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다시 조금씩 불편하게 살아야 할 때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1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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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호 31면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식료품을 사러 다녀온 남편이 슈퍼마켓 매대에 딸기가 없더라고 했다. 식료품점에서 딸기를 볼 수 없는 상황은 매우 오랜만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 영국에 와서 살기 시작한 십여 년 전에는 제철이 아니면 딸기가 없었던 기억이 났다. 봄이 되어야 비로소 딸기가 등장했던 것이다.

과일뿐 아니라, 영국에 와서 뜻밖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찾는 물건들이 상점에 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국에 비해 물건 구하기가 어렵다고 느꼈던 것인데, 예를 들면 영국의 경우 매장에 전시된 물건 중 원하는 사이즈가 없으면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았다. 많은 물건이 영국이 아닌 외국에서 생산되고 수입을 통해 공급된다. 창고를 짓거나 임대하는 비용이 비싸므로 재고를 영국 내에 많이 두지는 않는다. 그러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찾는 물건이 운 좋게 매장에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려면 미리 주문하고한 주일 또는 두 주일 정도는 기다려야 받을 수 있었다. 아이들 개학 때 필요한 의류 등과 같이 꼭 시간 맞춰 장만해야 할 물건이라면 미리미리 사두는 쪽이 안전했다. 한국에 비해서 상당히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빠른 물류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
요소수처럼 외국에 의존해 가능
독자적 해결이 불가한 상황 많아
빠름보다 조화로움이 더욱 소중

이러던 것이, 어느새 영국에도 큰 불편이 없이 물건이 조달되기 시작했다. 사시사철 딸기를 구할 수 있었고 볼 수 없었던 이국의 과일들도 늘 구비되어 있었다. 생산지는 물론 영국이 아니다. 유럽 어딘가, 또는 전 세계에서 온 과일이나 농산물들이나 다른 물건들이 영국 슈퍼마켓이나 기타 상점의 매대를 채우게 되었다. 배달 역시 훨씬 신속해졌다.

선데이 칼럼 11/13

선데이 칼럼 11/13

비록 영국에서 산출된 작물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위해 노동력을 투입한 것은 아마도 다른 어디에선가 온 이주노동자들이었을 것이다. 물류에 종사하는 사람들 역시 대개 다른 국가들에서 온 이주노동자였을 것이고.  한국의 상황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본다. 상당수 식품이나 물품을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이나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에 의존하면서도 그렇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물건을 구입하고 소비하며 지내는 것이다.

이렇게 빠른 물류와 다양한 물품의 소비를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살아오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 것은 코로나로 인한 팬더믹 이후다. 코로나 사태는 세계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 같으면 한 나라 또는 세계의 한 구역에만 국한되었을 바이러스는 놀라운 속도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그러자 그간 매우 밀접하게 결속되어 있는 듯이 보였던 각 나라는 서로 연결을 끊고 국경을 닫고 각자도생의 길을 택해버렸다. 바이러스 전파의 경로인 사람의 왕래를 끊어버리고자 한 것인데 이로 인해 물품의 왕래도 타격을 입었다. 사람들이 쉽게 일하러 오지 못하게 되거나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버리자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상품을 생산하거나 실어 나르는 일이 원활하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물품이 한국에 도착해도 내리지 못하게 되었다. 한편, 여기저기 다니지 못하게 된 사람들의 소비가 온라인 쇼핑으로 집중하면서 물류량은 급증했다. 물류비용 및 인건비도, 에너지 가격도 상승했으니 물가 인상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지난달 영국의 연료 공급 대란에 이어 한국에서는 요소수 공급 대란이 벌어진 참이다. 영국의 경우 연료 운반용 대형 트럭의 운전자 부족으로 발생한 연료 공급 대란은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물류량이 폭증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다시 물류 대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발생한 이유는 다르다지만 화물차 운행에 필수적이라는 요소수 대란 역시 물류 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요소수 문제가 아니라도 먹거리나 다양한 재화를 수입에 의존하는 바가 높고 온라인 소비가 일상화된 한국의 경우 불안정한 공급 및 물가 인상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물류 대란이 영국이나 한국에 국한된 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바이러스의 전파와 마찬가지로 한 지역이나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간 누려왔던 다양한 물품의 소비 및 빠른 배송을 더 이상 당연하게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말하자면 다른 나라들을 공장이나 필요한 인력의 공급 기지 정도로 당연히 생각하고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를 누려왔던 소위 선진국들은 전보다 불편하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본격적으로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된 모양이다. 이런저런 국내의 문제가 양편 모두 쌓이고 쌓인 듯하다. 잠시 보고만 있어도 어지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이제 경제적으로는 명실상부 선진국 아닌가. 좀 더 거시적인 시각을 가지고 국제적인 의제에도 집중하는 방향으로 선거가 흘러가기를 바란다. 일단은, 정부가 어떻게든 국제적인 노력을 기울여 물류 대란 및 물가 인상 사태를 안정화할 수 있기를 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이라면 제철까지 기다려 과일이며 야채를 먹어도, 당일 배송을 받지 않아도, 조금 춥거나 덥게 살아도 그리 큰일 나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마음으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은 환경을 위해서도 그쪽이 낫다. 중요한 것은 다 같이 조화롭게 살아남는 것이다. 심지어 팬더믹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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