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환 曰] 강한 정부, 약한 국민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1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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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호 30면

한경환 총괄 에디터

한경환 총괄 에디터

국민의 혈세를 뽑아 채운 국가의 곳간이 정부의, 그리고 정치권의 쌈짓돈 지갑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허구한 날 정치권이 추가, 추추가 재난지원금을 두고 현금살포 전쟁을 벌일 수 있겠나. 돈으로 표를 사서 정권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그 속마음을 누가 모르겠는가.

이처럼 정치권이 국민적 합의를 무시하고 정략적으로 ‘난폭운전’을 할 수 있게 된 토대는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양식과 결합한 제왕적 ‘87헌법 체제’다. 민주화운동으로 쟁취한 직선제를 골자로 한 87체제에선 파워를 가진 대통령이, 정부가, 그리고 다수 정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의적 결정을 밀어붙일 수 있다. 특히 단독 과반의 여당을 등에 업은 정부의 힘은 막강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해 4월 총선 이후 쭉 일방통행식 폭주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다.

정부 힘 세질수록 국민은 의존도 높아져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정부 오래 못 가

최근 들어서도 재난지원금처럼 다수의 힘으로 너무나 손쉽게 정치적 결정을 내린 사례가 부지기수다. 실정에 맞지 않게, 그리고 산업계의 거센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급격하게 상향 조정해 국제사회에 공표한 게 대표적이다. 북한의 비핵화, 주한미군 철수 요구, 한·미 동맹 약화 우려 등 복잡한 문제와 연계된 한국전쟁 종전 선언 추진도 야당과의 합의나 국민 설득 과정 없이 문재인 정부가 독주하는 단골 아이템이다. 가계 부채를 관리하겠다며 금융가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식으로 갑작스럽게 전방위 대출 규제에 개입하는 정부의 ‘지시’는 도를 한참 넘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징벌적인 세금폭탄 부과로 면피하려는 술책도 마찬가지다. 이제 곧 12월엔 종부세 핵폭탄이 투하된다. 재산세·양도세·증여세·상속세 등 세금이란 세금은 모조리 올리는 바람에 국민은 가렴주구(苛斂誅求)를 매일매일 실감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갈수록 힘이 세지는 정부의 과도한 힘 과시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 진영의 정치논평가인 벤 샤피로는 저서 『미국은 어떻게 망가지는가』(기파랑)에서 “분열주의자들은 정부로부터 파생되는 ‘적극적 권리’가 정부의 폭정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소극적 권리’를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했다. 샤피로는 분열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의 논거로 미국 독립선언서 정신을 든다. 독립선언서는 “모든 인간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고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피치자들의 동의로부터 유래한다.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 국민은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할 권리를 갖는다”고 했다. 독립선언서 정신에 맞춰 제정된 미국 헌법은 오직 다수의 합의에 따른 동의가 있을 때만 중대한 국가적 필요에 대해 정부가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제한을 걸어두었다.

지금의 한국처럼 국민이 대통령의 공약이나 정부의 정책에 더 많이 영향을 받을수록 정부는, 그리고 정권은 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우리처럼 정치권의 타협문화가 없고 진영 간의 대립이 격한 나라일수록 선거와 정치에 대한 과도한 목숨 걸기와 부작용은 더 커질 것이다. 그 피해는 일반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과 다음 정부는 국민을 볼모로 잡고 편협한 권력을 행사하는 만행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권력은 국민이 일시적으로 맡긴 것이지 정권이 마음대로 국민을, 특히 다른 진영의 국민을 종으로 부리도록 위임한 것은 아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퇴출당해야 한다. 그런 정권은 어차피 국민의 진정한 선택을 오래도록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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