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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소 22개월 만에 첫 증인신문 연 ‘울산시장 사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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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대통령이 2014년 7월 울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송철호(왼쪽)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송 후보는 2018년 울산시장에 당선했는데 그 과정에서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4년 7월 울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송철호(왼쪽)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송 후보는 2018년 울산시장에 당선했는데 그 과정에서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연합뉴스]

검찰, 선거 개입 의혹으로 13명 기소

사법부는 재판 질질 끌며 불신 키워

검찰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기소한 지 22개월 만인 어제 첫 증인신문이 열렸다. 2018년 6월 13일 치른 지방선거 당시 청와대와 경찰 등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 진상을 진즉에 규명해야 했는데, 내년 6월 지방선거를 불과 7개월여 남겨두고 뒷북 심문이 진행된 셈이다. 이제라도 부정선거 책임자들은 준엄하게 단죄해야 겠지만, 동시에 사법부의 직무유기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은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넘는 절친인 송철호 시장의 당선을 돕기 위해 청와대와 정부 부처가 앞장서 공약을 만들어주고, 야당 후보였던 김기현 당시 시장의 재선을 막기 위해 경찰에 표적 수사를 지시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야당은 청와대가 기획 단계부터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고, 문 대통령이 의혹의 몸통이라고 공세를 가했다.

대통령 연루 의혹 때문인지 이 사건은 수사 단계부터 난항을 겪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취임 이후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면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압박했고,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검사들을 지방으로 인사 조치했다.

수사 방해에도 검찰은 지난해 1월 송 시장,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이진석 국정상황실장 등 13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추 장관이 공소장 공개를 막았지만 뒤늦게 언론에 공개된 공소장에는 대통령비서실 직제 조직 7곳이 송 시장의 당선을 위해 동원됐다고 명시됐다.

우여곡절 끝에 법의 심판대에 섰지만 기소 이후 4개월여 만에 첫 재판이 열리는 파행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미심쩍은 이유로 재판을 지연·공전시켰다는 비판을 받은 사법부는 비난을 자초했다.

지난해 이 사건의 첫 재판장을 맡았던 김미리 부장판사는 준비 기일만 6차례 열었을 뿐 1년3개월간 본재판을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는 ‘법조계 하나회’로 불리는 우리법연구회 회원인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회장을 역임했다. 김 부장판사가 지난 4월 갑자기 휴직에 들어가는 바람에 새 재판부는 기소 이후 무려 1년4개월 만인 지난 5월에야 첫 본재판을 열었다.

선거 개입 사건의 피해자이자 고발자인 김기현(전 울산시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어제 법정에 출석하면서 “몸통이 누구인지 반드시 가려내 역사와 법의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말했다.

민의를 왜곡하는 선거 관련 범죄는 엄단해야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사법부의 공정한 재판이 보장돼야 한다. 정치적 외압이든 사법부의 자발적 굴종 때문이든 재판의 공정성이 훼손되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사법부는 이제라도 권력과 정치 진영에 휘둘리지 말고 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으로 무너진 신뢰를 되살려야 한다. 차제에 선거 사범 처리 시스템도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