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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모범 캘리포니아 “원전 폐쇄는 낭비” 목청 커진다

중앙일보

입력

캘리포니아주(州)의 유일한 원자력발전소인 디아블로 캐년의 쌍둥이 원전. [로이터=연합뉴스]

캘리포니아주(州)의 유일한 원자력발전소인 디아블로 캐년의 쌍둥이 원전.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약 200마일(약 322㎞) 떨어진 해안. 캘리포니아주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쌍둥이 원자력발전소 디아블로 캐년이 태평양을 바라보고 선 곳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주 전력의 9%가 여기서 나온다.

1984년부터 가동돼 온 디아블로 캐년 원전은 2025년 폐쇄될 예정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캘리포니아에서 향후 재생에너지 전력 전망을 더 밝게 보면서 이같이 결정했다. 미국이 1970년대부터 탈(脫)원전 기조를 이어온 만큼 원전 폐쇄는 지역 사회에서도 타당하게 여겨졌다.

"원전 폐쇄시 넷제로 달성 어려워" MIT 보고서

FILE 캘리포니아주의 풍력 발전소[로이터=연합뉴스]

FILE 캘리포니아주의 풍력 발전소[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최근 원전 폐쇄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8일(현지시간) 포브스, 블룸버그통신, 이코노미스트 등에 따르면 미국 스탠포드대학과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디아블로 캐년 원전을 폐쇄하면 2050년 '탄소 배출량 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폐쇄를 재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디아블로 캐년의 목숨을 2045년까지 연장할 경우 210억 달러(약 24조 8999억원)를 절약할 수 있으며, 이 원전이 수소와 담수를 생산하는 데에도 사용되면 경제적 가치는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에너지부 차관이자 스탠포드 대학의 프리코트 에너지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마룬 아줌다르는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원자력 발전소는 비즈니스 모델 때문에 위협을 받고 있다"며 "더 광범위한 비즈니스 맥락에서 (원전은) 수소를 생산하고 담수 수요를 해결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MIT 핵과학자인 자코포 본지오르노는 "넷제로 목표를 추구하면서 기술 솔루션(원전)을 테이블에서 제외할 여유가 없다"며 "(원전 가동 등) 모든 것은 정말 최고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비중 높다"며 2018년 원전 폐기 결정 

‘디아블로 캐년 원전 2025년 폐기안’은 지난 2018년에 통과됐다. 캘리포니아 공익사업 위원회는 디아블로 캐년의 운영 업체인 '퍼시픽 가스&일렉트릭(PG&E)'사와 컨소시엄을 만들고 원전 폐기안을 승인했다. 컨소시엄은 풍력과 태양열 같은 재생 에너지의 성장으로 원자력이 생산하는 전력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고 봤다. 캘리포니아 사회에서도 원전 폐쇄론이 들끓던 참이었다. 원전 인근에서 지진 단층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지역에 쓰나미가 닥치면서 발생한 만큼 지역 주민들의 불안이 컸다. 과학자들은 원전이 지진 발생시에도 안전한 것으로 평가했다. PG&E는 원전 폐쇄를 결정하면서 '안전 문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PG&E는 "디아블로 원전은 80년 더 가동할 수 있지만,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력 수요가 낮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폐쇄를 결정한다"고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PG&E가 원전 폐쇄 근거로 밝혔듯 실제 캘리포니아의 재생에너지 목표는 미 전역에서도 가장 큰 규모로 손에 꼽힌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도 에너지믹스의 33.1%는 재생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주정부의 계획에도 부합한다. 캘리포니아는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력을 2020년 기준 33%에서 2030년까지 50% 수준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악 가뭄으로 수력 발전 제한…원전 필요"

하지만 스탠포드 대학과 MIT 연구진은 2018년 이후 세 가지가 변했다고 지적한다. ▲첫째, 캘리포니아는 2045년까지 주정부가 100% 청정 발전을 달성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넷 제로'를 2045년까지 달성하겠다는 의미다. 원전은 재생에너지는 아니지만 탄소 배출도 거의 하지 않아 청정 발전에 해당한다. ▲둘째, 캘리포니아주 남서부에서 1200년만에 두 번째로 최악의 가뭄을 겪으면서 저수지도 말랐다. 이는 수력발전 공급 제한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9년 캘리포니아내 수력발전의 비중은 16.6%(대규모+소규모 수력발전)에서 2020년 13.4%로 줄었다. 이는 기상 상황에 따라 재생에너지 수급 상황에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올해는 상황이 더 나쁘다. 지난 8월 가뭄 악화로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수력 발전시설이 사상 처음으로 가동을 멈췄다. ▲셋째, 2020년 8월에 발생한 폭염으로 전력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며 주 전역에 정전이 발생했다. 앞으로도 기후 변화로 인해 폭염이 발생하면 전력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다.

지난 9월 산불이 일어난 캘리포니아 세콰이어 국유림. [AP=연합뉴스]

지난 9월 산불이 일어난 캘리포니아 세콰이어 국유림. [AP=연합뉴스]

이 모든 상황을 감안하면 답은 원전이라는 게 연구진의 결론이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재생에너지의 불안정한 수급을 해결하고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원전의 폐쇄 시점을 2035년으로 연기할 경우 캘리포니아주 전력 부문의 탄소 배출량이 2017년 대비 10% 이상 감소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이익이라고 밝혔다. 2035년까지 원전 폐쇄를 연기하면 전력 생산 비용에서 26억달러(약 3조636억원)를, 2045년까지 운영된다면 210억달러(약24조8000억원)의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과정에서 원전을 전력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MIT뉴스에 따르면 보고서 공동 저자인 존 라인하드 물과 식품학 교수는 "디아블로 캐년에 담수화 플랜트를 배치해 생산시, 담수화의 비용은 독립형 플랜트보다 낮을 것"이라며 "전기 비용이 상당히 낮고 해수 유입 및 염수 배출을 위한 기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본지오르노 교수도 "캘리포니아는 주 전체에 걸친 장기간의 가뭄과 물 부족 해결이 중요한 문제"라며 "그것을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디아블로 캐년 원전과 함께 담수화 시설을 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스티븐 추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캘리포니아는 가까운 미래에 재생에너지 비중을 100%로 늘릴 수 있는 상황에 있지 않다"면서 "남은 건 화석연료와 원자력이라는 두 옵션"이라고 말했다. 롭 바넷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수석 애널리스트는 "디아블로 캐년 원전이 생산하는 전력을 태양광으로 대체한다고 가정할 때 들어갈 비용은 150억달러(약17조 7000억원)로 추산된다"며 "높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전력을 모두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점에서 스탠포드와 MIT의 보고서가 내린 결론은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음'을 말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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