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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소수 찾아도 배 없어···산업부 연락하니 '우린 요소만 담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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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부산신항에서 정부의 해운 물류 대란 대책이 발표된 가운데 HMM 한울호에 컨테이너가 선적되고 있다. [뉴스1]

지난 6월 부산신항에서 정부의 해운 물류 대란 대책이 발표된 가운데 HMM 한울호에 컨테이너가 선적되고 있다. [뉴스1]

# 무역업을 하는 신모씨는 요소수 품귀 사태가 터진 직후부터 미국과 일본을 뒤지다시피하며 요소수 찾기에 나섰다. 그는 마침내 미국에서 요소수를 100톤 가까이 줄 수 있다는 기업을 찾았지만 또 다른 벽에 부딪혔다. 신씨는 “미국 항만에서 컨테이너 적체가 심해 8월에 예약한 컨테이너도 아직도 못 들어오는 상황”이라며 "정부 도움 없이는 해결이 안되겠다고 생각해 바로 조달청과 산업통상자원부에 연락했다"고 했다. 하지만 5일이 지나 연락해온 산업부 사무관은 “우리는 요소만 컨트롤 한다. 요소수는 환경부 소관이니 환경부 쪽과 상의하라”고 했고, 해운물류와 관련해선 “요소수 문제는 HMM(해운전문업체·옛 현대상선)에서 우선 접수해주기로 했으니 HMM에 직접 연락하라”고 했다. 신씨는 15일 “알려준 환경부 번호로 전화했는데 연결이 안 된다”며 답답해했다.

요소수 품귀 사태 속에서 글로벌 해운 병목이 가뜩이나 힘든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 각국이 위드코로나를 선언하면서 물동량이 급격히 늘어 전세계적으로 배편 수급 차질, 미국 항만의 컨테이너 적체 심화, 천정부지로 치솟은 해상운임 등의 난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해외에서 급하게 요소나 요소수를 구하고 있지만 국내 반입까지 넘어야 할 산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베트남·호주·멕시코 등에서 요소수를 구한 종합상사들도 배편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베트남에서 요소수 1100톤을 구한 김관영 LX인터내셔널 하노이 지사장은 “요소수를 확보하기 전 컨테이너 배부터 수배했다”며 “물건을 잡고 나서 배를 알아보려면 선적도 어렵고 한국에 도착하는 날짜가 늦어질 수 있어 물류 부분 자회사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호주와 멕시코에서 요소수 18만 리터를 확보한 포스코인터내셔널 관계자도 “HMM이 호주발 선복을 확보하고 배선스케줄을 조정해줘 공급 난관을 풀 수 있었다”고 했다. 체계화된 뱃길 구하는 통로가 없는 중소기업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항만 적체 속 물동량 급증이 원인 

기업들이 겪는 해운 병목 현상은 최근 수개월 사이 더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대구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모씨는 “이집트에 염색 기계를 보내야하는데 30컨테이너 정도를 석 달 째 못 보내고 있다”며 “배도 없고, 배를 겨우 잡아도 해상운임이 너무 비싸다”고 호소했다. 그는 “물건을 만들어 놓고도 계속 밀리고 회전이 안 된다”고 우려했다. 해운업에 종사하는 조모씨도 “과거 컨테이너 하나당 2000달러면 갔던 이집트도 지금은 9800달러이고, 에디오피아도 컨테이너 한 개당 가격이 2500달러였지만 지금은 1만2000달러”라며 “운송 자체가 안 돼 컨테이너 수십 개가 대기중”이라고 했다.

실제 컨테이너선 15개 주요 항로의 운임을 종합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12일 기준 전주 대비 18포인트 오른 4554를 기록했다. 15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 컨테이너 2TEU(40피트짜리 표준 컨테이너 1대분)당 평균 신고운임은 미국 서부 1139만원(전년 동기 대비 +173.0%), 미국 동부 1223만3000원(+235.6%), 유럽연합(EU) 1055만1000원(+462.9%)에 달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12일 전주 대비 18포인트 오른 4554를 기록했다. [자료 SCFI]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12일 전주 대비 18포인트 오른 4554를 기록했다. [자료 SCFI]

이같은 물류 문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항만 적체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물동량이 급증한 영향이 다. 특히 미국·유럽 등에서 소비재 수요 증가에 따른 물동량 폭증에 따른 지연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국가 수송 인프라 기간 산업 투자해야” 

지난 11일 정부는 호주에서 요소수 2만7000리터를 긴급 공수하기 위해 군 수송기를 투입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품귀 사태’ 이전 기준 가격으로 하면 약 2700만 원어치를 수입하기 위해 투입한 시그너스의 호주 왕복 항공유가 시세 기준 1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군 수송기 투입을 두고 부정적 여론이 일자 정부 측은 “교통, 물류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돈이 얼마라는 식의 경제적 가치로서만 국가의 재난 상황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지난 10일 김해공항에서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KC-330)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공군 수송기는 호주로부터 요소수 2만7천ℓ를 긴급 공수하는 작전에 투입됐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10일 김해공항에서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KC-330)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공군 수송기는 호주로부터 요소수 2만7천ℓ를 긴급 공수하는 작전에 투입됐다. [사진 연합뉴스]

이준봉 무역협회 물류서비스실장은 “워낙 긴급상황이다보니 배로 들여오려면 당연히 오래 걸려서 민항기도 알아보다가 급하게 활용할 수 있는 군용기를 사용한 것으로 안다”며 “물류난이 내년 갑자기 회복될 걸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박명섭 국가해양력포럼 회장(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은 “수출을 많이 하는 한국에서 해운업은 국가의 수송 인프라를 담당하는 기간산업”이라며 “옛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수십 년에 걸쳐 개척한 노선 네트워크와 운항 노하우 등이 사라진 상황에서 앞으로 초대형선 발주, 네트워크 강화 등의 투자를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은 2017년 파산해 일부 노선이 SM상선에 인수됐고, 옛 현대상선은 2016년 현대그룹에서 채권단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뒤 지난해 HMM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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