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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폭등에 한국 가계 빚, 증가 규모와 속도 모두 세계 1위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의 한 시중 은행 대출 상품 관련 안내문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의 한 시중 은행 대출 상품 관련 안내문 모습. [연합뉴스]

한국의 가계 빚 규모가 세계 37개 주요국 중 가장 크고 증가 속도도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 부채 규모가 경제 규모보다 큰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늘어난 가계부채가 자산시장의 붕괴로 이어지는 ‘퍼펙트 스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15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2분기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4.2%로 조사 대상 37개국 중 가장 높았다. 홍콩(92.0%), 영국(89.4%), 미국(79.2%), 태국(77.5%) 등이 뒤를 이었다.

주요국 GDP대비 가계 부채 비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주요국 GDP대비 가계 부채 비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가계 빚 증가 속도도 한국이 1위다. 한국의 가계 부채 비율은 지난해 2분기(98.2%)와 비교해 6.0%포인트 높아졌다. 같은 기간 홍콩(5.9%포인트)과 태국(4.8%포인트), 러시아(2.9%포인트) 등과 비교해도 더 빠르다. IIF는 보고서에서 “글로벌 가계 부채가 올해 상반기에만 1조5000억 달러 늘며 조사 대상 국가의 3분의 1에서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5년 단위 증가 속도로 따져도 한국이 압도적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분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2016년보다 16.9%포인트 높아지며 같은 기간 일본(6.6%포인트), 영국(4.1%포인트), 미국(1.7%포인트)보다 높다.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세는 미국 등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더 도드라진다. 미국의 가계부채는 오히려 줄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미국의 2분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76%)은 지난해 2분기(82%)보다 떨어지며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4분기(74%) 수준에 근접했다.

가계 빚 급증의 가장 큰 원인은 집값 상승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국가부채는 레벨(규모)보다 증가 속도가 문제인데, 가계부채는 레벨과 속도 모두 문제”라며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주택 가격이 급등한 게 주요한 이유”이라고 지적했다. 에므르 티프틱 IIF 이사도 “가계 부채 증가는 세계 주요 경제권의 집값 상승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에 전세 매물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스1]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에 전세 매물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스1]

늘어나는 가계 빚은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장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해 집을 산 이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가계 빚 급증을 막기 위한 금융당국의 전방위 대출 규제로 인해 시장 금리는 오름세다. 지난 8월에 이어 한국은행이 오는 25일 추가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며 상승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9월 한은의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연내 추가로 0.25%포인트 더 오를 경우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 규모가 지난해 말보다 5조8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대출자 1인당 연간 이자 부담 규모도 지난해 271만원에서 301만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전망됐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는 평균 소득의 36%를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는데 100만원 벌면 36만원을 원리금 갚는데 쓴다는 뜻”이라며 “금리가 오르면 부담이 커져 소비를 줄이고 이는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폐업한 상점에 사금융 대출 알선 전단지가 놓여져 있다. [뉴스1]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폐업한 상점에 사금융 대출 알선 전단지가 놓여져 있다. [뉴스1]

가계부채에서 시작한 후폭풍이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로 이어지는 ‘퍼펙트 스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주택값과 가계 빚이 높은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며 금리 인상 속도까지 빨라지면 가계와 금융 시장에 충격이 미칠 수 있어서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국내 증시가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저금리와 경기 회복 때문”이라며 “금리 인상에 원자재값 급등·공급망 대란 등으로 기업 이윤까지 줄어들면 주가 급락 등 자산 거품 붕괴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 등으로 가계 빚 증가 속도를 낮추려 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집값 안정이라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로 증가 속도가 일부분 꺾이고 있지만,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이 근본 해결책일 수 없다"며 "부동산 가격 안정이 (가계 부채 문제 해결의)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윤성훈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이날 발표한 ‘주요국 가계부채 조정 사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사례를 보면 주택가격 조정 없이 가계부채가 안정된 경우는 없다”며 “주택가격이 안정돼야 가계부채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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