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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11월 18일, 여기서 시작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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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진호 경제정책팀 기자

정진호 경제정책팀 기자

10년 전 일을 발생 날짜까지 외우긴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딱 두 날 있다. 정확한 날짜와 함께 그날 먹은 음식·기분·날씨까지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하나는 2012년 3월 5일. 머리를 빡빡 깎고 입대한 날이다. 그리고 2010년 11월 18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봤다.

올해 수능이 같은 날 치러진다. 11년 전 기억이 자연스럽게 소환됐다. 집에서 약 2㎞ 떨어진 학교에서 시험을 봤는데 교문에서 학교 건물까지 경사가 가팔랐다. 옆 반 담임선생님이 입구에서 율무차를 나눠줬다. 영하의 날씨였는데 손에 쥔 종이컵이 따뜻했다. 시험을 보는데 샤프심이 100번 넘게 부러졌다. 시험이 끝나고는 노을을 보면서 엉엉 울었다. 수능을 망쳤다.

훈련소에 들어간 3월 5일, 찬란했던 젊은 날이 끝나는 줄 알았다. 자유의 상징과도 같던 긴 머리를 밀어야 했고, 군 내 괴롭힘 같은 흉흉한 소문을 많이 들었기에 더 그랬다. 군대 갔다 온 복학생 형들은 20살 새내기에겐 아저씨처럼 보였다. 입대가 청춘의 마지막 같았는데 돌아보니 전성기는 그 이후부터였다.

지난해 12월 한 수능시험장으로 입실하는 수험생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한 수능시험장으로 입실하는 수험생들. [연합뉴스]

수능과 입대, 두 날의 기억이 선명한 건 마지막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3년 내내 목표는 수능이었다. 정확히는 그 이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의 종착역도 시험을 보고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어른들은 “대학을 가면”, “대학을 가야”라는 말로 훈계했다. 대학교 이후는 알려주지 않았다.

마지막 같던 수능은 사실 시작이었다. 그리 알려지지 않은 대학을 나와 지방 로스쿨을 졸업한 한 변호사는 “편견과 달리 의뢰인은 변호사가 서울대를 나왔다고 돈을 내지 않는다.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본다”고 말했다. 그는 주로 범죄 피해자를 돕는 일을 하는데 업계에서 꽤 유명하다. ‘재심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는 목포대 1학년 자퇴가 최종 학력이다. 재작년 만난 그는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지방의 한 대학을 나온 A 검사는 수사 능력으로 검찰 내에서 손에 꼽힌다. 2000명이 넘는 검사 중 그의 대학 동문이 한 명도 없지만, 인품과 실력 모두 인정받는 흔치 않은 검사 중 하나다. A가 존중받는 건 검사여서가 아니다. 변호사나 검사는 경우에 따라 부끄러운 자리가 된다. 이른바 ‘스폰서 검사’나 정치색으로 동료 검사들의 비난을 받는 이들 중 상당수가 서울대 출신이다.

입사 이후 지금껏 수능 점수를 물은 사람은 없다. 출신 대학도 거의 묻지 않는다. “기레기, 먹고 살려고 애쓴다.”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더 많은 기사 부탁드려요.” 이런 이메일이나 댓글을 수시로 접한다. 이력이 아니라 무엇을 취재하고, 어떻게 쓰느냐가 독자의 평가 기준이다. 수능을 보는 당신도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