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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보다 고용안정 힘 실어…금융발작 경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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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미국 테이퍼링 개시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정책금리의 목표 범위를 0~0.25%로 유지하면서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시작한다. 지난 4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발표문을 통해서다. 연준은 올해 11월과 12월에 매달 150억 달러씩 자산매입 규모를 축소한다. 내년의 축소 속도는 경제 전망 변화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속도를 따른다면 내년 6월 테이퍼링이 끝나고 그 이후에는 금리 인상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 지난 2년 연준의 통화정책을 되돌아보자.

2019년 말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출현 직후, 아무도 그 위기의 파장을 짐작하지 못했다. 2020년 1월 국제통화기금(IMF)은 그해 세계 경제가 3.3%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월에도 위기는 본격화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열흘간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를 방문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수 있었다. 많은 대학이 개강을 3월 2일에서 16일로 미뤘는데, 그 당시만 해도 2주일 시간만 벌면 대면 강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2020년 3월 16일 연준은 1~1.25%였던 정책금리의 목표 범위를 단숨에 제로금리(0~0.25%)로 내렸다.

코로나19로 풀어놓은 돈줄 죄기
노동시장 양극화 대응에 초점
빈곤층 포용과 빈부 격차에 관심
고용 회복에 상당한 시간 걸릴 것

예상하지 못했던 이 금리 인하는 미 현지시각으로 일요일 오후 5시 진행됐다. 무엇이 Fed로 하여금 주말 저녁 긴급하게 금리를 내리도록 했을까. 더구나 이틀만 기다리면 FOMC 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이렇듯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진행된 코로나19의 창궐은 2020년 6월 IMF가 세계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5.2%로 낮추게 했다.

금융완화 출구 더욱 가까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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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코로나19 위기에,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인류의 대응이 예상보다 더 신속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의료계의 헌신과 방역과 백신 등 전방위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경제정책 측면에서도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대규모의 확장적 정책이 전개됐다. 이러한 노력의 덕택으로 2020년 경제성장률은 -3.3%를 기록했다. 2020년 1월 예상했던 3.3%에 비하면 코로나19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는 처참한 숫자이지만, 6월에 예상했던 -5.2%보다는 그나마 나아진 결과였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라고 불리는 확장적 통화정책이 진행되던 지난해 8월 말, 연준은 통화정책 체계 개편을 단행했다. 연준의 정책을 논의하는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평균 인플레이션 목표제(Average Inflation Targeting)를 발표했다.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넘더라도, 상당 기간 완만하게 2%를 상회하는 궤도에 도달하도록 통화정책을 유지한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넘을 정도로 높은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는 와중에,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쟁이 진행되는 것도 평균 인플레이션 목표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신축적으로 운영되는지와 관련이 깊다. 이번 달부터 진행되는 테이퍼링과 내년에 이뤄질 금리 인상의 시기와 횟수가 이러한 신축성의 정도를 결정할 것이다.

연준이 미 의회에서 부여받은 책무는 물가안정과 최대고용(또는 완전고용)이다. 지난해 잭슨홀에서 발표된 새로운 통화정책 체계는 물가안정 책무보다 최대고용 책무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시행된 연구를 통해 연준은 강한 노동시장의 효과가 저소득층 및 중산층 지역사회에서 긍정적으로 나타난다고 강조했는데, 지난해 잭슨홀에서는 완전고용 책무를 ‘광범위하고 포용적인 목표로’ 설정했다.

경제정책의 포용성은 코로나19 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인해 더욱 중요해졌다. 이번 달 FOMC 기자간담회에서도 이와 관련된 질문이 제기됐고, 특히 파월 의장은 팬데믹 이후 노동참여율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구직을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하고 있는 점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용 상황이 금리 인상 주요 변수

테이퍼링과 금리인상 예고한 Fed

테이퍼링과 금리인상 예고한 Fed

올해 이른 여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잠시나마 잦아들면서 8월 말 잭슨홀 심포지엄이 대면과 화상회의를 혼합하는 방식으로 사흘 동안 열릴 계획이라고 알려졌지만, 코로나 충격 여파로 결국 완전 화상 방식으로 하루만 열렸다. 이 회의의 제목은 ‘불균형 경제에서의 거시경제정책’이었다. 제목에서도 팬데믹으로 인해 심해지는 양극화에 어떻게 포용적으로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 드러났다. 역시 발표된 논문의 면면을 보면 연준이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 국면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우선은 최대고용이라는 책무에 대한 고민이다. 코로나19라는 큰 충격 이후에 고용이 회복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연준의 최대고용 목표와 관련해 이전에 가장 중요시하던 실업률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노동시장 지표를 고려하게 됐다.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파월 의장에게 노동참여율에 관한 질문이 나온 것도, 이러한 고려가 금리 인상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주제로는, 저금리의 원인이 그간 잘 알려진 고령화와 성장 둔화 이외에도 소득 불평등의 심화일 수도 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팬데믹 이후 시행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조합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내용의 논문도 있었다.

달러 유동성이 세계 금융시장 지배

이번 FOMC 발표문에서 11월과 12월의 테이퍼링 액수만 정하고 이후 매입 규모 감소 폭을 경제 전망 변화를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조정의 여지를 남겨둔 것도, 지난 2년 연준이 경험하고 고민한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테이퍼링 이후에 다가올 금리 인상의 시기와 폭에 관해서는 연준의 소통과 시장의 예상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이 국제금융시장의 현실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연준의 통화정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미국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달러의 유동성이 세계의 유동성을 지배한다는 사실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양적 완화를 펼친 연준이 2013년 테이퍼링 계획과 관련해 전 세계에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이라는 금융발작을 일으켰던 경험에서 잘 알고 있다. 올해와 내년 상반기의 테이퍼링, 그리고 그 이후의 연준 금리 인상의 와중에서 의도치 않은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양적 완화, 그리고 테이퍼링

전통적으로 통화정책은 정책금리를 인상하거나 인하하면서 운영됐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여러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이 정책금리를 인하했음에도 금융시장 회복이나 경기부양 효과 등 의도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여러 차례에 걸친 금리 인하는 정책금리가 제로에 도달했고 중앙은행의 정책 여력이 제한됐다. 이에 여러 중앙은행이 정책수단 확보를 위한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하였는데 이를 비전통적 통화정책(Unconventional Monetary Policy)이라고 부른다.

미 연준은 코로나19 위기 이후에 정책금리를 제로까지 내린 이후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펼쳤고, 이중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QE)이다. 양적 완화란 정책금리의 추가 인하가 힘들 때, 중앙은행이 국채 등 유가증권 매입을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금융시장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장기금리의 하락을 유도하는 정책이다. 악화하는 거시경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국공채 등 안전자산을 매입하면서 대차대조표 규모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안전자산의 가격 증가와 장단기 금리차 축소 효과를 끌어낸다.

양적 완화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는 중앙은행이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시행하는데 그 첫 번째 단계가 테이퍼링(tapering)이다. 테이퍼링이란 양적 완화 때 시행하던 자산매입을 완전히 멈추기 전에 매입 속도를 점차 낮추는 과정을 말한다. 즉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가져간다고 하기보다는, 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펼친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러한 테이퍼링이 끝나고 나서 금리 인상이 시작되며 궁극적으로는 중앙은행의 자산이 축소되면서 전통적인 통화정책의 영역으로 되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