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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취업자는 최소, ‘초단기’ ‘투잡족’은 최대…그런데 고용회복 99.9%?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취업자 수는 코로나19 발생 이전 고점(2020년 2월) 대비 99.9%로 회복됐다.” 지난 10일 통계청의 ‘10월 고용동향’ 발표 직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놓은 말이다. 실제 지난달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65만2000명(2.4%) 늘며 8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시기적 요인을 제외한 계절조정 취업자 수는 2747만2000명으로 지난해 2월(2752만2200명) 수준에 달했다.

하지만 뜯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1주일에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취업자’ 수와 본래 직업과 부업을 병행하는 이른바 ‘투잡족’이 역대 최대로 치솟는 등 ‘질 낮은 일자리’가 늘어나서다. 14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10월 기준 역대 최대로 늘어난 15시간 미만 취업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0월 기준 역대 최대로 늘어난 15시간 미만 취업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에 따르면 '초단시간 취업자' 수는 157만1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127만4000명)과 비교해 29만7000명(23.3%)이나 급증했다. 이는 200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10월 기준 역대 최대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고용주는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 유급휴일이나 주휴수당을 줘야 한다. 추경호 의원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으로 고용주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주당 15시간 미만 아르바이트가 폭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당 일하는 시간이 36시간이 안 되는 ‘단기 취업자’는 지난달 1084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562만6000명)의 거의 2배로 늘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2년 이후 10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다. 지난달 조사 기간에 한글날 대체공휴일(11일)이 포함돼 평균 근무시간이 줄어든 영향도 작용했지만, 이를 고려해도 전례없는 증가 폭이다. 반면 정규직 비중이 큰 36시간 이상 취업자 수는 1652만6000명으로 같은 기간 444만명(21.2%) 감소했다.

10월 기준 역대 최대로 늘어난 36시간 미만 취업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0월 기준 역대 최대로 늘어난 36시간 미만 취업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통계상으론 1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된다. 추 의원은 “이런 초단시간 또는 단기 일자리들은 ‘질 좋은 일자리’와 거리가 먼데, 결국 지난달 고용 회복이 ‘무늬만 고용 회복’이란 사실이 드러난다”라고 지적했다.

본업 외의 일을 하고 있는 ‘부업자’ 수도 지난달 58만8000명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4만명(7.3%) 증가하면서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에 달했다.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구분 없이 부업이 늘었다. 상용근로자와 임시근로자 등을 포함한 임금근로자 중 부업자는 37만3000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자영업자 중에선 16만5000명이 또 다른 생계수단을 병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영업자 부업자도 지난해보다 1만7000명(11.5%) 늘어 2004년 이후 가장 많았다.

일하고, 알바도 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일하고, 알바도 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면서비스업 중심의 소상공인 피해, 고용 악화로 인한 노동시간 감소 등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피해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풀이가 나온다. 여기에 배달 등 플랫폼 노동이 확대돼 부업 접근성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상 근무시간이나 급여가 줄면서 이를 메우기 위해 ‘투잡족’, ‘n잡족’에 합류하는 이들이 늘어났다"며 "장사가 안되는 자영업자, 근로시간이나 임금이 줄어든 근로자가 대리운전 같은 부업 전선까지 많이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제조업 취업자 산업분류 개편 2013년 이후 최저

산업별로 보면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종사자는 270만5000명으로 전체 산업 중 근로자가 세 번째로 많았다. 지난해 같은 달(240만5000명)보다 30만명(12.5%)이 늘면서다. 2013년 관련 통계를 시작한 이후 30만명 이상 늘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용 증가가 세금 일자리가 많은 복지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는 의미다.

반면 평균임금이 높아 일반적으로 ‘질 좋은 일자리’가 많은 제조업 근로자는 432만4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433만6000명)보다 1만2000명(0.3%) 줄었다. 이는 2013년 산업 분류 개편 이후 10월 기준으로 최저치다.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따른 자동차 생산 차질이 영향을 미쳤다. 연령별 제조업 취업자 수를 1년 전과 비교해보면 30대(-7만7000명), 40대(-2만5000명), 50대(-2만2000명)에서 감소세를 보였다. 일자리의 허리로 볼 수 있는 30∼50대에서 12만4000명이 줄어든 것이다.

대면 서비스가 많은 도‧소매업, 숙박‧음식업도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다지만, 지난해 2월과 비교하면 여전히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달 도·소매 종사자는 333만1000명, 숙박·음식 종사자는 209만6000명이다. 지난해 2월보다 각각 24만2000명, 17만9000명 감소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로 기술이 대면 근로를 대체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경기 회복기에도 이 추세가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계절적 요인과 별개로 산업 구조 변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지난달 1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폐업한 상점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폐업한 상점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자영업자 충격은 현재진행형

주로 자영업자인 비임금근로자의 고용 상황 악화도 여전하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지난달 1년 전보다 2만6000명 줄었다. 35개월째 감소세다. 반대로 ‘나홀로 사장님’인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4만5000명 늘었다. 33개월째 증가세다. 자영업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고용원부터 줄여 혼자 일을 하거나 가족이 일을 돕는 형태로 전환한다.

청와대에서는 2018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도 ‘고용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며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근거로 제시했는데, 이 근거가 오히려 나빠지는 정반대의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강성진 교수는 "전체 취업자 수로만 비교해서 ‘고용이 회복됐다’고 말하기엔 이르다"며 "공공일자리·아르바이트와 같은 단기 근로 위주로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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