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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도로땅 잘못 샀다간 개발하지도, 팔지도 못한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44)

사람이 걷든, 차가 다니든 일반 공중의 통행에 제공된 도로, 즉 공로에 해당한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습니다. 개별법상 도로의 개념은 조금씩 다른데요. 도로법상 도로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관리하는 고속국도부터 구청장이 관리하는 구도까지 다양합니다. 반면 도로교통법 상 도로는 도로법상 도로 외에도 현실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 또는 차마가 통행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로서 그 범위가 더 넓습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 주차구획선 안쪽 부분은 도로가 아니지만, 주차구획선 바깥 부분은 경우에 따라 도로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습니다(대법원 2005. 1. 14 2004도6779 판결). 대리기사가 하차한 후에 주차만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에 해당할 수도 있지요.

흔히 누구나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도로이기에 도로는 모두 국가 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사유지인 사도의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국유지든 사유지든 일단 해당 토지의 등기부 등본의 지목란에 ‘도로’라고 기재되어 있다면, 누구도 독점적 배타적 토지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도로에 편입되면 도로의 소유권을 이전하거나 담보로 제공하는 것 외에는 도로를 구성하는 부지, 옹벽, 그 밖의 시설물에 대해서도 일체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도로법 제4조). 심지어 토지주라도 도로를 파손하거나 장애물을 쌓아놓는 경우 정도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가능한 도로법 위반(도로법 제114조 제7호, 제75조)이나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가능한 일반교통방해죄(형법 제185조)로도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토지가 도로부지나 인접한 접도구역으로 지정되었다면 재산권 행사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수용이나 매수청구절차를 통해 돈으로 보상받는 편이 나을 겁니다.

다만 사용 목적이 분명한 토지라면 도로로 지정되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할 텐데요. 도로로 지정할 때에는 해당 토지가 공중의 통행에 이용되고 있는 현황이 주로 고려됩니다. 따라서 토지주가 도로가 이어진 길에 ‘사유지 침입 금지’라는 표식을 하거나 통행을 엄격히 차단하는 것은 자칫 마음씨 좋게 통행을 용인했다가는 다음에 도로가 지정되거나 추후 권리행사를 못 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지요.

국유지든 사유지든 일단 해당 토지 등기부 등본의 지목란에 ‘도로’라고 기재되어 있다면 누구도 독점적 배타적 토지를 사용하지 못한다. [사진 pxhere]

국유지든 사유지든 일단 해당 토지 등기부 등본의 지목란에 ‘도로’라고 기재되어 있다면 누구도 독점적 배타적 토지를 사용하지 못한다. [사진 pxhere]

그러면 도로법상 도로로 지정되지 않은 길, 즉 사도라면 사도 개설자가 공중의 통행을 막을 수 있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개설자도 원칙적으로는 일반인의 통행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사도를 보전하거나 통행상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경우 등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통행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는 있습니다(사도법 제9조). 그리고 사도를 개설·개축·증축·변경, 또는 사용료 징수를 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장의 허가를 얻어야 합니다(사도법 제4조, 제10조).

따라서 도로의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도로를 점유·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공로로 제공된 도로의 철거, 점유 이전 또는 통행금지를 청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대법원 2021. 3. 11. 선고 2020다229239 판결 등 참조). 심지어 토지주가 동의했든, 하지 않았든, 어떤 토지가 공로로 개설되게 된 경위도 묻지 않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이런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는데요. 사례로 살펴보겠습니다.

A사는 2002년 5월 도로를 포함한 공장부지를 매수했습니다. 매수 당시 도로는 수십 년 전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마을 주민과 인근 공장 출입자들의 통행로로 제공되어 주요 마을 안길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는데, A사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적은 없었습니다. 2005년 관할 지자체인 김포시는 해당 도로를 포장했고 그 이후에도 이 사건 도로는 계속 마을 안길로 주민과 인근 공장 출입자, 차들의 통행로로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우회로가 있기는 했지만 상당한 거리였습니다.

몇해 전인 2019년 A사는 이 도로를 사용하는 차량의 수가 많지 않고 도로가 폐쇄된다 해도 통행이 불가능한 건 아니라며 김포시를 상대로 사용료 보상을 청구하는 부당이득반환를 하였고 일부 승소하자, 이번에는 사업상 도로를 다른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며 김포시를 상대로 도로를 반환하라는 토지 인도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도로의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도로를 점유·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공로로 제공된 도로의 철거, 점유 이전 또는 통행금지를 청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사진 pxhere]

도로의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도로를 점유·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공로로 제공된 도로의 철거, 점유 이전 또는 통행금지를 청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사진 pxhere]

이에 대한 1심, 2심 판결도 엇갈렸습니다. 1심은 A사의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2심은 배척했습니다. 2심이 A사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언급한 것이 바로 ‘권리남용’의 이론인데요. 권리 남용은 ‘권리가 있다고 해도, 그 권리의 행사가 주관적으로 오직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입히려는 데 있을 뿐, 이를 행사하는 사람에게는 이익이 없고, 객관적으로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볼 수 있을 경우’에 권리 보유자가 권리의 행사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2다 20819 판결).

실제로 이 도로가 있다 해도 A사가 운영하는 공장의 운영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고, A사는 도로를 다른 용도로 사용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이나 구체적인 계획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이 사건 도로가 폐쇄되면 이어진 마을 안길은 가운데 부분이 완전히 끊어지게 되고, 인근 주민과 공장 출입자들이 상당한 거리를 우회해야만 하는 불편과 혼란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2심은 A사의 토지 인도 청구를 ‘A사에는 아무런 실익 없이 도로 이용자들에게 손해를 입히려는 목적밖에 없는 권리남용’으로 보고 김포시의 손을 들어준 것이지요. 그리고 최근 대법원 또한 2심의 판단을 수긍하면서 A사의 패소를 확정했습니다(대법원 2021. 10. 14. 선고 2021다242154 판결).

결국 A사는 도로를 활용해 개발할 수도 없고, 다른 곳에 두둑이 값을 매겨 팔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렇다고 A사가 함부로 도로를 파손하거나 차단할 경우에는 형사 처벌까지 될 수 있으니 결국 이도 저도 못하고 계속 도로를 보유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A사로서는 도로 땅 한번 잘못 샀다가 낭패를 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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