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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승 ‘만수’는 만 가지 얼굴에서 나온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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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24년간 지휘봉을 잡으면서 다양한 전략을 선보인 유재학 감독의 표정도 다채롭다. [사진 KBL]

24년간 지휘봉을 잡으면서 다양한 전략을 선보인 유재학 감독의 표정도 다채롭다. [사진 KBL]

“‘진짜 오래 하긴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재학(58)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의 소감이다. 유 감독은 지난 12일 창원 LG를 꺾고 프로농구 감독 최초로 700승을 달성했다. 1998년 인천 대우증권에서 처음 프로팀을 맡은 그는 그해 11월 11일 광주 나산을 상대로 첫 승을 거뒀다. 2004년 현대모비스로 옮겨 총 24시즌 1217경기 만에 대기록을 이뤘다. 그의 통산 승률은 57.5%(700승 517패)다.

유 감독은 13일 “방민환 전 대우증권 단장님이 ‘앞으로도 쭉쭉쭉, 계속 쭉’이라고 축하해주셨다”고 했다. 1998년 당시 35세의 젊은 유재학을 감독으로 파격 발탁한 이가 방 전 단장이다. 유 감독은 “지금 차량이 K9인데 당시 대우 프린스를 탔다. 정말 오래전 일”이라고 했다.

700승을 거두려면 24시즌 간 매번 29승씩 올려야 한다. 유 감독은 “누군가 ‘1000승을 해야 하니 9년만 더 하면 된다’더라. 속이 시커멓게 타서 죽으라는 얘기인가”라며 “요즘도 하루 1시간씩 실내 자전거를 탄다. 돌이켜 보면 24년간 단 한 번도 벤치를 비운 적이 없다. 열 살 때 농구공을 잡고 50년 가까이 한 번도 안 쉬었다. 마음 한구석에 다른 삶에 대한 갈증도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700승 중 최고의 승리를 꼽아달라는 말에 유 감독은 “정규리그는 아니지만, 동부와 2014~15시즌 챔피언결정전 4차전이다. 4월 4일, 4시 경기였고, 시계를 보니 4분 44초 남았더라. 4연승으로 우승했다”고 했다. “그보다 코치 시절이던 1997년 개막전 쓰라린 패배가 더 기억 남는다. 지금도 질 때마다 배운다”고 했다.

별명이 ‘만수(萬手·만 가지 수를 가졌다)’인 그는 “상대가 작전을 알아챌까 봐 우리끼리 패턴마다 미국 도시 이름을 붙였다. 어떨 때는 면 종류와 독일어를 쓴다”고 했다. ‘유 감독은 재미없는 수비 농구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는 “공격 농구를 하려면 공격 성향 선수가 많아야 한다. 이대성·쇼터·문태종 등이 있을 때(2018~19시즌) 우리도 경기당 평균 100점을 넘겼다. 그렇지 않으면 수비로 이길 수밖에 없다. 제일 우승을 많이 했을 때(2012~13시즌 이후 3회 연속 우승) ‘키맨’이 수비 잘하는 (양)동근이었다”고 했다.

70년대생을 지도했던 유 감독은 요즘 90년대생을 가르친다. 유 감독은 “은퇴한 지 1년밖에 안 된 양동근 코치도 ‘어린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하더라. 내가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며 웃었다. 1999년생 22세 서명진과 이우석은 스스로 한 시간 일찍 나와 개인 훈련을 한다.

LG전에서 장재석이 마레이 팔꿈치에 얼굴을 맞자 유 감독은 불같이 항의하다가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다. 유 감독은 “재석이가 (안와골절) 수술을 받은 부위라서, 덜컥 겁이 났다”고 했다. 구단 유튜브는 유 감독을 ‘몹버지(모비스 아버지). 때로는 불같이, 때로는 아버지같이. 만(萬)의 얼굴로 선수단을 이끌어가는 감독’이라고 표현했다. 유 감독은 “딱 공감이 되는 말이네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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