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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상처 난 아이 마음 위로하는 ‘호야토토’처럼 작은 관심으로 아동학대 예방해요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0월 생후 16개월 입양아가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이른바 ‘정인이 사건’이 알려지며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어요. 특히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면서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됐죠.

왼쪽부터 현지용 학생모델·미술치료사 오희정 강사·김재현 학생기자.

왼쪽부터 현지용 학생모델·미술치료사 오희정 강사·김재현 학생기자.

한국은 2007년부터 매년 11월 19일을 ‘아동학대 예방의 날’로 지정, 아동학대의 예방과 방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아동학대 예방을 상징하며 학대로부터 아동을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는 약속이 담긴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도 진행합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학대 아동의 위기징후를 보다 빠르게 감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문제를 전담할 수 있는 전문성 있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숫자를 대폭 늘리고, 경찰·학교·의료계·시민사회·아동보호기관 등이 참여하는 종합적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했죠.

이보다 앞선 2018년, 시민·전문가·기업 등이 문제를 제안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서울 디자인 거버넌스’에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이 있어요. 바로 교직을 거쳐 22년간 미술치료사로 활동하는 오희정 강사입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학대 피해 아동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서비스디자인’이라는 주제로 발전했고, 각 분야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한 ‘학대 피해 아동팀’이 꾸려졌죠. 이후 서울시·서울지방경찰청·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등 여러 전문기관의 자문을 거쳐 2019년 깜찍한 토끼 인형을 중심으로 한 ‘호야토토’ 시리즈가 탄생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김재현 학생기자·현지용 학생모델이 오 강사를 직접 만났죠.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맞아 현지용 학생모델·오희정 강사·김재현 학생기자(왼쪽부터)가 만났다. 학대 피해 아동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호야토토’ 인형을 품에 안은 오 강사.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맞아 현지용 학생모델·오희정 강사·김재현 학생기자(왼쪽부터)가 만났다. 학대 피해 아동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호야토토’ 인형을 품에 안은 오 강사.

재현: 아동학대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여러분에게 먼저 물어보고 싶어요. 아동학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지용: 아동에게 언어·신체적으로 상처를 주는 행동이요) (재현: 물리적·정신적으로 피해를 주는 모든 행위라 생각해요) 잘 알고 있네요. 조금 더 전문적으로 이야기하면, 아동학대의 범주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첫째, 신체적 가학 행위, 둘째, 언어적 폭력, 그리고 마지막은 정서적 방임이죠. 보통 학대라고 하면 언어나 행동적인 것만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반대로 방치하는 행위도 학대에 속해요. 아직 무언가를 혼자 챙겨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린아이에게 밥을 챙겨주지 않는다든지, 함께 살고 있지만 그렇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관심한 것도 학대의 일종이죠.

지용: 미술치료사로 일하며 특별히 아동학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직업 특성상 어린 친구들을 비롯해 다양한 분들을 만나는데요. 내담자 중 마음의 문제가 어린 시절의 학대와 연결되는 부분이 종종 있더군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동학대에 관심이 갔죠. 서울의 한 관계 기관에 방문했을 당시 한 피해 아동의 부모님이 사건을 접수하는 동안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 있는 걸 목격했어요. 아이를 보호하는 담당자가 있긴 했지만 낯선 환경 탓인지 아이는 많이 위축된 상태였죠. 기관뿐 아니라 아동학대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껴 스스로 경찰에 신고한 친구들조차도 현장접수가 이뤄지는 짧은 시간 동안 겁에 질리고 불안해하기 마련이거든요. ‘나를 찾은 내담자들이 미술치료를 하며 힘든 마음을 위로받듯 기관에서도 아이를 위한 미술 키트를 갖추고 있다면 좋을 텐데’란 생각이 들었죠. 서울시 디자인 거버넌스에 피해 아동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도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글을 썼고, 많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호야토토 시리즈가 탄생했어요.
호야토토 인형은 5~7세 아이들이 품에 안았을 때 가장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질감과 색을 가진 토끼 인형으로 설계됐다. 호야토토 인형을 직접 만져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부드럽고 느낌이 좋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호야토토 인형은 5~7세 아이들이 품에 안았을 때 가장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질감과 색을 가진 토끼 인형으로 설계됐다. 호야토토 인형을 직접 만져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부드럽고 느낌이 좋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지용: 호야토토 시리즈의 주인공이 토끼 인형인 이유가 있을까요.

곰 캐릭터를 활용한 ‘호야곰곰’이나 호랑이 인형으로 ‘호야어흥’을 만들 수도 있었겠죠(웃음). 그런데 혼자 있을 때 장난감을 만지며 안정감을 얻는 5~7세 아이들을 분석했을 때, 남녀 가리지 않고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토끼라 하더라고요. 만졌을 때 보들보들해 안정감을 주고 색도 희고 고운 토끼 인형을 만들면 좋겠다 싶었죠. (지용: 실제로 만져보니 정말 부드러워요!) 이후 토끼 인형을 중심으로 5가지 놀이가 담긴 놀이 상자·쿠션·손수건 등이 만들어졌어요. ‘호야토토’라는 이름은 인형과 장난치며 놀다가도 ‘아팠지? 호~호~’하고 불어주며 서로 위로할 수 있다는 데서 유래했죠. 팀 내에선 호야토토 인형이 더 유명해지면 다른 동물 시리즈도 만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재현: 미술치료사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아동 관련 사연이 있다면요.

미술치료사는 내담자에 대해 비밀유지를 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자세한 얘기를 할 순 없지만,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남학생이 있어요. 예전에 학교에 있는 상담실에서 미술치료를 진행했는데, 어느 날 덩치도 좀 있고 조용한 남학생이 왔어요. 한겨울이라 매우 추운데도 반소매를 입고 있더라고요. “하나도 안 추워요”라고 말은 하는데, 미술치료를 하다 보니 그가 정서적 방임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무슨 옷을 입는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가족이 아무 관심이 없던 거예요. 이 친구와 인연을 더 이어가진 못했지만, 요즘처럼 쌀쌀한 날이 오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생각이 많이 나죠. 물론 좋은 기억도 많아요. 미술치료를 진행하기 전보다 아이들이 좀 더 건강하게 -여기서 건강하다는 건 키 커지고 공부 1등하고 그런 게 아니라, 아이답다는 걸 말해요- 자랄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게 체감될 때죠. 그 사람다운 모습을 되찾는 데 일조한다는 게 자랑스럽고 좋아요.  
오 강사는 다수의 대학·대학원에서 미술치료 강의를 했다. 사진은 오 강사가 진행한 미술치료에 참석한 수강생의 모습.

오 강사는 다수의 대학·대학원에서 미술치료 강의를 했다. 사진은 오 강사가 진행한 미술치료에 참석한 수강생의 모습.

재현: 미술치료의 원리가 궁금해요.

내가 그린 그림·작품엔 나의 마음이 반영돼 있다는 데부터 미술치료가 시작돼요. 글을 쓸 때 본인의 생각이 들어가듯, 미술 작품 안에도 그린 이의 마음이 들어가 있기 마련이죠. 미술치료나 검사는 통계에 기반을 두거든요. 미술치료사는 통계적으로 나올 수 있는 미술적 상징을 통해 사람의 심리를 보죠. 말로 본인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고 내가 왜 이런지 혼란스러운 사람들도 그림을 통해 현재 상황을 대략 파악하고, 상태가 호전될 수 있도록 다양한 미술 활동을 병행하는 거예요. 미술치료를 반복하며 그림의 방향이 달라지면 ‘이 사람의 마음은 치유가 됐구나’ 알 수 있죠.  

지용: 속상한 일이 있을 때 혼자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나요.

미술 활동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가능해요. 그림을 그리고 여러 재료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죠. 본인에게 잘 맞는 재료라면 꼭 멋있는 작품을 완성하지 않아도 마음을 치유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어요. 과감하게 물감을 칠한다거나, 세밀한 작업을 좋아하면 컬러링 북에 몰입하는 것도 좋죠. 다만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데 억지로 ‘너 이거 그려볼래’ 강요한다면 스트레스로밖에 다가가지 않겠죠. 뭐든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게 최선이에요.
오 강사가 ‘서울 디자인 거버넌스’에 제시한 학대 피해 아동 관련 아이디어는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호야토토 시리즈로 거듭났다.

오 강사가 ‘서울 디자인 거버넌스’에 제시한 학대 피해 아동 관련 아이디어는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호야토토 시리즈로 거듭났다.

지용: 가끔 친구들의 고민을 들으며 심리치료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나는 친구 이야기 들어주는 게 좋아’라며 치료사의 꿈을 키울 수도 있겠지만, 일방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내 이야기도 하며 대화를 주고받는 게 더 중요해요. 누구 한 사람에게 감정이 모두 전가되는 건 바람직한 관계가 아니거든요. 고민이 많다면 그걸 모두 다른 친구에게 쏟아내기보단 저 같은 치료사나 상담 선생님·의사 등 전문가를 찾아야 합니다. 또, 직업적으로 치료사에 접근하는 것도 좋지만 아직은 꿈이 많을 나이니까요. 본인이 좋아하는 게 뭔지 많이 생각하고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과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을 가져보세요. 책을 읽고 토론하거나 이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도 좋죠. 그러다 보면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이구나’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힘도 생길 거예요.

오 강사의 조언을 들으며 가슴이 따뜻해진 두 사람. 마지막으로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했습니다.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우리가 모두 아동학대에 관심을 갖고 피해 아동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모여야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어요. 많은 어른이 ‘애들이 뭔 고민이 있어’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주변 상황이 힘드니까 가출도 하고 자신을 못살게 구는 거거든요. 친구·가족·이웃·학교 더 나아가 국가가 하나 돼 도와야죠. 참 다행인 건요. 예전에는 아동학대 예방 관련 캠페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달라졌다는 거예요. 학대 피해 아동들의 신체적·정신적 치료를 지원하는 곳도 늘어났고, 기업·국가에선 인식 변화를 위한 각종 캠페인도 진행하죠. 여러분도 주변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나 널 지켜보고 있어’라고 알려줄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이 되길 바라요.”

22년간 미술치료사로 활동해온 오 강사는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2년간 미술치료사로 활동해온 오 강사는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신고, 이렇게 하세요!

언제 신고하나요?
- 아동의 울음소리·비명·신음이 계속되는 경우
- 아동의 상처에 대한 보호자의 설명이 모순되는 경우
- 계절에 맞지 않거나 깨끗하지 않은 옷을 계속 입고 다니는 경우
- 뚜렷한 이유 없이 지각이나 결석이 잦은 경우
- 나이에 맞지 않는 성적 행동을 보이는 경우

무엇을 신고하나요?
아동이나 학대 행위자의 정보를 파악하지 못해도 신고할 수 있습니다.
- 신고자의 이름·연락처
- 아동의 이름·성별·나이·주소
- 학대 행위자로 의심되는 사람의 이름·성별·나이·주소
- 아동이 위험에 처해있거나 학대를 받고 있다고 믿는 이유

어떻게 신고하나요?
신고자의 신분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 제62조에 의해 보장됩니다.
- 전화: 국번 없이 112
- 방문: 관할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 모바일 앱: 아이지킴콜 112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예전보다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아동이 학대를 당하고 있죠.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미술치료사로 22년간 일해 온 오희정 강사님과 대화하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강사님뿐 아니라 많은 어른이 아동학대에 관심을 갖고 호야토토 인형을 만들었단 사실도요.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변인들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해요. 모두가 협력해 투명한 사회를 세워나가고, 관심이 지속해서 오갈 때 비로소 아동학대는 사라질 것입니다. 아동학대 예방의 근원은 관심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김재현(서울 풍성중 2) 학생기자

평소에도 뉴스에서 아동학대 사례를 보며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 취재를 통해 오희정 강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어요. 오 강사님께서 아동학대의 정의와 현실에 대해 말씀하시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저도 몹시 마음이 아팠죠. 이로 인해 상처를 받는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시다가 ‘호야토토’ 인형의 초기 아이디어를 제안하게 됐다고 하셨어요. 안타까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를 직접 제시하는 실천력·행동력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였죠. 강사님께서 호야토토 인형을 직접 보여주셨는데 껴안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 것 같았어요. 정말 호야토토가 상처난 친구들의 마음을 ‘호~’하고 따뜻하게 불어 주는 것처럼 느껴졌죠. 아동학대로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미술치료사도 정말 멋진 직업이라 생각해요.  현지용(서울 가곡초 6) 학생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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