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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놀이터서 놀았다고 "도둑"…아파트 회장이 몰랐던 판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파트 놀이터의 이용자격'을 두고 논란이 이어진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외부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지난달 12일 인천 중구 영종도의 A 아파트에서는 입주자대표회장이 다른 곳에 사는 초등학생 5명이 A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회장은 초등학생 5명을 주거침입과 기물파손으로 112에 신고했다. 해당 아파트는 2019년 완공된 신축 아파트다.

인천 영종도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가 신고당한 초등학생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쓴글.

인천 영종도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가 신고당한 초등학생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쓴글.

“100번 넘게 찾아와”…입주민들은 회장 해임 논의

당시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직접 적은 글에는 “쥐탈 놀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어디 사냐며 물어보기에 ‘XX 산다’고 했더니 ‘XX 사는데 남의 놀이터에 오면 도둑인 거 몰라?’라고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파트 대표회장이 아이들을 경찰에 신고하자 이에 학생들 부모는 협박 및 감금혐의로 회장을 고소한 상태다.

사태가 커지자 입주민들은 대표회장에 대한 해임절차 등을 밟고 있다. 대표회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이들한테 주거침입죄를 설명했다. '물건을 가져가는 것만 도둑이 아니고 이런 것도 죄가 되는 거야'라고 아이한테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그전에도 100번 이상 아파트 놀이터에 들어오고 그랬다”고 덧붙였다. 입주민들 해임 논의 등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게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맘 카페엔 “놀이터 이용한 게 죄냐” 경험 글 쏟아져

맘카페 등 지역 커뮤니티에는 타 아파트의 놀이터를 이용해도 되는 건지 자문을 구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네이버 맘카페 캡쳐

맘카페 등 지역 커뮤니티에는 타 아파트의 놀이터를 이용해도 되는 건지 자문을 구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네이버 맘카페 캡쳐

놀이터 이용자격에 대한 논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맘 카페 등 각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타 아파트의 놀이터 이용을 두고 ‘위법행위’인지 자문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외부인은 관리비를 내지 않으니 놀이터를 이용할 수 없다며 아이와 부모를 내쫓았다” “아이가 새로운 놀이터를 가고 싶어 하길래 데려갔더니 이게 죄인 거냐”와 같은 내용이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양모(36)씨는 “아이가 새로운 놀이터에서 놀자고 조르길래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가는데 갈 때마다 놀이터 입구에는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표지가 붙어있어 조용히 눈치 보면서 놀게 하고 데려오곤 한다”며 “아이들이 놀이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흔히 말하는 '브랜드 아파트' 주민의 갑질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진짜 ‘도둑’ 될까? 주거침입죄 X 형사미성년자 처벌 불가능

하지만 살지 않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았다는 이유만으로 ‘주거침입죄’가 성립되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먼저 형사미성년자의 경우 주거침입 처벌은 불가능하다. 또 주거침입이란 사람의 주거 또는 이를 간수하는 장소의 평온과 안전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놀이터에서 놀다가는 행위가 이를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자문위원)는 “아파트 놀이터를 주거침입죄에서 말하는 주거의 개념에 속한다고 가정해도 과연 다른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아파트 놀이터에 잠시 들어와 일시적으로 놀다가 가는 행위를 ‘평온과 안전을 침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주상복합 아파트 내 유치원생, 놀이터 사용 가능” 판결도

한편 지난 2012년 서울의 B 주상복합아파트 내 상가에 있는 유치원에 다니던 한 어린이가 아파트 놀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 법적 다툼이 벌어졌는데 법원은 사용 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아파트 측은 유치원 통학 차량이 아파트 단지 내 도로 이용을 할 수 없게 금지하려 했다. 또 유치원 아이들이 아파트 내 놀이터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유치원과 아파트 사이에 울타리를 설치하려고도 했다. 이에 법원은 아파트 상가의 구분 소유자들이 아파트의 대지를 공유하고 있다면, 공유지분의 비율과 관계없이 아파트 건물 대지 전부를 공유할 수 있다고 판결을 내려 유치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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