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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70대, 수영·스키 즐겨" 줄기세포 임상 해낸 한국인 [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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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김광수 미 하버드 의대 교수

김광수 하버드 의대 교수가 1일 대전 KAIST 원진세포치료센터에서 중앙SUNDAY와 만났다. 김 교수는 KAIST 생명과학과 겸직 석학교수 신분으로, 원진세포치료센터와 함께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김광수 하버드 의대 교수가 1일 대전 KAIST 원진세포치료센터에서 중앙SUNDAY와 만났다. 김 교수는 KAIST 생명과학과 겸직 석학교수 신분으로, 원진세포치료센터와 함께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손발이 떨리고, 행동이 느려진다. 근육이 뻣뻣해지고, 균형을 잡기 힘들어진다. 우울증과 불면증이 찾아온다. 어느새 혼자 서 있을 수 없어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고, 종국에는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치매와 더불어 3대 퇴행성 뇌질환 중 하나로 불리는 파킨슨병의 증세다. 뇌간의 중앙에 있는 뇌흑질의 도파민계 신경세포가 파괴돼 움직임에 장애가 나타나는 질환이다. 미국 전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 전설의 복서로 불리는 무하마드 알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이 이 병으로 고통받았다. 전 세계 1000만 명이 앓는다는 이 병은 고령자에게 주로 생기는 신경계 퇴행성 질환이다. 한국의 경우 고령화 현상과 맞물려 매년 환자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20년 기준 국내 파킨슨병 환자는 11만1311명이다. 아직까지 조기진단도 어렵고 치료제도 없다.

지난해 6월 파킨슨병 환자들에게 한줄기 빛 같은 뉴스가 전해졌다. 한인 과학자가 이끄는 미국 하버드 의대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줄기세포로 임상 치료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환자의 피부 세포를 역분화시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로 만든 뒤 다시 도파민 신경세포로 분화해 뇌에 이식하는 방법이었다. 1817년 영국 의사 제임스 파킨슨(1755~1824)이 학회에 병증을 첫 보고한 이후 200여 년 만에 이뤄낸 성공적인 치료였다. 화제의 주인공은 김광수(67) 미 하버드 의대 교수.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한 후 KAIST 생명과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1998년부터 하버드대 의대 맥린병원에서 분자신경생물학 실험실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난 1일 모교 KAIST에 머무르고 있는 김 교수를 중앙SUNDAY가 만났다.

레이건·마오쩌둥·무하마드 알리도 고통

KAIST에 온 이유가 뭔가.
“지난해 논문 발표 이후 전 세계의 수많은 파킨슨 환자와 가족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중에는 한국에서 온 연락도 많았다. 안타까운 소식들이었다. 미국에서 줄기세포 치료 연구를 하면 미국 밖으로 곧바로 퍼져나가기 힘들다. 나는 아무래도 한국인이다 보니 한국에 줄기세포 치료가 조금이라도 빨리 정착되길 바랐다. 이 때문에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내 차병원과 생명공학연구원 등 몇몇 기관들과 관련 연구에 대한 협업을 해 왔다. 그러다가 4년 전 신성철 전 총장 때 KAIST와 인연을 맺어 석좌교수를 겸임하며 매년 일정 기간 KAIST에 머무르고 있다.”
KAIST와 어떤 협업을 하나.
“미국 하버드대 의대에서 해 온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기도 하고, 한국에서 공동연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도 협의한다. 1년 전부터 KAIST 박사과정 학생을 1년 과정으로 미국 하버드대에 파견해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연구를 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 파킨슨병 첫 임상치료에 성공했다는 환자는 당시 어떤 상태였고,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다.
“나이 70이 된 의사 출신 의료기기 사업가다. 당시 파킨슨병 증상이 중증으로 넘어가는 상태였다. 움직이는 것이 힘들고 손발이 떨렸다. 얼굴에 표정도 잘 나타나지 않는 등 파킨슨병과 관련한 모든 증상이 다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I am dying)”며 자신을 임상치료 대상으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만 해도 동물실험에서는 효과를 봤지만, 사람에게 적용해 본 적은 없었다. 솔직히 부작용이 두려웠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다양한 종류의 성체 세포로 무한대로 증식할 가능성이 있었다. 치료 과정에서 암이 생길 수도 있다. 임상치료가 잘못되면 환자에게도 연구자에게도 불행한 상황이 된다. 하지만 다행히 부작용도 전혀 발생하지 않았고, 치료 후 증세악화가 중단되는 것을 넘어 개선도 됐다. 지난해 발표는 수술 2년 후 결과였다. 이제 4년이 됐다. 이제는 글을 쓰고, 숟가락 드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거의 없다. 수영이나 스키도 하고, 심지어 스쿠버다이빙도 즐기고 있다.  최근 이분 외에도 다른 10명의 환자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처(FDA)에 임상치료를 위한 승인 신청을 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치료 원리가 궁금하다.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일본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유도만능줄기세포 연구가 핵심이다. 생물학에는 도그마가 있다. 정자와 난자가 합쳐져 수정란이 만들어지고, 이게 분열돼 온몸의 다양한 세포를 만드는 거다. 이건 거꾸로 갈 수 없고 한 방향으로만 진행한다. 야마나카 교수는 특정 유전자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이 도그마를 깨고 성체 세포가 거꾸로 초기 배아세포, 즉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게 했다. 이른바 역(逆)분화다. 이게 바로 유도만능줄기세포다. 이 세포는 무한대로 증식할 수 있고, 특정세포로 변할 수 있다. 자신의 성체세포를 이용해 원하는 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면역거부반응도 없다. 기증자를 찾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이 방법으로 도파민 신경세포를 만들려면, 도파민 세포가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연구하면 된다. 세포 분화의 각 단계에서 어떤 단백질이 분비되고 어떤 전사 유전자가 발현되는지를 연구하는 거다. 나는 원래 도파민 신경세포를 연구했는데, 이걸 줄기세포에 적용한 것이다.”
같은 원리로 다른 질병도 치료할 수 있겠다.
“그렇다. 앞으로 엄청나게 많은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분자생물학이 생명과학의 혁명을 낳았듯, 줄기세포가 또 한 번 혁명을 낳을 것이다. 야마나카 교수는 이미 10가지 질병에 도전하고 있다.”
유도만능줄기세포의 문제점도 있다고 들었다.
“유도만능줄기세포가 분화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종양이 될 수 있다. 이게 넘어야 할 숙제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럭비공과 같은 거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를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나는 비록 한 명이긴 하지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치료에 성공하지 못했나.
“그는 나보다 2년 앞선 2017년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한 맞춤형 줄기세포로 눈병에 걸린 환자 두 사람에 대한 임상치료를 시도했다. 환자 한 사람은 부작용은 없었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았고, 다른 환자는 위험할 수 있는 세포 변이가 발생해 중단했다. 이후 야마나카 교수는 특정인을 위한 맞춤형 치료를 위해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적용하겠다는 목표를 포기했다. 일본은 현재 혈액형에 맞춰 줄기세포를 치료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바꿔 말하면 한국도 줄기세포 연구를 더 활성화해 미국·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미국 일정이 바쁘지만, 매년 한국에 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 파킨슨병 환자들은 언제 김 교수 치료의 수혜 대상이 될 수 있나.
“안타깝지만,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는 거의 초보단계다. 야마나카 교수가 파격적인 연구 지원을 받고도 맞춤형 줄기세포를 포기한 이유다. 극복해야 할 장애물도 많다. 나는 목표를 10~20년으로 잡고 있다. 여태까지 줄기세포 연구를 23년간 해 왔다. 그중 유도만능줄기세포 연구는 10년째다. 지금까지 진전 속도를 볼 때 10년 후면 상용화는 아니더라도 희망은 보일 것이다. 물론 많은 연구자가 팀워크를 이루고 이 분야에 몰두할 때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요즘엔 세포치료뿐 아니라 파킨슨병 치료 신약도 연구하고 있다.”
세포치료와 신약은 어떤 차이가 있나.
“치료와 약의 기능이 다르다. 신약이 뇌 속에 남아 있는 신경세포를 더 건강하게 해 주고, 주변 환경을 질병이 아닌 상태로 바꿔 주는 것이라면, 세포치료는 환경을 바꿀 수는 없지만 새로운 도파민 신경세포를 넣어 줘 기능을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 세포치료와 약은 서로 보완적이다.”

요즘엔 파킨슨병 치료 신약도 연구 중

유사한 연구 경쟁이 어디서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나.
“세포치료를 중점으로 연구하는 석학 그룹 모임, ‘G- 포스 PD’라는 것이 있다. 이 분야의 세계적 대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앞서가는 분이 뉴욕 코넬의과대 슬로언캐터링연구소의 로렌스 스튜더 박사다. 인간 배아줄기세포로 도파민 세포를 만들어 파킨슨병 환자를 치료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앞서 말한 일본 야마나카 교수팀은 혈액 타입핑을 맞춰서 도파민 세포를 이식시키는 방법을 쓴다. 두 그룹 모두 임상 1상에 들어갔다. 환자 개인 맞춤형 줄기세포는 우리가 선두에 서 있다. 현재 1상에 들어가기 위한 FDA 승인절차를 밟고 있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대상으로 맞춤형 세포치료를 하다 보니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하고 비용도 문제다.”
인류가 파킨슨병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나.
“파킨슨을 완전히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우리 분야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파킨슨병은 노인병이고, 도파민 신경세포 사멸뿐 아니라 다른 원인도 있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정상적으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심각한 부작용 없이 증상을 획기적으로 완화해 고통스럽지 않고 즐거운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광수

세계 신경생물학과 줄기세포 분야의 대표적인 과학자다.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KAIST 생명과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코넬대와 테네시대 교수를 거쳐 1998년부터 하버드 의대 맥린병원에서 분자신경생물학 실험실 소장 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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