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셋 코리아

대선 후보들에게 개헌절차법 만들겠다는 약속 받아야

중앙일보

입력 2021.11.1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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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리셋 코리아 개헌분과장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리셋 코리아 개헌분과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0월 30일 로마에서 열린 자신의 마지막 G20 정상회담에 반대당인 차기 총리 올라프 숄츠 재무부 장관을 대동하고 나왔다. 퇴임하는 총리가 새로 선출된 총리를 외교무대에 데뷔시키고 떠나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 하의 승자독식 구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멋지고 부러운 광경이었다.

사실 막강한 권력을 승자가 독식하는 체제에서는 선거에 이기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우는 분열과 적대의 정치가 선거 후에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여의도 국회는 이미 민생을 위한 토론장이 아니라 대선 고지에서 승리하기 위한 베이스캠프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런 풍토에서 대화와 타협, 협치와 상생은 찾을 수가 없다. 지금과 같이 대통령 한 사람이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제도에서는 독재와 부패, 반목과 갈등이 일상화되고, 진영 논리 증폭, 책임 정치 실종, 정책의 지속성 상실 등이 난무할 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악순환 끊으려면
여야 후보들에 개헌 약속 끌어내야

우리가 왜 이런 대통령제에 집착해야 하는가. 헌법을 개정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독일이 내각제 아래서 통일과 국가 번영을 이룩한 경험을 배워야 한다. 서로 국정을 나누어 맡는 분권과 협치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헌을 통해 분권과 협치의 통치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후보들의 공약이 선거 과정에서 제시되고, 차기 대통령 재임 중에 반드시 그 공약이 실천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지난 대선 당시 후보들이 국회에 나와 개헌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제는 ‘헌법개정절차법’을 만들어 법적으로 개헌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개헌 시기를 다음 총선 때까지로 정하고, 우선 개헌절차법을 내년 대선 후 6개월 안에 제정하여 그 법에 따라 다음 총선 전에 개헌안을 만들어 통과시키면 된다. 가능하다면 대선 기간 동안 논의를 통해 개헌절차법 공동 발의를 끝냈으면 좋겠다. 개헌절차법을 중립적인 시민 조직이 만들어 국회 입법청원으로 내면 후보들이 이를 수락하여 대선 전 법안을 제출하여 대선 후 6개월 이내에 법안을 통과시키면 된다. 후보들의 공통 공약으로 끌어올려 대선 전 이행을 약속받자는 것이다. 개헌절차법에 대한 대선 전 합의는 대선 후 정파 간의 극단적인 대립을 완화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개헌절차법에 구체적인 시간표를 명기해야 하고, 국민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여 합의를 통해 개헌안을 마련하도록 규정해야 한다. 흔히 개헌을 정치적인 타협을 통해 시대정신을 담는 작업이라고 하는데,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타협을 도출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따라서 공론화위원회를 중립적인 시민 대표로 구성하여 국민이 원하는 개헌안을 국민의 참여 아래 만들도록 해야 한다. 개헌절차법은 당선자 진영이든, 경쟁자 진영이든 공약 이행을 견인하는 실질적인 동력이 될 것이다.

개헌절차법은 그동안 개헌 운동을 통해 얻은 국민의 경험적인 반성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 안을 국민청원에 의해 제출하되, 이 안에 찬성하지 않은 후보나 당에 대해서는 낙선 운동도 불사해야 한다. 언론도 대선 후보를 상대로 정책 토론회를 가질 경우 개헌절차법 등을 필수적인 화두로 삼아야 한다. 어떤 정당의 어떤 후보가 다음 정권을 이끌게 되더라도 개헌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지향해야 할 시대정신과 정책 근간으로 자리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낸다. 그런데 기우제를 지내면 꼭 비가 온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집이 썩어 무너져 내리려 하는데 지붕이나 서까래 정도 고쳐서 되겠는가. 주춧돌을 다시 놓고 기둥이나 대들보를 다시 세우는 대공사가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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