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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반란’…백댄서, 주인공이 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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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호 01면

[SPECIAL REPORT]
백댄서, 주인공이 되다 

지난 10월 26일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한 홀리뱅의 무대. 앞 줄 가운데가 리더 허니제이. [사진 Mnet]

지난 10월 26일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한 홀리뱅의 무대. 앞 줄 가운데가 리더 허니제이. [사진 Mnet]

지난 10일 서울 잠실야구장.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2차전 시구자로 허니제이가 나섰다. 159cm 아담한 체구지만, 웨이브를 타며 ‘꿀 스트라이크’를 꽂는 스웨그가 남다르다. 22년차 댄서로 엔터 업계에서 ‘가수 박재범 백댄서’로 알려졌던 그는 최근 춤 서바이벌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핫피플로 급부상했다. 올 하반기 방송연예계를 강타한 ‘스우파’는 마이너리티의 열정과 도전의 가치를 제대로 조명했고 이에 대한 거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며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다.

원래 ‘댄서’는 엔터업계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방송국 직원으로 각종 쇼 프로그램에 투입돼 가수 뒤에서 얼굴도 제대로 보여지지 않았다. 80년대 말부터 현진영과 와와, 박남정과 친구들처럼 가수와 팀을 이룬 댄서들이 나타났지만, 대기실은커녕 의상과 메이크업조차 제공받지 못했다. 2000년대 이후 가요계를 댄스곡이 점령했어도 댄서의 위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이 ‘스우파’를 통해 세상을 도발했다. 전형적인 미인들로 도배된 대중매체에 센 언니들이 ‘파이터’로 등장해 과격한 춤을 추는 데 대중이 열광한 이유는, 사회적으로 열등한 집단으로 바라보는 억압적 시선을 온몸으로 거부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댄서들의 몸짓에서 자유와 해방의 코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예로부터 전근대적인 굴레를 가장 먼저 극복하는 건 약자들이었다. 마이너리티가 주는 반전의 쾌감이 대중을 매료시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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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우파’ 인기 비결로 흔히 걸크러쉬 리더십과 ‘워맨스’ 서사를 꼽곤하지만, 평범한 옆집 언니같은 사람들이 무대 중심에서 ‘멋짐’을 폭발시키며 고정관념을 파괴한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도 주목할 만하다. 춤이란 막연히 멋지고 특별한 사람이 출 것 같은데, 오히려 춤으로 인해 멋지고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춤추는 사람들’의 시대가 열렸다. 허니제이 뿐 아니라 스우파 출연진들은 광고계를 점령했다. 민낯을 드러낸 그들이 춤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온 삶과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고공에서 춤춘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로 만든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 글로벌 대박의 1등 공신인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예술감독 김보람은 이날치보다 주목받으며 최근 제12회 홍진기 창조인상까지 수상했다.

스우파 우승팀 홀리뱅 클래스를 최근 개설한 온라인 강의 플랫폼 ‘클래스101’은 전년 대비 댄스 클래스 수강자가 3배로 늘었다. 허니제이는 “춤을 사랑하는 분들을 위해 오픈한 온라인 클래스에서 함께 재미있게 춤추고 교감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클래스101 관계자도 “스우파 이후 다양한 연령대가 댄스 클래스를 수강하게 됐다. 댄스가 대중적인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무용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올해로 42회를 맞은 무용인들의 축제 ‘서울무용제’는 2017년부터 ‘무용 대중화’를 외치며 누구나 참여가능한 부대행사 ‘4마리 백조 페스티벌’을 열고 있는데, 지난 5일 최초로 일반인 팀 ‘엄마리나스’가 대상을 공동수상해 화제가 됐다. 한국무용협회 조남규 이사장은 “취미로 춤을 배운 일반인들이 서울무용제 폐막식까지 장식하게 됐다”면서 “축제의 주요 공연들도 빠르게 매진되며 요즘 부는 춤바람을 실감하고 있다. 대중춤과 예술무용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갈 것”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가 억압해온 사회에 엑소더스의 춤판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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