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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37원 받아야 본전인데 15원, 아파트 한 채 날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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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호 03면

위드 코로나 시대 ‘마스크 블루스’ 

한 주에 7000만개 넘게 만들어져 나오는 상품이 있다. 희대의 베스트셀러다. 가격은 높지 않다. 싸게 사면 50원이요, 비싸게 사면 1500원이다. 한때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이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개당 500원이었던 게, 5000원까지 나갔다. 지난해 3~4월, 마스크가 그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시선이 ‘설마’에서 ‘어마어마’로 바뀐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오늘(13일)이면 마스크 착용 의무화 1년이다. 그동안 국민은 하루 평균 8시간 마스크를 착용해 왔다. 평균 2.3일에 한 번 마스크를 갈았다. 다음 달부터 하루 평균 마스크 착용 시간은 줄고, 마스크 교체 주기도 늘어날 전망이다.‘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으로 실외 노마스크가 허용될 가능성 때문이다.

마스크 대란이 벌어진 시절, ‘마스크 5부제’라는 전대미문의 ‘배급제’가 실시 됐다. 누군가 거리에 떨어뜨린 마스크를 집어 탈탈 털어서 썼다는 경험담은 ‘웃픈’ 옛날이야기가 됐다. 당시 영세업자·소상공인들이 마스크 시장에 뛰어들었다. 경기도 고양시의 A씨도 그중 한명이었다. 그는 “괴로우니, 제발 이름은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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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업자·소상공인 마스크 제조 몰려

“말도 하기 싫다. 집 한 채 값을 날렸다.”

지난달 22일, A씨는 철거 인력을 불러 마스크 제조 기계를 빼냈다. 철거 업체는 마스크 공장을 뜯어낸 뒤 고철을 수거해 갔다. A씨는 “수술용(덴탈) 마스크 기계 2대, 보건용(KF-94) 마스크 기계 1대를 들여왔다”며 “사채를 끌어다 썼으니 총 8억원,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을 날렸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경기도 파주의 B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6월 마스크 기계 10대를 중국 업체에 주문했는데, 8월에 공장에 들어왔다”며 “이미 마스크 가격이 안정세로 접어들면서 7월 12일에 공적 마스크 제도가 폐지된 뒤였다”고 말했다. B씨는 이어 “더 이상 마스크를 만들면 오히려 손해라서 팔려고 내놨는데, 한 달째 소식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중국에서 들여온 덴탈 마스크 기계 1대당 가격은 1억7000만원이었다. A씨는 “마스크 기계를 내놨는데, 아는 사람들이 서로 부담된다며 고철 수준으로도 매입하려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마스크 제조업체는 이달 7일 현재 1622곳. 2020년 1월 137곳, 5개월 뒤인 6월 238곳에서 그야말로 ‘폭증’했다. 한국마스크산업협회 관계자는 “패션 마스크 등 공산품을 만드는 업체들까지 합하면 2000곳이 넘는다”고 밝혔다. 식약처가 집계한 업체들은 한주에 쏟아내는 마스크가 11월 첫째 주 기준 7646만장이다. 식약처 인증을 받지 않은 마스크를 포함하면 더 많다. 마스크산업협회 관계자는 “의약외품이 아니라 공산품으로 수출되기도 하고, 수량이 불분명한 묶음 형태로 출고되기도 해서 정확한 실제 수급 통계를 잡기 어렵다”면서 “저가 중국산 마스크가 대거 유입된 상황에서 제조업체가 마스크를 쏟아내니 마스크 공급 과잉 상태인 건 맞다”고 밝혔다. 일부 마트에서는 두부, 소시지 등 상품에 테이프로 붙여 사은품으로 끼워주기도 한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이런 행위는 마스크 수급 불안정을 이용한 판촉 행위라며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B씨는 ‘만들수록 손해’라고 말했다. 매주 마스크 수급 상황을 발표하는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넷째 주 4525원이었던 KF94 마스크의 온라인 가격은 11월 첫째 주 현재 569원이다. 하지만 경기도 화성의 한 업체 대표 C씨는 “원자재 값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KF94 시세가 300원 정도라 출고가 200원은 돼야 본전을 건진다”고 밝혔다. 덴탈 마스크를 만드는 B씨는 “37원에는 나가야 하는데, 업체들이 덤핑하면서 15원 아래로 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난 8월 B씨의 창고에는 700만장의 덴탈 마스크가 쌓여 있었다. 그는 장당 100원에 팔려고 했다. 7억원이다. 하지만 가격이 더 내려가기 전에 팔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에 들어온 건 그가 계획했던 액수의 10분의 1수준인 7500만원이었다. 장당 10~11원에 팔았다는 얘기다.

중국 업체 농간, 수출 물꼬도 늦게 트여

공장과 기계를 정리한 A, B씨와 달리 C씨는 계속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현재 전국의 마스크 제조업체는 1622곳. A, B, C씨 모두 “폐업 신고를 안 해서 그런 수치가 나온 것이지, 실제로는 그 수의 반도 마스크를 만들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마스크 업체의 80%가 사업을 접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업체가 순식간에 몰렸을까. 업계에서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중국 업체의 농간’을 지적한다. A씨의 말을 빌려보자. “중국 업체가 기계를 몇 대 이상 사면 (중국에 수출할) 오더를 준다고 했는데, 그 업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영세업자와 소상공인이 당장의 시장 흐름에 민감한 것도 한몫했다. 경쟁은 자유경제시장 근간이다. 생산자는 이윤을 좀 더 남기기 위해 시장 전체를 조망하기보다 눈앞의 이윤과 경쟁 상대를 생각하기 때문에 생산자의 의도와 달리 사회 전체적으로 폐해를 부를 수 있다. 이를 논리학에서 ‘구성의 오류’라고 한다. B씨는 “우리가 중소기업, 대기업처럼 끈덕지게 버틸 자금과 여유가 없다”며 “되겠다고 싶으면 달려드는 게 영세업자들의 숙명”이라고 밝혔다. 한 대선 후보가 ‘음식점 총량제’를 들고나온 것도 자영업자들이 ‘구성의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근간과 창업이라는 자영업자들의 의지를 제한한다는 논란이 붙었다. 대구의 D씨는 마스크 기계를 철거한 뒤 남은 마스크 1만장을 아는 다른 마스크 제조업체에 넘겼다. 한 장당 10원이었다.

정부의 뒤늦은 수출 제한 해제도 한몫했다고 한다. B씨는 “지난해 7~8월에 마스크 수급 안정이 어느 정도 된 상태에서 10월 들어서야 정부가 수출 금지 전면 해제를 한 점은 업계의 숨통을 너무 늦게 틔워 준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국만 배불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내 마스크 수출이 제한된 상태에서 오히려 중국이 지난해 2200억장, 526억 달러(약 58조 8000억원)어치를 공급하면서 공격적으로 세계 시장을 파고 들었고, 중국 마스크 설비 제조업체들이 두둑한 돈을 챙겼다는 것. 마스크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산 제품과 재료가 국내 시장에서 20% 넘게 파고든 상태이고 최저입찰제를 시행하는 정부·공공기관에서 중국산을 쓴다는 말도 있다”라고 말했다.

석호길(54) 한국마스크산업협회 회장은 “국내 시장 포화 상태에서 마스크 업체가 살 길은 수출”이라며 “투자와 개발은 물론이고, 국가마다 다른 인증 기준을 면밀히 살피고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한 달 새 마스크 제조업체는 4개가 늘었다.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옮긴 마스크 대란, 그들은 준비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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