아 크렘린 궁에 따르면 두 정상은 ‘유럽행 가스 공급망’ 사안을 논의했다. 지난 11일 루카셴코가 EU의 추가 제재에 반발해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산 가스 수송관을 막겠다”고 한 그 내용이다. 앞서 푸틴은 “벨라루스가 러시아의 중요한 동맹인데도 상의 없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바 있다. 다만 이번 대화에서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15일에는 푸틴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통화했다. 2시간가량 통화에서 두 정상은 EU 회원국과 벨라루스 국경에서 발생한 긴장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주민을 위한 인도적 노력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그러나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를 두고서는 엇갈렸다. “폴란드 국경 경비대가 난민을 가혹하게 대우하고, 입국을 막고 있다”는 푸틴의 지적에 마크롱은 “우리는 폴란드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며 폴란드와의 연대를 강조했다고 한다. 또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수호를 지지한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을 겨냥하는 발언도 했다.

2019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만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2019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만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같은 날 루카셴코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50분간 통화했다. 이날 통화는 루카셴코가 지난해 8월 6선에 성공한 뒤 서방 지도자와 가진 첫 접촉이어서 주목됐다. 독일 정부 측은 양측이 난민 위기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의견 교환을 지속하는데 뜻을 모았지만, 상황을 타개할 만한 신호는 없었다고 밝혔다.

벨라루스 하이브리드 공격에…EU, 추가 체재 맞대응

유럽 주요국 정상들의 외교전은 벨라루스에 대한 EU의 추가 제재 논의 속에 급박하게 진행됐다. 그동안 서방국은 난민 위기를 촉발한 벨라루스에 대해 추가 제재를 예고하며 압박을 강화해 왔다. 실제 이날 EU 회원국은 외무장관회의를 열고 벨라루스에 대한 5차 제재를 가하는 데 합의했다. 벨라루스의 ‘난민 밀어내기’에 관여한 정부 관리·국영 항공사·여행사 등 30여명을 자산동결 등 제재 대상에 추가하는 내용이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난민 도구화에 강력히 대항하겠다는 결의”라며 “제재 범위를 확대해 난민을 착취하는 책임자를 표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미국도 14일 “EU와 협력하여 루카셴코 정권에 책임을 물을 새로운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벨라루스에 대한 강경 모드를 굽히지 않겠다는 얘기다.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난민 충돌.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난민 충돌.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U는 이번 난민 사태의 배후에 벨라루스의 보복성 개입이 있다고 보고 있다. EU가 지난해 벨라루스 시위대를 탄압한 인사 88명을 제재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난민의 유럽행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벨라루스가 서유럽 이주를 원하는 난민을 항공기로 태워 폴란드 국경으로 밀어 넣었다는 주장이다.

실제 이날 폴란드 국경 검문소에는 “국경이 한시적으로 개방될 것”이란 거짓 소문을 듣고 몰려온 난민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마르신 프리슈다츠 폴란드 외무부 차관은 이런 헛소문을 루카셴코 정권이 퍼트렸다고 의심하며 “벨라루스가 의도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벨라루스 “대응가치 없어…스스로 방어할 것”

지난해 8월 6선에 성공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AP=연합뉴스]

지난해 8월 6선에 성공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AP=연합뉴스]

하지만 벨라루스는 이런 EU의 주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루카셴코는 이날 국영 통신사 벨타와의 인터뷰에서 이민자 유입을 방조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대응할 가치 없는 주장”이라며 “우리는 여전히 난민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EU의 추가 제재에 대해서는 “스스로 방어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서방국에서는 벨라루스가 난민을 방패로 내세운 ‘하이브리드 공격’과 ‘회색 지대 전략’으로 유럽과 미국을 시험한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하이브리드 공격은 다양한 유형의 싸움이 혼재한 공격을, 회색 지대 전략은 무력을 쓰지 않고 우회적으로 안보 목표를 달성하는 전략을 말한다.

이런 가운데 EU는 그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러시아는 “말도 안 되는 억측”이라고 반발하면서도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각각 병력을 파병했다. 여기에 루카셴코가 14일 러시아 측에 “벨라루스 남부와 서부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을 배치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고조됐다. 이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15일 러시아에 어떤 공격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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