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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억 번 LH직원 무죄…"커서 LH직원 될래요" 분노 부른 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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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3월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9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남천규)로부터 1심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은 LH 직원 A씨와 그의 지인 2명 등 3명이다. 기소된 혐의는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이었다.

100억 땅 부자 된 LH 직원의 무죄 

LH의 개발 사업 관련 비밀을 미리 알고 투자해 부당한 이득을 얻었는지가 쟁점인 사건이었다. 실제로 A씨 등은 25억원을 주고 산 광명시의 땅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던 지난 4월 102억원으로 4배가 됐다고 한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비난 여론이 커지자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발본색원하겠다”며 대대적인 수사를 약속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무죄 판결은 정부와 수사 당국에는 당혹스러운 결과다. 2030이 주로 모이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11일 “전 커서 LH 직원이 될래요” “이게 나라냐” 등의 비난 글이 쇄도하고 있었다. “투기 잡는다고 온갖 난리를 다 떨더니 결과는 겨우 이거냐”며 검·경의 수사 능력을 탓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법원이 이날 판결문에서 밝힌 무죄 판단의 이유는 ‘증언의 증거능력’과 ‘내부정보가 기밀이었는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번복된 자백, ‘특신상태’ 인정 못 받아

우선 법원은 “피고인의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특신상태)’ 아래에서 행해졌음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수사 과정에서 자백했던 피고인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는데, 이에 조사 경찰관을 법정에 부른 법원이 ‘특신상태’에서의 자백으로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 중 한 명은 주거지와 배우자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당한 직후 2시간 만에 경찰서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변호인이 동석하지 않는 등 압수수색과 경찰 조사가 이뤄진 경위·시간 등에 비춰보면 변호인 조력을 받을 기회가 실질적이고도 충분히 보장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영상녹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라고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 관계자는 “특신상태는 다툼의 소지가 있어 꼼꼼히 대비해야 하는데 법리 검토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무리하게 여론에 휩싸여 성급하게 수사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여론에 쫓겨 성급하게 수사했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본부.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본부. 연합뉴스

특신상태를 인정받지 못한 것과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경찰 진술 내용을 피의자가 부인하면서 경찰관이 당시 피의자가 어떤 상황에서 진술했는지를 법정에 나와 말했는데, 피의자가 자발적·임의적이지 않았다고 법원이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특신상태가 아예 없다는 게 아니라 합리적으로 의심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 판단”이라며 “법원이 너무 엄격하게 본 부분을 항소심에서 다투겠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특신상태가 부정된 것과 관련해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검찰과 경찰 측은 “강압은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항소 방침…“기록 검토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이 기밀이라고 판단한 ‘TF 킥오프 회의’에서 나온 LH의 개발 관련 정보에 대해서도 법원은 “투기를 일으킨 결정적인 기밀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 재판부는 “A씨가 킥오프 회의 전에 이 사건 정보를 알게 됐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수사 핵심 요소를 인정받지 못한 판결에 대해 일각에선 검찰과 경찰이 정부의 압박에 쫓겨 엉성하게 수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항소 방침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특신상태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한 기록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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