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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중국 왕조 붕괴, 지구 곳곳 화산 분출 탓?

중앙일보

입력

일본 규슈 구마모토(熊本)현의 활화산 아소 산이 지난달 20일 분화해 화산재가 연기처럼 솟구치고 있다. 해발 1506m의 나카다케(中岳) 제1 화구에서 분출된 화산재는 3500m 높이까지 분출됐으며, 당국은 주변 2㎞ 출입을 막았다. [EPA]

일본 규슈 구마모토(熊本)현의 활화산 아소 산이 지난달 20일 분화해 화산재가 연기처럼 솟구치고 있다. 해발 1506m의 나카다케(中岳) 제1 화구에서 분출된 화산재는 3500m 높이까지 분출됐으며, 당국은 주변 2㎞ 출입을 막았다. [EPA]

발해 왕조가 멸망한 것이 백두산이 불을 뿜은 탓이란 국내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중국 역대 왕조의 붕괴가 지구 곳곳에서 발생한 화산 분화 탓일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중국 저장대학과 미국 럿거스 대학, 아일랜드 과 중국 저장대학 등 국제 연구팀은 11일(미국 현지 시각) '지구·환경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s Earth and Environment)'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화산 폭발이 황산 구름을 생성하고 기후를 변화시켜 중국 왕조의 붕괴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필리핀 화산 폭발 당시 이산화황 가스 이동 모습. [미항공우주국( NASA)]

지난해 1월 필리핀 화산 폭발 당시 이산화황 가스 이동 모습. [미항공우주국( NASA)]

화산 폭발은 수백만 톤의 이산화황을 배출, 에어로졸을 형성하고 햇빛을 차단하는 구름을 만들어 기온을 떨어뜨리고, 농업에 영향을 미쳐 작물 수확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전쟁과 갈등을 더 많이 일으켜 결국 왕조가 무너지기 쉽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린란드 빙하로 분화 시기 알아내 

화산과 중국 왕조 붕괴 관련성. 위 그래프는 서기 1~1000년, 아래 그래프는 서기 1000~2000년 사이의 변화를 나나낸 그림이다. 그림에서 파란색 수직 점선은 왕조가 붕괴한 시기, 붉은색 원은 화산 분화의 시기이고, 원의 크기는 분화의 규모를 나타낸다. 갈색 수직 점선은 전쟁의 빈도를 나타낸 것이고, 짙은 갈색선은 전쟁의 빈도를 10년 단위로 평활화한 것이다. [자료: COMMUNICATIONS EARTH AND ENVIRONMENT, 2021]

화산과 중국 왕조 붕괴 관련성. 위 그래프는 서기 1~1000년, 아래 그래프는 서기 1000~2000년 사이의 변화를 나나낸 그림이다. 그림에서 파란색 수직 점선은 왕조가 붕괴한 시기, 붉은색 원은 화산 분화의 시기이고, 원의 크기는 분화의 규모를 나타낸다. 갈색 수직 점선은 전쟁의 빈도를 나타낸 것이고, 짙은 갈색선은 전쟁의 빈도를 10년 단위로 평활화한 것이다. [자료: COMMUNICATIONS EARTH AND ENVIRONMENT, 2021]

연구팀은 그린란드와 남극대륙 빙하에서 코어(core, 원통 모양의 얼음 기둥)를 채취해 얼음 층별로 황산염 농도를 분석, 지구 상에서 화산 분화가 일어난 시기를 추정했다. 서기 1년부터 1915년까지 156번의 화산 폭발의 시기를 특정했다.

연구팀은 또 중국 기록을 토대로 68개 왕조의 멸망 시기를 찾아냈다. 여기에는 한족 왕조뿐만 아니라 거란족이 세운 요(遼) 왕조까지도 포함했다.

연구팀은 다양한 통계 분석을 통해 화산 분화와 왕조 붕괴가 우연의 일치를 벗어나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우선 왕조가 붕괴한 해를 기준으로 10년 전부터, 붕괴한 해, 붕괴 2년 후까지 13년을 분화 영향 시기로 삼았다. 화산 분화가 기후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왕조 붕괴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10년 전까지 범위를 정했다. 또, 빙하 코어를 바탕으로 정한 분화 시기에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연도에서 ±2년의 여유를 준 것이다.

이 13년 동안에는 평균 7.5회 정도의 화산 분출이 나타났다. 이에 비해 왕조가 붕괴한 해보다 23년 전부터 11년 전 사이의 13년 기간에는 화산 분출이 5.8회로 적었고, 왕조 붕괴 후 3~15년 사이 13년 기간도 5.2회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규모 분화는 안정된 왕조까지 무너뜨려 

대서양의 스페인 영토인 카나리아 제도 라팔마 섬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흘러내리고 있다.흐릅니다. AP=연합뉴스

대서양의 스페인 영토인 카나리아 제도 라팔마 섬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흘러내리고 있다.흐릅니다. AP=연합뉴스

연구팀은 또 서기 850년부터 1911년 사이 전쟁의 빈도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왕조 붕괴 전 수십 년 동안 전쟁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왕조가 붕괴한 해에는 전쟁 빈도가 극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이다. 또, 왕조 붕괴 후 1~2년 동안은 전쟁이 계속되지만, 그 이후에는 전쟁 빈도가 크게 떨어졌다.

특히, 커다란 화산 분화가 발생한 경우 전쟁 빈도가 갑작스럽게 치솟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연구팀은 "정치와 사회경제적 스트레스가 높은 경우 작은 화산 분화에도 왕조가 붕괴할 수 있고, 사회적 스트레스가 없는 경우에도 커다란 분화가 있으면 왕조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1368년 붕괴한 원(元) 왕조의 경우 화산 분화보다는 계속된 전쟁 탓으로 해석됐다. 반면 1211년 서요(西遼)의 붕괴와 946년 후진(後晉)의 경우 붕괴 전에는 뚜렷한 전쟁이 없었지만, 갑작스럽게 전쟁이 벌어지고 왕조가 붕괴했는데, 이는 화산 분화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125년 요(遼) 왕조의 붕괴는 전쟁과 화산 분출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탓으로 분석됐다.

1644년 멸망한 명(明) 왕조는 1644년 화산(필리핀 파커 화산으로 추정)의 분화가 영향을 줬을 것으로 연구팀은 설명했다. 1637년에도 북반구에서 분화가 있었고, 이때 이미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1644년 분화가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하늘이 군주를 버린 것으로 간주해

지난 2018년 6월 과테말라 푸에고 화산이 폭발해 65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다쳤다. 로스 로테스 마을이 화산재에 뒤덮혀 있다. [신화사]

지난 2018년 6월 과테말라 푸에고 화산이 폭발해 65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다쳤다. 로스 로테스 마을이 화산재에 뒤덮혀 있다. [신화사]

연구팀은 화산 분화가 전쟁과 왕조 붕괴로 이어진 이유에 대한 설명도 시도했다.
연구팀은 "중국에서는 주(周) 왕조 때부터 하늘의 명령이라는 '천명(天命)' 사상이 있었고, 권력을 남용하거나 백성을 실망하게 한 통치자는 하늘의 승인이 취소된다는 주장이 전해 내려왔다"며 "화산 분화로 사회적 스트레스가 만연했을 때 실적이 저조한 왕조에 경쟁자들이 도전해 대체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20세기 이후에는 과거보다 화산 분화의 영향이 적은 편이었지만, 1970~90년대에 사헬 지역(사하라 사막의 남쪽 주변)에서 가뭄을 초래해 약 25만 명이 사망하고, 10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의 원인이 분화 탓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미래의 화산 분화는 인류가 일으킨 기후변화와 맞물리면서 인구가 많고 가장 소외된 지역의 농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발해 멸망 6년 전에 큰 화산 분화 확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편, 연구팀이 제시한 보충 자료를 한국 역사에 대입할 경우에도 비슷한 해석은 가능하다.

서기 660년 백제, 서기 668년 고구려 멸망에 앞선 657년에 그린란드 빙하 코어에서 화산 분화가 확인됐다. 발해가 멸망한 926년보다 10년 앞선 916년에 비교적 큰 규모의 화산 분화가 있었다.

935년 통일신라가 멸망하기 전인 929년과 1392년 고려가 망하기 전인 1389년, 조선 왕조가 일제에 강점당한 1910년보다 2년 앞선 1908년에도 중규모의 화산 분화가 있었다.

이와는 달리 발해의 멸망 원인으로 백두산 분화가 유력하게 추정되는 것은 일본까지 날아가 쌓인 백두산 화산재 등 구체적인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 쪽 장군봉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중앙포토]

북한 쪽 장군봉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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