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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후유증 앓다 죽은 아내, 장기 못준다" 남편 반대 왜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 닉 구세는 뇌사 판정을 받은 아내 하이디 페러(50)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장기 기증 희망자였던 페러의 뜻에 따를 것이냐를 두고서다. 예정대로라면 인공호흡기를 떼기 전 페러의 장기를 적출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 1년 페러가 앓았던 코로나19 후유증이 발목을 잡았다. 페러의 장기를 받을 환자들이 혹여 그와 같은 고통을 겪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아르헨티나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중환자가 치료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중환자가 치료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에서 코로나19 완치자의 장기 기증을 두고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재 미국에선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으면 장기 기증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코로나19에 감염됐었더라도 수술 전 음성 판정을 받으면 장기를 기증할 수 있다. 어떤 질병을 앓고 있더라도 이식 조건에 부합하면 누구나 기증자가 될 수 있다는 게 미국 장기 기증 가이드라인이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후유증을 오래 앓은 환자는 예외로 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코로나 감염 후유증, 이른바 ‘롱 코비드’는 코로나19 환자와 다른 사례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페러가 그랬다. 페러는 지난해 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큰 어려움 없이 완치됐지만, 코로나19 후유증이 찾아왔다. 온 몸이 격렬하게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소화 불량, 불면증에 이어 기억력 저하도 겪었다. 증상은 1년 간 이어졌고, 긴 투병에 지친 페러는 극단적 선택을 했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

페러의 고통은 끝났지만, 그의 장기 기증 여부는 가족의 선택으로 남겨졌다. 의료진은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아 기증에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남편 구세의 입장은 달랐다. 비록 폐에서는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뇌·심장·소화 기관 등에 바이러스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페러의 장기를 누군가에게 이식하는 건 살인 행위”라며 대신 코로나19 연구를 위해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장기 조직과 세포의 ACE2 단백질과 결합해 인체에 침입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장기 조직과 세포의 ACE2 단백질과 결합해 인체에 침입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NYT에 따르면 전문가들의 입장을 가른 건 기증자의 ‘숨어 있는 바이러스’와 수혜자의 ‘면역력 저하’였다.

구세와 뜻을 같이 하는 전문가들은 기증자의 또 다른 장기에 바이러스가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2월 미시간주에서 폐를 이식 받은 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의료진은 기증자와 수혜자의 코와 목에서 채취한 세포로 코로나19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모두 음성으로 나와 수술을 진행했는데, 사흘 후 수혜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수술 후 이식한 폐 조직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다만 의료진은 수술 전부터 기증자가 감염 상태였던 것인지, 수혜자가 수술 후에 감염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앞서 독일 함부르크에펜도르프대 연구진은 심장·신장·간·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물질(RNA)이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 한 병원의 신장 이식 수술 현장. [AP=연합뉴스]

미국 한 병원의 신장 이식 수술 현장. [AP=연합뉴스]

다른 한편에선 면역력 저하가 수혜자의 코로나19 감염률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장기이식 환자는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수술 후 거부 반응을 막기 위해 복용하는 면역 억제제의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캐나다 토론토대 이식센터의 디플리 쿠머 박사는 “폐 외의 장기에서 발견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증식한다는 증거는 없다”며 “장기이식 환자의 바이러스 감염은 면역체계 저하에 따른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쿠머 박사는 "장기의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혜자가 원한다고 이식 수술을 해도 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완치자의 장기 기증에 관한 보다 세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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