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성 식재료 NO, 내 미래는 식물”

중앙일보

입력 2021.11.1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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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식물성 식재료만을 쓰겠다고 선언한 세계 최고의 셰프로 꼽히는 다니엘 흄. [페이스북 캡처]

식물성 식재료만을 쓰겠다고 선언한 세계 최고의 셰프로 꼽히는 다니엘 흄. [페이스북 캡처]

“세상은 변하고 있고 우리도 함께 변해야 합니다. 제 미래는 식물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게 우리가 지켜나갈 가치입니다.” 세계 최고의 셰프로 꼽히는 다니엘 흄(45)이 요리 철학을 이유로 영국의 유서 깊은 5성급 호텔 클라리지와 결별했다. 흄이 호텔 내에 레스토랑 ‘데이비스 앤 브룩’을 오픈한 지 18개월 만이다. 15살의 주니어 셰프에서 약 30년 만에 세계 최고의 수석 셰프가 된 흄은 클라리지와 이렇게 다른 길을 선택했다.

클라리지 측은 12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우리는 다니엘이 최고가 되겠다고 결심한 완전한 식물성 요리를 존중하고 있으며 (그 맛을) 런던에도 소개하고 싶다”면서도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가려는 길은 아니다”고 밝혔다. 흄 역시 인스타그램에서 “요리 경력을 시작한 클라리지에 다시 돌아온 건 엄청난 선물이었다”면서 “유감스럽게도 올해 말엔 다른 길을 가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스위스 출신인 흄은 뉴욕의 일레븐메디슨파크(EMP) 레스토랑을 통해 미슐랭 스타 3개를 따낸 세계적인 셰프다. 2017년엔 ‘미식의 오스카상’이라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1위에 올랐다. 『미국을 변화시킨 10대 레스토랑』 저자인 예일대 역사학과 폴 프리드먼 교수는 그를 두고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드문 셰프 중 한 명”이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이곳도 지난해 팬데믹의 여파를 피해가진 못했다. 구조조정까지 감수했지만, 파산 직전까지 갔다.

지난 5월 흄은 머릿속으로만 구상했던 동물성 식품과 해산물이 없는 레스토랑을 선언했다. 3월부터 문을 닫았던 EMP 재개장을 한 달여 앞두고서다. 부정적 어감을 이유로 ‘비건’이란 표현은 쓰진 않았다. 흄은 당시 뉴욕타임스(NYT)에 “‘럭셔리’에 대한 개념을 바꿀 때”라며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커피나 차에 첨가하는 꿀과 우유를 제외하고 모든 동물성 식재료는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업계에선 “세계 최고의 명품 디자이너가 모피와 가죽을 안 쓰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전이 쉽지만은 않았다. 비건으로 전환하면 EMP를 찾는 고객은 감소할 게 뻔했고, 재료비는 줄어도 인건비가 늘어 가격(1인당 355달러·약 39만5000원)은 그대로 유지됐다. “두 명에 1000달러(와인 포함시)의 식사는 세상을 바꾸지 않을 것”이란 비판부터 “야채에 대한 미각과 문화적 통찰력을 완전히 갖추지 못했다”, “공장식 농장이 아닌 지역의 소규모 독립농가까지 위협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반면 흄이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그의 도전은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채식 전문평론가 앨리샤 케네디는 지난 8월 CNN에 “흄을 동경하는 수많은 셰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며 “테슬라가 럭셔리카로 전기차의 판도를 바꾼 것처럼 채식 역시 흄과 EMP를 통해 럭셔리 요리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흄의 새로운 채식 요리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흄은 지난 8월 CNN에 “한 번에 1만5000건 정도 예약 요청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식물성 메뉴는) 지금까지 우리가 한 요리 중에 단연 최고”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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