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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정치인의 음주·초보·졸음운전…뭐가 가장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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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재명 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사진 왼쪽부터). 안 후보는 "지금 국민은 음주운전자와 초보운전자 중 한 사람을 뽑으라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꼬집어 반향을 일으켰다.[뉴스1]

이재명 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사진 왼쪽부터). 안 후보는 "지금 국민은 음주운전자와 초보운전자 중 한 사람을 뽑으라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꼬집어 반향을 일으켰다.[뉴스1]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새 정치'를 줄곧 주창해왔다. "정치 참여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새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야박한 평가를 받아온 안 후보가 요즘 촌철살인 논평을 내놓으면서 정치평론가 자질을 뽐내고 있다.
 안 후보는 지난 7일 '안철수 X 진중권 대한민국 혁신 논쟁 선을 넘다'라는 북 콘서트에서 "지금 국민은 음주운전자와 초보운전자 중 한 사람을 뽑으라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며 "(이런 후보들에게) 대한민국 5년을 맡겨달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약점을 겨냥한 정문일침이었다. 이 후보는 2004년 5월 면허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58%의 만취 상태에서 운전하다 적발돼 벌금 150만원을 물었다. 윤 후보는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다 지난 6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해 불과 4개월여 만에 제1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정치 초보다.
 안 후보가 던진 화두는 지난 10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도 인용됐다. 안 후보의 표현대로 다음 대선이 음주운전자와 초보운전자 중에서 뽑아야 할 정도로 유권자들이 난감해하는 상황인데, 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를 하겠다고 출마한 이 후보는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를 충분히 준비했는지 물었다. 이 후보는 음주운전 경력과 욕설 전력까지 사과하더니 곧이어 윤 후보가 초보운전자여서 불안하다고 공격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10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10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 후보 지지자들은 수세를 공세로 바꾼 순발력을 칭찬했을 듯하다. 하지만 음주운전보다 초보운전이 더 위험하다는 취지의 비교 발언이 논란을 키웠다. 관련 보도에는 "사실상 살인과도 같은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간과했다"라거나 "음주운전은 불법이지만 초보운전은 합법"이라는 비판 댓글이 붙었다.
 그렇다면 '교통사고 가해운전자의 운전면허 취득 경과 연수와 사고 건수 및 사망자 수'를 분석한 도로교통공단의 지난해 통계를 살펴보자. 1년 미만 초보운전자가 낸 사고는 5536건으로 사망자가 76명 나왔다. 1년 이상~2년 미만은 4284건이 발생해 43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운전이 숙달된 4년 이상~5년 미만 경력자도 사고를 5147건이나 냈고 75명이 숨졌다. 심지어 9년 이상~10년 미만은 2만3437건에 무려 299명이 숨졌다.
 음주운전 처벌을 대폭 강화한 '윤창호 법'을 제정할 때 자문했던 교통전문가 장택영 교통안전환경연구소장은 "면허 취득 이후 2년까지를 초보운전으로 간주하는데 자신이 초보인지 알기에 무리한 운전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 5년 이상 운전 경력자는 운전 실력을 과신하다 오히려 사고 낼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16년 7월 17일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향 봉평터널 입구에서 관광버스가 승용차 5대를 잇따라 추돌했다. 이 사고로 승용차에 타고 있던 여성 4명이 희생됐다. 당시 졸음운전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강원경찰청]

2016년 7월 17일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향 봉평터널 입구에서 관광버스가 승용차 5대를 잇따라 추돌했다. 이 사고로 승용차에 타고 있던 여성 4명이 희생됐다. 당시 졸음운전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강원경찰청]

 교통 전문가들이 가장 위험한 운전으로 꼽는 것은 졸음운전이다. 외국에서는 졸음운전을 '숨은 살인자(hidden killer)'로 부를 정도다. 그래서 일본과 호주 등 선진국은 연속 운전시간을 최장 4~5시간으로, 하루 최장 운전시간을 9~12시간으로 규제한다.
 2016년 7월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면 봉평터널 입구에서 발생한 5중 추돌 사고로 승용차에 타고 있던 20대 여성 4명이 숨진 사고는 관광버스 기사의 졸음운전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장택영 소장은 "음주 운전자와 초보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 현장에는 운전자가 사고 직전에 브레이크를 밟아 도로에 스키드마크가 남지만, 졸음운전의 경우 눈을 감고 운전하는 셈이어서 스키드마크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아찔하다"고 말했다.
 졸음운전 같은 정치와 행정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문재인 정부의 요소수 대란이 꼽힌다. 9월 중순에 무역업계가 이미 중국 정부의 요소 수출 제한 가능성을 주중 한국대사관에 알렸고 중국은 10월 11일 수출 제한 조치를 고시했다. 대사관이 10월 21일 뒤늦게 외교부에 상황을 보고했지만,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10월 29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조차 하지 않았다.
 졸음운전 같은 무책임한 정부 대응 때문에 중국의 조치 이후 한 달이 지나 요소수 배급제 상황이 빚어졌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허둥대다 뒤늦게 마스크 배급제가 시행됐고, 방역을 자화자찬하다 백신 확보가 늦어져 그만큼 국민의 고통이 길어진 것과 판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요소수 부족 사태에 대해 "지나친 불안감을 갖지 말라"고 당부했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10일 "정부가 단기간에 대응 잘했다"며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요소수 부족 사태에 대해 "지나친 불안감을 갖지 말라"고 당부했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10일 "정부가 단기간에 대응 잘했다"며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민이 원하는 차기 대통령은 초능력을 보유한 메시아가 아니다. 기본적인 도덕성과 통치 역량을 갖추고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행복을 도모해줄 믿음직한 인물이다. 무엇보다 집권 이후 졸음운전 하듯 방심하다 대형 사고를 낼 불안한 후보라면 사전에 손절매하고 싶은 것이 요즘 유권자의 진심일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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