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다가올수록 이해찬 전 대표에 대한 등판 요구는 더 커질 것이다.”
최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윤석열 대선 후보 선대위 합류 여부가 정치권 화두로 떠오르자 더불어민주당에선 ‘이해찬 등판론’이 힘을 얻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의 의원은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전 위원장의 경륜과 전략에 맞대응할 수 있는 민주당 인사는 이 전 대표가 거의 유일하다”며 “만약 선거 전략에 차질이 생기거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면 이 전 대표도 역할을 마다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과 이 전 대표는 1988년 13대 총선 서울 관악을 후보로 맞붙은 이후 33년간을 ‘맞수’로 만났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였던 김 전 위원장이 이 전 대표를 총선 공천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선 두 사람이 양당의 ‘선거 사령탑’으로 맞붙었는데 민주당이 180석을 얻으면서 이 전 대표가 완승을 했다. 이번 대선서도 두 사람이 ‘캠프 전략가’로 맞붙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민주당에선 “올드보이들의 마지막 대결”(수도권 재선)이란 말도 나온다.
“격한 반응 극도로 조심” 이재명에 조언한 이해찬
이 전 대표는 현재 민주당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상임고문은 당 원로로서 선대위에 이름을 걸쳐놓는 ‘명예직’에 가깝다. 당내엔 "이 전 대표에게 중책을 권했지만 ‘대선 초반에 내가 나서면 당내 분란이 생길 수 있다’며 사양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대목에서 이미 ‘명예직’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장동 의혹’이 화두였던 경기도 국감(10월 18·20일)을 앞두고서였다. 이 전 대표는 당시 이재명 후보를 돕던 자신의 측근 의원들에게 “답변 내용보다 태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야당 의원 공세에) 격한 반응을 하는 것은 조심하시는게 좋겠다”는 말을 이 후보에게 전하게 했다고 한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초선 의원은 “이 전 대표가 이 후보를 존중하는 마음에 직언보단 우회적으로 조언한 것인데 이 후보도 경청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황교익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 논란이 일자 황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그를 자진사퇴하도록 설득한 이도 이 전 대표였다. 이 전 대표는 경선 레이스 초반엔 자신과 가까운 김성환·이형석·이해식·강준현 의원 등에게 “이 후보를 돕는게 좋겠다”고 권하기도 했다.
이렇게 막후 조언자나 막후 연출자로 역할해 온 이 전 대표에 대해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이 후보의 지지율 정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카드에 맞서 민주당도 뭔가 새로운 계기를 도모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민주당 선대위 본부장급 의원은 “선대위가 구성됐지만 의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선거 경험이 많은 이 전 대표가 나서서 분위기를 다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대위 부본부장급 의원은 “비주류 출신의 송영길 대표는 당의 구심점이 되긴 아쉬운 점이 있다. ‘친노·친문’ 좌장인 이 전 대표가 나서서 지지층 분열을 봉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찬 이어 유시민 등판론에 “중도표 이탈” 우려도
반대로 당내에선 “이 전 대표의 등판이 중도층의 이탈을 가속할 것”(서울권 중진)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역할이 커진 이 전 대표가 유권자 눈에 자주 보이면 표 확장을 해야하는 이 후보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직전에도 이 전 대표는 친여(親與) 방송인 김어준 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서 “요새 돌아가는 것을 보니 거의 이긴 것 같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해 논란을 불렀다.
최근엔 이 전 대표와 함께 그와 가까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노무현 재단 이사장직을 관둔 유 전 이사장은 민주당 중앙선대위에는 합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12일 자신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이 후보와의 대담하는 등 ‘이재명 띄우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차기 대선이 ‘49 대 51’로 다투는 총력전 양상으로 흘러가면서 이 전 대표 등 여권 인사들의 역할론이 커지는 것”이라며 “이 전 대표나 유 전 이사장이 대선 화두를 던질 ‘스피커’ 혹은 이 후보의 ‘멘토’로 적절히 역할한다면 표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지만 너무 나가면 후보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