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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사드 쏙 빼고 日규제만 언급…정부의 의아한 ‘선택적 기억력’[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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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소수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12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입구에 설치된 요소수 판매 간판에 엑스 표로 테이프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요소수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12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입구에 설치된 요소수 판매 간판에 엑스 표로 테이프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중국발 요소 대란

초유의 요소 대란에 정부는 고개를 숙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반성의 기승전결이 좀 의아하다.

지난 10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재작년 일본 수출규제가 있었을 때 전화위복이 됐듯이 대응이 늦었지만, 단기간에 잘해왔다”며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겠다. 이번이 오히려 굉장히 좋은 시그널로 받아들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7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2차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 때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비상한 각오로 경제ㆍ외교가 종합된 대응체계를 구축해 총력 대응하기로 했다”고 결론 내렸다.

틀린 말은 아닌데, 빠진 게 있다. 2019년 7~8월 일본의 수출 규제보다 훨씬 앞서 이뤄졌던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문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왼쪽부터)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지원 국정원장,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요소수 품귀 사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왼쪽부터)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지원 국정원장,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요소수 품귀 사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사례 모두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정ㆍ경분리의 원칙을 대놓고 위반한 치사한 ‘반칙’이었다. 지금 요소수 사태도 제3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일방적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면서 우리 국민의 피해를 야기했다는 점에서 이런 사례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정부의 기승전결에는 오로지 일본의 수출 규제만 있다. 왜 일본을 다르게 대하느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다면 가해자가 누가 됐든 같은 기준으로 대응하는 게 맞는데, 왜 한 쪽만 문제 삼는 ‘선택적 기억력’같은 행태를 보이냐는 뜻이다. 심지어 2016~2017년 사드 보복으로 이런 반칙을 먼저 시작한 건 중국이고, 그 수업료 역시 비싸기 짝이 없었는데 말이다.

정통한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중국은 사드 배치 직후 보복을 위해 한국이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분야나 품목부터 먼저 추려 목록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정부 역시 해당 품목과 분야를 가려내 대중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이뤄지던 2017년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빠져 텅 빈 제주 롯데면세점의 모습. 연합뉴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이뤄지던 2017년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빠져 텅 빈 제주 롯데면세점의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현재 중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80%를 넘어서는 품목은 1850여개다. 사드 보복이 이뤄지던 4~5년 전부터 꾸준히 노력했다면, 해당 품목을 상당 부분 줄였을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요소수 대란 와중에도 중국의 사드 보복이 남긴 고통과 이로 인해 진작에 얻었어야 할 교훈은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일본의 보복은 잘 극복했으니 교훈이라면서 사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 건 중국의 사드 보복은 잘 극복하지 못했다는 시인이거나,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논란이 된 ‘대중 저자세 외교’이거나 둘 중에 하나다.

특히 요소 사태가 터진 뒤인 지난달 29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 회담하면서 해당 문제를 거론하지도 않았다. 정 장관은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답변에서 “상세한 보고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며 “(대란 이전에)출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장관이 출국한 건 지난달 26일이었다. 이미 요소수 대란의 피해가 가시화한 시점이었다. 또 지금이 비둘기를 날려 쪽지를 주고받는 시대도 아니고, 언제든 전화나 e메일로 연락이 가능한데 해외에 있어 상황 보고를 못 받았다는 설명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만났다. 사진 외교부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만났다. 사진 외교부

결국 중국의 행태에 대한 정부의 인식 자체가 안일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의용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중국 측에서 우리에게 설명하길 특정국을 겨냥한 조치는 아니라고 했다. ‘한국이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게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 저에게 보내온 메시지”라고도 전했다.

중국의 요소 수출 전 검사 의무화 조치가 한국만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 모든 나라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조치인 건 맞다. 하지만 의존도가 유독 높은 한국이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고, 이런 일에선 의도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다.

중국은 사드 보복을 할 때도 한 번도 한국을 상대로 보복한다고 한 적이 없다. 한국인들을 상대로 비자 발급을 제한할 때도 비자 관련 절차 자체를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고, 한국행 중국 관광객을 제한할 때도 한국을 표적으로 한 게 아니라 관광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한한령에 대해서는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배신감을 느낀 중국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한류를 배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중국 인민들이 지금 ‘오징어 게임’을 몰래 보고, BTS에 열광하는데도 말이다.

 호주에서 긴급 공수한 요소수 2만7천ℓ를 실은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KC-330)가 11일 오후 김해공항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호주에서 긴급 공수한 요소수 2만7천ℓ를 실은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KC-330)가 11일 오후 김해공항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게다가 중국 언론들이 요소 대란을 두고 한국에 잘못이 있다는 적반하장 식으로 나온다. 중국 국영 청두(成都)TV가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선냐오즈쉰(神鳥知訊)은 지난 9일 “한국은 국가 경제 및 국민 생활과 관련된 중요한 전략자원을 자급자족하거나 비축체제를 구축하지 않았다”며 “한국이 특정 분야 위기를 겪는 것은 자업자득으로, 중국과 무슨 관계냐”고 했다.

정의용 장관은 이전에도 중국의 공세적 외교에 대해 “중국이 강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다(natural)고 생각한다”(9월 22일 미국외교협회 대담)고 했고, 이를 해명하면서는 “중국이 아직 우리에게 그렇게(강압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게 정부 내에서 공유되는 인식이라면 현재의 요소수 대란 사태에서 사드 보복을 거론하지도 않고, 이로 인한 교훈도 언급하지 않는 게 이해가 된다. 북핵 문제 등 더 중요한 현안에서 협력하기 위해 사드 보복으로 인한 고통 정도는 ‘그렇게 강압적이지 않은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는 뜻일 수 있어서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 잘못이라는 말이 있다.(Fool me once, shame on you. Fool me twice, shame on me) 부디 대한민국을 두 번 속는 처지에 놓이게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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