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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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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블라인드 채용은 지원자의 성별·인종·연령·신체조건·지역·학력·가족관계 등을 보지 않고 직무능력 중심으로 선발하는 방식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오케스트라는 백인 남성 일색이었다. 스크린 뒤에서 연주하는 블라인드 오디션을 도입하자 미국 톱5 오케스트라 여성 단원 비율이 1970년 5%에서 1990년대 후반엔 25%까지 올라갔다.

서구에서 블라인드 채용은 성별과 인종 등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는 반면, 한국에서는 학벌에 방점이 찍힌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공기관 공정채용법 제정안’, 소위 '블라인드 채용법'을 준비했다고 최근 페이스북에 밝혔다. 고 의원은 “저는 (KBS 아나운서 입사) 당시 경희대 수원 캠퍼스를 졸업했지만 블라인드 채용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면서 “대학 이름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당연한 권리가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썼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부터 공공기관·지방공기업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 시행했다.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법제화 운동을 벌이는 재단법인 ‘교육의 봄’은 홈페이지에서 “정권이 바뀌게 될 경우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정책이 수포가 될 우려가 크다”면서 "과거 참여정부 때 적용된 블라인드 채용 정책이 이명박 정부 때 폐지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적어놨다. ‘교육의 봄’ 손봉호 이사장과 송인수·윤지희 공동대표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이끌었다. 이들은 학벌이 아니라 실력이 채용을 좌우하면 입시경쟁도 줄어들고, 교육도 역량 중심으로 재편되리라 믿는다.

이미 세상은 바뀌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카카오·NC소프트 등 유수 기업들이 블라인드 채용을 적극 활용한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일 잘하는 사람을 뽑는 방법이다. 반면 공공기관은 공정성이 먼저다. 『공공기관 채용 정책에 대한 연구』(조세재정연구원, 2020)에 따르면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으로 공정성은 높아졌다. 그러나 서류 대신 NCS(국가직무능력표준) 필기시험이 당락을 가르므로 취업준비생들의 부담은 여전하다. 고졸 직무를 시험 잘 보는 대졸자가 차지하는 부작용도 있다. 공공기관이 채용 과정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도 많다. 블라인드 채용이 만능 도구는 아니다. 냉철하게 평가하고 보완해야 한다.

추가 참고자료 

* Claudia Goldin & Cecilia Rouse, Orchestrating impartiality: The Impact of "Blind" auditions on female musicians(1997)
* 교육의봄 외 17인 지음,『채용이 바뀐다 교육이 바뀐다』(우리학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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