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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 지키라” 文당부에도, 與 대선공약 개발 논란 부른 여가부[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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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에스더 복지팀장의 픽: 공무원의 정치 중립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며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으나, 청와대나 정부는 철저히 정치 중립을 지키는 가운데 방역과 민생에 집중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5일 참모회의에서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각 당의 경선 일정이 본격 시작되는 시점, 청와대 뿐 아니라 정부 관료들에 미리 경고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이런 당부에도 관권 선거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2일 대선공약 개발에 관여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과 과장급 공무원 A씨 등 2명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선관위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내년 대선과 관련해 특정 정당의 선거공약 개발에 활용될 자료를 작성ㆍ제공하는 등 선거운동 기획에 참여하고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라고 김 차관 등에 대한 고발 이유를 밝혔습니다. 선관위가 중앙부처 공무원의 민주당 공약 개발 관여 정황을 적발한건 지난달 박진규 산업통산자원부 1차관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선관위는 여가부 김차관과 A과장에 대해 산업부 박 1차관(수사의뢰) 보다 강도가 더 센 조치를 취했습니다. 검찰 고발은 선관위가 할 수 있는 가장 센 조치입니다.

여가부 차관ㆍ과장, 왜 고발당했나

선관위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A 과장은 “특정 정당 정책연구위원으로부터 대선 공약에 활용할 자료를 요구받고 소속기관 내 각 실ㆍ국에 정책공약 초안 작성을 요청했으며, 회의를 거쳐 이를 정리한 후 정책연구위원에게 전달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김 차관은 “취합된 정책공약에 대한 회의를 주재하는 등 관련 업무를 총괄한 혐의”입니다.

선관위의 조사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폭로 이후 시작됐습니다. 하 의원은 지난달 28일 여가부 내부 이메일을 공개하며 여가부 차관이 정책 공약 회의를 열고 부처 공무원들에게 대선 공약을 몰래 만들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 의원은 “여가부는 7월 29일경 차관 주재로 정책공약 회의를 열었고, 그 뒤 과장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보낸 이메일에서 이 회의를 바탕으로 수정한 자료를 8월 3일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했다”라고 밝혔습니다. 하 의원은 “과제와 관련해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구할 땐 ‘공약 관련으로 검토한다’라는 내용이 일절 나가지 않도록 하며 ‘중장기 정책과제’로 용어를 통일하라고 은폐 방법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 내용과 관련해서 절대 ‘공약 검토’라는 말을 쓰지 말 것을 당부한건 행정부의 정치 중립 위반 문제를 충분히 의식하고 입단속 시켰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지적했습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8일 공개한 여가부 내부 메일 내용. 하 의원은 ″절대 공약 검토라고 쓰지말라고 경고한 것은 정치 중립 위반을 의식한 관건 선거를 자인한 셈″이라고 밝혔다. 하태경 의원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8일 공개한 여가부 내부 메일 내용. 하 의원은 ″절대 공약 검토라고 쓰지말라고 경고한 것은 정치 중립 위반을 의식한 관건 선거를 자인한 셈″이라고 밝혔다. 하태경 의원실

선관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정책연구위원은 A과장에 대선 공약에 활용할 자료를 요구했고, 김 차관은 회의를 주재해 이를 휘하 공무원들에게 만들도록 지시했고, 부처 공무원들을 동원해 만든 자료를 다시 민주당 정책연구위원에게 전달한겁니다. 선관위는 ”공무원의 선거관여 행위를 선거질서의 근본을 뒤흔드는 중대 선거범죄로 규정하고 있다“며 “내년 제20대 대통령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유사 사례 적발 시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엄중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대선과 무관한 정책과제 정리한 것”

여가부는 시종일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김 차관과 A과장에 대한 고발 소식이 전해지자 여가부는 즉시 보도설명자료를 냈습니다. 여가부는 “선거 중립 관련 문제가 된 회의는 중장기 정책과제 개발을 위한 회의로 선거법 위반 사실이 없었음을 선관위 조사에서 충실히 소명했다”라며 “향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의혹이 해소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가부 관계자는 “대선과 무관하게 정책과제를 정리한 것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가부의 한 공무원은 “원래 중앙부처는 대선 시즌이 오면 공약을 다 만든다. 관례적으로 하는  건데 확대해석 한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부처의 공무원은 “부처마다 하고싶은데 못했던 정책을 공약 만들 시기에 후보 캠프에 은근슬쩍 들이밀곤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정부의 정치적 중립을 각별히 챙긴 것도 이런 ‘관례’를 타파하기 위해서였을지 모릅니다. 관례라고 포장하나, 그런 행위는 선관위 설명처럼 중대 선거범죄기 때문입니다.
공직선거법 제85조제1항에 따르면 공무원 등 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고, 법 제86조제1항제2호에 따르면 공무원이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거나 그 기획의 실시에 관여하는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여가부 주장처럼 정책과제 개발을 위한 회의를 했고, 여당에 정책 자료를 제공한 것이라도 부적절해보입니다. 여가부가 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해 폐지론까지 불거지는 와중이란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논란을 일으킨데 대한 반성 없이 억울함만을 호소하는 여가부에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중앙부처 전 공무원에 보낸 서한을 다시 한번 되새기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최근 일부 중앙부처에서 정치권에 정책자료를 제공한 것과 관련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설사 오해가 있더라도 민감한 시기에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결코 적절한 행동이라 볼 수 없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 부처와 공직자들이 유력 대선후보나 정당에 소위 ‘줄대기’ 하는 그릇된 행태가 발생한다면, 이는 국민의 신뢰와 믿음을 저버리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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