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월성 원전 피의자가 경제수석, 부적절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1.11.1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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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원주 수석의 경력

박원주 수석의 경력

박원주, 원전 조작 사건 총괄로 수사 대상  

청와대가 기소 말라는 가이드라인 준 셈

청와대가 지난주 신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에 박원주 전 특허청장을 임명한 것은 부적절하다. 법에 관한 현 정부의 내로남불이 재확인된 처사라서다. 주로 기획재정부 출신이 맡던 경제수석에 이례적으로 산업부 출신을 발탁한 데는 이의가 없다. 최근 요소수 품귀 사태,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 확보 문제, 탄소중립이 현안이라는 점에서 산업·에너지 정책 전문가가 청와대 경제사령탑으로 적임일 수 있다. 하지만 고위 공직자 인선에서 가장 먼저 고려했어야 할 법 준수 측면에선 ‘역주행 인사’다.

박 수석은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적 평가 조작 및 조기 폐쇄’ 의혹 사건의 피의자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6월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부 장관 등 3명의 공소장에는 박 수석의 이름이 16차례 나온다. 박 수석은 2017~2018년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으로 일하면서 탈원전 정책 이행을 위한 백 전 장관의 직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백 전 장관의 지시를 부하 직원에게 전달하며 탈원전 로드맵,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이행 방안 검토, 수립 및 실행 등의 실무를 총괄했다. 박 수석은 2018년 4월 정모 원전산업정책과장이 ‘한국수력원자력 사람들이 계속 (월성 1호기에 대해) 경제성이 있다고 얘기한다’고 보고하자 “원전을 제대로 못 돌리면 어차피 경제성이 없는 것 아니냐. 현 정부에서 월성 1호기가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냐”며 질책했다고 한다. 이후 정 전 과장이 백 전 장관에게 ‘월성 1호기를 2년 반 동안 한시적으로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가 “너 죽을래”라는 질책을 받은 뒤 ‘즉시 가동 중단’이 담긴 보고서를 새로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백 전 장관과 정 전 과장이 수개월 전 기소됐음에도 박 수석은 기소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그 배경도 의문인데, 경제수석 발탁 소식이 더해지자 검찰 내부에서 “박 수석을 기소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 즉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탈원전 문제는 정쟁이 아닌 과학적·합리적·이성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임기 말이라 늦긴 했지만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원전 감축 계획을 다시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하고, 탈원전 정책의 선봉에 섰다가 기소까지 된 정재훈 한수원 사장마저 ‘원전 건설 재개’라는 소신 발언을 내놓는 이유를 되새겨봐야 한다. 대선 공약이라고 해서 수치를 조작하면서까지 막무가내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선 곤란하다. 그런 사건에 연루돼 수사가 진행 중인 피의자를 청와대가 요직에 기용한 것은 법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다. ‘피의자 전성시대’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누가 뭐래도 탈원전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오기 인사 아닌가.

모비온

Innovatio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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