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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네슘 대란에 유럽車 휘청…차이나 리스크, 전세계 비명

중앙일보

입력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한 뒤 중국의 제조업이 전력난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해 철강 등 제조업까지 충격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안후이성의 석탄화력발전소. [EPA]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한 뒤 중국의 제조업이 전력난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해 철강 등 제조업까지 충격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안후이성의 석탄화력발전소. [EPA]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 중인 세계 경제 앞에 공급망 리스크가 거대 암초로 떠올랐다. 최근 블룸버그·파이낸셜타임스(FT)·디플로매트·워싱턴포스트(WP) 등은 “공급망 위기에 세계 경제가 발목잡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소비 회복을 뒷받침할 생산과 물류 전반에 적신호가 울리고 있다고 전하면서다. 특히 생산 문제는 중국이라는 한 나라에서 발생해 전 세계에 막강한 파급효과를 끼치고 있어 사실상 ‘차이나 리스크’로 불린다.

제조업 생산기지 원자재·중간재 글로벌 허브

글로벌 소비재 공급망에서 중국은 1차 출발점이자 생산 허브다. 민정웅 인하대 아태물류학과 교수는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미국·유럽 등 세계 기업이 중국으로 공장을 대거 이전했고, 특히 공해 산업의 중국행이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특히 선진국이 인건비·환경오염 등 이유로 ‘천연자원의 1차 가공업’을 중국 공장에 떠넘긴 게 제 발등을 찍은 격이 됐다. 희귀금속을 재료로 하는 첨단·소재산업이 중국의 보급력에 의존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민 교수는 “중국이 멈추면 단순히 아이폰과 나이키 신발을 살 수 없는 수준을 넘어 배터리·자동차·우주산업까지 휘청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들 1차 가공업의 채굴·제련 과정은 제조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원을 필요로 한다. 코로나19 백신 보급 등으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회복하고 소비 수요가 폭증하자 중국에선 공장을 돌리기 위한 에너지 수요가 급증했다. 중국은 자국내 전기 생산량의 60%를 화력발전에 의존한다. 문제는 전 세계적인 탄소 배출량 감축 정책 속에 중국이 석탄·석유 투자를 줄여왔다는 점이다. 여기에 호주와 무역 갈등으로 호주산 석탄의 수입을 스스로 끊은 것도 자충수가 됐다. 역대 유례 없는 전력난 속에 공장이 줄줄이 멈춰서면서 중국은 자의반 타의반 감산 상황에 내몰렸다.

광물종합지수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광물종합지수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한국·인도는 요소, 유럽은 마그네슘에 휘청

‘메이드 인 차이나’ 수급이 원할하지 않자 각국이 금단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요소수 품귀’ 직격탄을 맞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석탄 부족 사태 속에 중국이 요소 수출을 제한하자 한국의 운전자와 인도의 농민이 위험에 빠졌다”고 전했다. WSJ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요소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중국 요소의 수입국 1위가 인도, 2위가 한국이다. 중국의 요소 공급 중단으로 한국은 경유를 이용하는 화물 트럭과 일부 차량 운전자들이 일을 중단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중고거래에서 요소수 가격이 10배 올랐다. 인도는 요소를 활용한 비료 값이 급등해 농사를 짓기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비료 가격이 급등해 아시아 지역 많은 농부들에게 비용 부담을 키웠다”면서 “비료 1t이 쌀 1t보다 비싸졌다”고 전했다.

유럽은 중국 마그네슘 감산에 휘청대고 있다. 마그네슘은 알루미늄 합금의 원재료로, 자동차 차체, 차량용 시트 프레임, 항공기 등에 없어서는 안되는 원료다. 특히 차량 경량화가 시급한 전기차에 필수다. 중국은 전 세계 마그네슘의 85%를 생산·공급한다. 중국은 탈탄소 정책과 전력난을 이유로 마그네슘 생산량을 평소의 40%로 줄였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마그네슘의 절반 이상이 유럽으로 수출되고, 대다수 수출 물량의 최종 목적지는 독일”이라고 보도했다. 유럽의 자동차·금속·포장업계는 마그네슘 재고가 이달 안에 소진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체코의 안드레이 바비스 총리는 지난달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마그네슘 생산을 확대하지 않으면 차량 생산이 중단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과 강대강 대결을 이어가는 미국은 중국의 ‘희토류 전략물자화’ 움직임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희토류는 ‘첨단산업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17개의 원소 물질을 통틀어 일컫는다. 전기자동차, 풍력발전 터빈, 휴대전화, 항공기 부품, 광학렌즈, 컴퓨터 디스크, 영구자석, 석유촉매제 등 첨단 산업은 물론 미사일, 스텔스 전투기, 레이더 등 각종 군사용 장비와 무기 제조의 핵심 원료다. 중국의 희토류 매장량은 전 세계의 57.7%다. 희토류 비축량, 생산규모, 수출량에서 압도적 1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와 함께 희토류 공급망을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리고, 19개 주에 매장된 희토류를 재생산할 방안을 찾는 등 공급망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전세계 덮친 원자재 대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전세계 덮친 원자재 대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중국, 전력난 핑계로 자원 무기화 가능성" 

중국발(發) 공급망 위기에 대해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계열 매체인 런민즈쉰은 “한국의 요소수 위기도, 유럽의 마그네슘 위기도 중국이 의도적으로 ‘목 죄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며 “(수출 통제는) 우리가 에너지 사용량과 오염물질 배출 절감을 추진하는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경묵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다”며 “전력난 등을 핑계로 자국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급망을 망가뜨리며 자원 무기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 국영 청두TV는 “이번 위기를 통해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중국에) 반발하면 반드시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차이나 리스크를 경험한 각국은 탈중국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호주는 지난해 6월 인도와 양국 관계를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하고, 주요 광물에 대한 투자 및 연구개발·무역 확대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미국은 중국을 세계의 공장 지위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아예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새판짜기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한국·독일·호주·인도·캐나다·네덜란드·이탈리아 등 동맹 내지 우방국들을 포함시킨 ‘공급망 대책회의’를 개최한 것도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공급망 문제는 15일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는 아니지만 물밑 긴장감을 형성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G20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G20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계 각국이 경제 안보 차원에서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새로운 우군을 확보하고 정부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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