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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검사님, 대충 알려주지 마세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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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사회2팀장

김승현 사회2팀장

‘문의가 많아 알려드립니다.’

이 ‘친절한’ 메시지의 출처는 검찰이었다. 최근 사회부 기자들에게 검찰과 경찰에서 보내는 알림 문자는 이렇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보다 친절해진 듯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필요 최소한의 팩트만 알리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궁금해들 하시니 이거 하나만 알려준다’는 식이다. 물론, 법과 원칙에 따라….

지난 12일에도 검찰 출입기자단에 문자가 전달됐다.

‘문의가 많아 알려드립니다. 오늘(2021.11.12.) 권○○에 대해 상장사 주가조작 관련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검찰, 김건희씨 관련 사건 공개
기소 전 공개금지 예외로 결정
입맛 따라 법리 적용해도 되나

1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에 대한 영장청구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이미 언론에 그의 실명과 혐의가 개략적으로 보도된 상황이어서 민감한 정보는 아니었다. 권 회장은 2009년 12월부터 약 3년간 주가 부양을 위해 회사 내부 정보를 유출해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 사건에 관심이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가 투자를 했다는 의혹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날 알림은 검찰이 의도했건 아니건 대선 정국과 관련된 사건의 수사 상황을 공론화하는 의미가 있었다.

검찰은 어느 때보다 신중을 기했다. 공개된 건 영장청구 사실 뿐이었지만, 공개 근거도 추가 설명했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라는 법무부 훈령의 예외 조항도 전해졌다.

김회룡기자

김회룡기자

‘〈공소제기 전 공개의 요건 및 범위〉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중요사건의 수사착수 사실 등(제9조 제1항 제5호, 제9조 제5항의 범위 내) ※2021.11. 12.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배포되는 자료임 ※공개되는 혐의사실은 재판에 의하여 확정된 사실이 아님을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소제기(기소) 전 형사사건 공개는 법무부가 내세우는 형사사건 공개금지라는 원칙의 예외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훈령은 이를 9조에 규정하고 있다. 총 35조 중 가장 긴 조항이다.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워 수사 정보 공개를 요구할 때도 검찰은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중요사건’이라는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도출했다.

검찰이 훈령 조항을 적시한 것도 공정하게 접근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취지였을 것이다. 자칫 야당 후보를 궁지에 몰 수 있는 사건 아닌가. 그러나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중요사건’이라는 짤막한 설명은 그런 조심성을 의심케 했다. 훈령을 따라가 봐도 어디에서도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포장상자를 벗겨도 벗겨도 다시 새로운 포장상자가 나왔다.

우선 훈령 9조(공소제기 전 예외적 공개 요건 및 범위)의 적용이 모호했다. 1항 5호는 ‘중요사건으로서 언론의 요청이 있는 등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어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친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 중요사건의 요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훈령은 두 개의 규정을 준용하고 있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7조 또는 검찰보고사무규칙(법무부령) 3조 1항이다. 2개의 법령에 20여 개의 중요사건이 나열돼 있다. 내란, 외환, 선거, 테러, 대형참사, 연쇄살인, 국회의원과 판·검사 등 공무원 범죄, 공안사건…. ‘정부시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건’ ‘특히 사회의 이목을 끌만한 중대한 사건’ 등도 포함돼 있다. 예외적이라던 공개 대상 사건이 무한 확장이 가능한 것도 어이없지만, 정작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어떤 중요사건으로 봤는지가 설명되지 않았다.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도 정체불명이다. 훈령은 국민의 협조가 필수적이거나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중요사건 등은 공개심의위의 의결을 거치게 했다. 위원장 1명을 포함해 5명 이상 10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하고 민간위원이 과반수 이상이어야 한다. 위원들에겐 비밀유지 의무가 있어서 검찰이 설명하지 않으면 심의위의 판단은 알 길이 없다. 결국 검찰만 아는 의결 내용을 믿고 예외 규정을 받아들이라는 얘기가 된다. ‘검수완박’ 지경에 몰렸던 검찰이 국민 앞에 이토록 자신만만해도 되는 것인가.

대선 후보 관련 수사는 어느 사건보다 소상히 공개돼야 한다. 형사사건 공개금지의 취지인 인권 보호와 무죄 추정 원칙도 어느 정도 양보돼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검찰이 관장하면서 원칙과 예외를 구렁이 담 넘듯 하는 것은 곤란하다. 원칙과 예외의 우선순위가 바뀐 이유를 검찰은 더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