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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늘고 금리 올라 역대급 실적…4대 금융지주 ‘날갯짓’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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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호 14면

레거시 은행 화려한 귀환 

개인 투자자 이모(53)씨는 약 3개월 전 자신의 선택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8월 말에 이씨가 거금을 들여 새로 투자한 종목은 우리금융지주였다. 석 달 만인 11월 현재 수익률이 25%가 넘는다. 이씨는 “당시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의 상장에 주변에서 ‘기존 은행주(株) 투자는 조심하라’고 했지만, 나는 일시적 열풍에 그칠 걸로 봤다”며 “결국 내 분석이 맞았다”고 전했다. 8월 6일 코스피에 상장한 카카오뱅크의 주가는 그 달에 9만원대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지금은 6만원대에 머물러 있다. 이와 달리 우리금융 외에도 KB·신한·하나 등 4대 금융지주는 모두 연초 대비 주가가 크게 올랐다.

이들 금융지주의 핵심 계열사는 은행이다. 결국 저금리 기조와 성장의 한계로 과거라면 증시에서 별 주목을 못 받았을 기성 은행권, 이른바 ‘레거시 은행’이 화려하게 귀환한 것이다. 주가 상승의 배경은 ‘현재진행형’인 역대 최고의 실적이다. KB금융의 올해 3분기 순이익은 1조2980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1~3분기 누적 순이익도 3조77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1% 증가한 사상 최대다. 신한금융(3조5594억원)과 하나금융(2조6815억원), 비상장사인 NH농협금융(1조8247억원)도 올해 1~3분기 전년 동기보다 20~30%대 증가한 사상 최대 순이익을 달성했다. 우리금융(2조1983억원)은 무려 92.8% 급증했다.

레거시 은행이 이처럼 역대급 호실적을 거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와 관련이 깊다. 유례를 찾기 힘든 유동성 파티에 부동산 등 실물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났고, 이는 고스란히 각 은행의 이자이익 급증으로 이어졌다. 실제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5개 금융지주의 올해 1~3분기 누적 이자이익은 31조314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2.2% 증가했다. 이에 힘입어 다른 영업도 탄력을 받으면서 비(非)이자이익 역시 급증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리 인상 효과로 4분기에도 무난한 호실적이 예상된다”며 “사상 최초로 연 4조원대 순이익 달성에 성공하는 금융 그룹이 등장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말했다.

사실 레거시 은행은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 이후 이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론에 휩싸인 바 있다. 오프라인 영업점을 통한 대면 거래 대신, 모바일과 PC 등을 통한 100% 비대면 거래로 승부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방식이 신규 유입이 많은 20·30대에게 훨씬 잘 통하는 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져서다. 그러나 레거시 은행도 공을 들인 비대면 채널 강화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어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구관이 명관’인 모양새다.

물론 레거시 은행처럼 역대급 유동성 파티의 영향을 받은 인터넷전문은행도 실적 개선에는 성공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올 1~3분기 순이익은 1679억원으로 전년 동기(895억원)보다 95.6% 증가했다. 케이뱅크도 84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1~3분기엔 -703억원이었다. 지난달 출범한 토스뱅크 역시 이들의 뒤를 이어 시장에 연착륙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문제는 가뜩이나 레거시 은행과의 경쟁에서 규모로 밀리는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이던 폭발적 성장세를 순조롭게 유지할 수 있느냐다. 최근만 놓고 보면 오히려 성장성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특히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큰 걸림돌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가계대출 잔액의 연간 증가율을 6% 선으로 묶기로 하면서 각 인터넷전문은행에 중저신용자(신용등급이 4~6등급으로 하위 50%인 차주) 대출 비중을 2023년 말까지 30% 이상으로 확대할 것을 지시했다.

중저신용자 혜택을 늘리라는 얘기인데, 기업대출 없이 가계대출만 취급할 수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으로선 일반 가계대출을 최대한 줄이라는 얘기여서 사실상 규제로 읽힌다. 특히 중저신용자 대출은 예대마진(대출 이자에서 예금 이자를 뺀 나머지)이 높지만 비례해서 연체 위험도 큰 편이다. 대손충당금 전입액이 늘면서 수익성이 나빠지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카카오뱅크만 해도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확대하면서 올해 1~3분기 대손충당금이 598억원 쌓였다. 전년 동기보다 70%가량 급증한 수치다.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3분기 말 기준 228%에 달했다.

한국은행은 9월에 낸 보고서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2023년까지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계획대로 확대할 경우, 내년부터 연체율이 1.7~2.2% 상승할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보다도 내년과 내후년이 더 문제라는 얘기다.

그런데 지난해 말 인터넷전문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은 12.1%로 국내 은행 평균치(24.2%)의 절반에 그쳤다. 올해 3분기까지도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은 각각 13.4%, 15.5%였다. 두 은행은 이를 연말까지 20.8%, 21.5%로 확대해야만 2023년 말 30%대 달성에 다가설 수 있다. 그러려면 올해 4분기엔 중저신용자 대출에 사실상 ‘올인’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레거시 은행은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한다는 명분 아래, 가산금리를 높여 수익성을 한층 키우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온라인 홈페이지에 은행권의 가산금리 폭리를 막아달라는 국민청원 글까지 올라왔을 정도다.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에 대해 “정부가 강제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차주들이 일정 조건을 충족해서 금리인하요구권 청구나 대환대출(고정금리로 갈아타는 것)로 대응할 수 있다”며 “이를 모르는 경우도 많으므로 정부가 적극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레거시 은행이 내년에도 올해 같은 역대급 호실적 달성을 재현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이들한테도 더 영향을 미칠 것인 데다, 코로나19 금융지원이 종료되면 재무 건전성 악화라는 성적표가 남게 돼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은행권의 대출 증가율(전년 대비)이 올해 8.3%에서 내년 5.2%로 하락하는 한편, 전체 순이익도 올해 17조9000억원에서 내년 16조8000억원으로 1조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은행주 투자자라면 이를 참고해서 향후에 대응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코로나 피해 기업, 내년 부실 가능성…은행 재무 건전성 강화 시급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중앙포토]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중앙포토]

역대급 호실적 덕에 미소로 연말을 보낼 레거시 은행이지만, 내년부터는 ‘위드 코로나’ 후폭풍에 고민이 다시 커질 전망이다. 일단 내년 3월 소상공인 등에 대한 코로나19 금융지원, 즉 대출의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치가 완전히 종료된다. 그러면서 은행권의 재무 건전성도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차주들의 채무 상환 능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어서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1실장은 지난 8일 대외 세미나에서 “은행권 대손충당금이 내년엔 올해보다 2조원가량 늘어난 8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당국도 이를 우려하면서 은행권의 각별한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노영후 금융감독원 건전경영팀장은 “현재 은행업 지표엔 정책 자금 지원과 만기 연장, 상환 유예 등에 따른 부실 리스크가 일부 감춰졌을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며 “코로나19로 피해가 컸던 한계 기업이나 취약 기업의 부실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코스피에 상장한 카카오뱅크. [뉴시스]

지난 8월 코스피에 상장한 카카오뱅크. [뉴시스]

최근 국내 금리 인상과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여파로 산업계 전반에서 영업비용도 급증한 상황이다. 취약·한계 기업들엔 엎친 데 덮친 격이라 부실 위험성이 한층 커졌다. 금융권이 경영의 고삐를 바짝 죄고 위드 코로나에 따른 리스크 최소화에 미리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재무 건전성 강화를 위해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중요성이 더욱 커질 디지털 전환에도 계속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당장은 은행업에선 인터넷전문은행과의 대결에서 압승했지만,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금융업 전반에 대한 공습은 날로 기세를 더하고 있다. 예컨대 간편결제 플랫폼을 앞세운 네이버파이낸셜은 올 2분기 거래액이 9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2% 급성장했다. 경쟁사 카카오페이도 3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한 22조원가량의 거래액으로 순항 중이다.

결국 기성 금융권도 시대적 흐름에 맞게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정면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기업분석파트장은 “기성 금융권은 아직도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문화를 가졌다”며 “기술로 빅테크를 이기려 하기보다 고객이 뭘 원하는지 맥락을 파악해 스토리텔링이 있는 금융 서비스 중심의 디지털 전환으로 승부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연준 금융위원회 은행과장은 “레거시 은행이 영업방식과 사업 모델 등에서 변화할 수 있게 재교육을 진행하고, 빅테크와의 협업 구조 조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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