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도장깨기’ 해보니 알겠더라, 부끄러움은 순간이란 걸”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13 00:20

업데이트 2021.11.13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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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호 11면

[SPECIAL REPORT]
백댄서, 주인공이 되다

2020년 마포 거리에서 열린 탭댄스 페스티벌. [사진 마포문화재단]

2020년 마포 거리에서 열린 탭댄스 페스티벌. [사진 마포문화재단]

트로트 열풍이 잦아드니 이번엔 춤바람이다. 춤 구경의 재미를 넘어서서 너도나도 춤을 춰보고 싶다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실 ‘바람’이란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 분야는 단연 춤이다. ‘음악바람’ ‘그림바람’, 이런 말은 없지 않은가. 스스로 해보면 정신 못 차리게 즐거운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연극을 직접 할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데, 조금 더 끈적하고 쌉싸름한 맛이 강하다. 그래서일까. ‘연극은 마약’이란 말이 있다).

춤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아야

남들 앞에서 장기자랑으로 노래를 하듯 스스럼없이 춤출 수 있는 세대는 여태껏 1990년대생 이하였다. 댄스뮤직이 주류를 장악한 1990년대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어릴 적부터 K팝 댄스를 몸에 익혀온 세대다. 이전 세대는 모여서 놀 때 기타 치고 함께 노래하는 게 익숙했다면, 이 세대부터는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춤추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전에도 춤추는 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엄근진’(엄숙·근엄·진지) 조선시대 선비도 춤추기를 즐겼는데 그게 사라질 리가 있겠는가. 농촌 마을에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추던 마구잡이춤이 외래 춤사위와 뒤섞여 관광버스 춤이 되고, 뮤직홀에서 발바닥을 비비던 트위스트가 고고장과 디스코장의 춤이 되는 식으로 춤 종목은 유행 따라 변했지만, 어쨌든 집단으로 모여 몸을 흔들고 춤추는 문화는 늘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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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커플댄스가 유독 따가운 시선을 받기는 했다. 일제강점기 모던보이들이 카페에서(당시 조선에는 댄스홀이 존재하지 않았다) 여급·기생들과 추는 정도였던 커플댄스는, 광복 후 미군 진주와 함께 차차차·맘보·탱고 등을 즐기는 엄청난 춤바람으로 이어졌다. 54년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은 날라리 여대생만이 아니라 점잖은 대학교수 부인들까지 댄스를 즐기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박정희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이런 댄스를 때려잡으며 윤리성과 건전함을 과시했다. 이때부터 이런 춤은 밤에만 영업하는 캬바레의 전유물이 됐고, 대낮에 춤추고 싶은 욕망은 불법적인 주간영업을 이용하는 ‘장바구니 캬바레’의 음습한 문화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다고 남녀가 쌍을 이루는 춤이 사라질 리 없다. 60년대 이후 청년단체 등에서 시작한 포크댄스는 건전한 춤으로 여겨져 교회·학교까지 보급되었지만, 실상 남녀가 몸을 접촉하며 움직이는 즐거움도 만만찮았음은 부인할 수 없다. 결국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댄스스포츠가 건전한 스포츠이자 오락으로 조명받기 시작했고, 영화 ‘더티 댄싱’ 등의 영향을 받으며 90년대 살사댄스가 젊은이들의 새로운 취미로 부상했다. 지금은 콜라텍에서 사교댄스를 즐기는 중노년 인구가 엄청나며, 댄스스포츠와 살사, 스윙댄스와 알헹땅고(아르헨티나탱고) 등 온갖 커플댄스 동호회가 성행하고 있다.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꼭 커플댄스만 향한 것은 아니었다. 70년대 고고장과 80년대 디스코장, 90년대 록카페와 헤드뱅잉이 난무하는 록 공연장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청(소)년들은 어른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들만의 춤을 즐겼고, 어른들은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그 어른들도 흥이 나면 관광버스에서도 몸을 흔들고 운동과 다이어트를 빌미 삼아 춤을 추었다. 그 유행이 70년대 에어로빅댄스에서 출발해 지금은 줌바댄스에 이르렀다.

이토록 우여곡절을 겪어온 한국의 대중춤 흐름을 생각하면 지금의 열풍은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TV방송에서까지 이토록 대중춤을 중요하게 다루게 된 것은 90년대 이후 댄스음악이 최고의 중심 장르로 자리한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서태지와아이들에서 H.O.T를 거쳐 BTS에 이르는 30여 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고, 2000년대 이후 힙합이 급격히 성장하며 한국의 비보이·비걸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게다가 브레이킹이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다니 그 모태인 스트릿댄스를 무시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보아야 한다.

가장 ‘야한’ 춤은 훌라 아닌 왈츠

영화 ‘쉘 위 댄스’. [중앙포토]

영화 ‘쉘 위 댄스’. [중앙포토]

물론 춤추는 것이 민망한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춤추기를 권해도 “취미도 소질도 없다”고 도리질 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소질과 취향을 개발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도 적잖을 것이다. 최근 SBS ‘골 때리는 그녀들’과 김연경 열풍을 계기로 여자들이 축구와 배구를 배우면서, 여자들이 구기에 취미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공을 차거나 때릴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권해본다. 자신에게 맞을 듯한 춤을 하나 골라잡아 두어 달 배워보시라고. 나는 8~9년 전, 오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운동 삼아 춤을 배우기 시작해 여러 종목을 돌아다니며 배우고 있다. 댄스스포츠에서 자이브, 룸바, 차차차, 삼바, 왈츠, 탱고를 배웠고, 이집트의 벨리댄스, 스페인의 플라멩코에 이르렀으며, 살사와 탭댄스, 하와이의 훌라도 조금씩 맛보았다. 마치 맛집 순례처럼 ‘도장깨기’ 같은 재미랄까, 춤으로 세계여행하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여러 나라 민속춤을 배우다 보니 인도나 동남아의 춤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까지 샘솟는다.

춤을 고를 때 주의할 점은 눈에 보이는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보는 춤과 추는 춤은 꽤나 다르다. 예컨대 발레는 하나도 힘들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가볍게 날아다니는 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보이기 위해 근육을 엄청나게 늘이고 관절을 비틀며 버티는 아주 전문적인 춤이어서 성인이 되어 시작하면 흉내조차 못 낸다.

또 골반을 흔드는 벨리댄스나 훌라는 음란해보이고 왈츠는 정숙해보인다는 느낌도 편견이다. 막상 추어보니 제일 심하게 ‘야한’(남녀의 심한 신체접촉이란 점에서) 춤은 왈츠였다. 여자 수강생밖에 없는 연습실에서 배를 드러내놓고 골반 흔드는 게 뭐 그리 대수랴. 부끄러움은 순간, 오히려 생전 처음 격하게 골반과 복부를 움직였더니 변비가 사라졌다는 간증을 늘어놓으며 깔깔거린다. 초보 일반인인 내가 감히 춤에 대한 책을 쓴 것도 직접 몸으로 배워보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해보는 수밖에 없다. 해봐야 자기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춤추기의 가장 큰 성과는, 자기 몸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몸과 대화하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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