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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대선 주자들은 얼마나 ‘공정’을 이해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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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송지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송지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방송에 넘쳐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새삼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가수다’ 가 처음 방영됐을 때 가수들끼리 경쟁을 붙이는 가혹함이 논란이 됐던 사실이 떠올라서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제 대중예술계에서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와서 합격과 탈락을 가리는 게 기본값이 됐다.

이런 흐름은 대중예술계에 국한된 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징후다. 근래 정치권의 화제인 청년층은 이러한 가혹함이 일상이자 정상이 된 세상에서 성장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경쟁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게 불분명해진 세대이기도 하다. 폭등한 집값에서 기후위기에 이르기까지 미래를 낙관하기는커녕 계획하기조차 어렵다. 삶의 기본값은 가혹한데, 기댓값은 허망하다.

‘캐스팅 보터’ 청년층에 잇단 구애
‘이대남’‘이대녀’ 공략 수준에 그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선출한 두 대선 후보 모두 청년들의 마음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청년 공약을 종합하자면 두 후보의 공통점은 공정을 약속했다는 점이다. 반가운 얘기지만 선거 키워드로서 공정이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공정은 좁게도 넓게도 말할 수 있다. 아주 좁은 의미에서 공정은 게임의 규칙이 반칙 없이 지켜지는지의 문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공정한 입시·채용’을 위해 입시 비리를 엄단하겠다고 공약했을 때의 공정이 이러한 의미다. 근래의 입시·채용 스캔들을 생각하면 의미 없는 공약은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데스게임도 반칙금지 차원에서는 공정할 수 있다. 데스게임에 내몰린 사람에게 “반칙은 막았어요”라고 말하는 게 별 도움이 못 되듯이 가혹한 경쟁 시대의 청년들에게 반칙금지는 문제의 작은 부분이다.

그래서 넓은 의미의 공정이 동원돼야 한다. 윤 후보가 공약한 ‘공정한 출발선’이나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말하는 부동산 시장의 공정성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자는 것이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이론화한 철학자 존 롤스가 말하는 공정은 게임의 총체, 즉 사회협동 자체의 이득과 부담을 나누는 방식이다. 롤스의 공정은 데스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걸 넘어서 재화를 데스게임으로 나누지 않겠다는 선택까지 포함한다.

공정의 의미를 이렇게 넓히고 나면 청년층의 인식이 젠더와 계층에 따라 다양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선 후보들은 여성가족부 폐지가 공정이라고 믿는 20대와 성 평등 정책 강화가 공정하다고 보는 20대를 동시에 마주하며 자신의 공정론을 선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선거철에 공정이 회자한 정도보다 후보들이 생각하는 공정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선거가 임박할수록 공정을 흐릿한 좋은 말들로 포장해 이견을 회피하거나, 아예 ‘이대남’이나 ‘이대녀’만을 공략하는 식으로 표밭을 계산할 유혹이 강해질 것이다.

이런 유혹을 이겨내고 공정론을 제대로 펼친다고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결과물 없는 설계도에 호응하기에는 지금 청년층이 처한 삶의 조건이 각박해서다. 이를 두고 흔히 청년 세대의 ‘각자도생’ 경향을 말한다. 청년들은 가혹한 세상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그에 적응하려 한다는 평을 듣는다. 예컨대 주식시장이나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드는 식으로 각자 살길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이런 청년 세대의 합리성을 통째로 부정할 게 아니라면, 각자도생이 하나의 합리적 선택이 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넓은 의미의 공정이 청년층에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각자도생이 아닌 협동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조건의 변화 없이 선택의 변화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이렇듯 단기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데도 넓은 의미의 공정을 일관되게 추구하는 정치인이 보인다면,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이번 대선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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