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병대 상륙공격헬기 등 11개 무기도입 사업의 사업타당성조사(사타)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 데도 해당 사업들을 내년도 예산에 반영한 것으로 11일 나타났다. 사타 결과 보고를 앞두고 이뤄진 최종 토론회에선 상당수 사업이 타당성이 없거나 조건부로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온 상태에서다.
이들 11개 사업의 총사업비는 9조9604억원 규모로 주무 부처인 방위사업청은 내년도 예산으로 3907억원을 책정했다. 이를 놓고 군 안팎에선 “내년 5월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사업 변경을 못 하게 일종의 ‘알박기 예산’을 태운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실이 방사청 제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부가 사타 결과도 없이 국회에 예산 심의를 요청한 무기도입 사업은 11개다. 관련법에 따라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인 신규 무기도입 사업은 모두 사타 대상이다.
정부 지침(기획재정부의 ‘국방사업 총사업비 관리지침’)대로라면 10월까지 사타 결과가 나오는 사업에 한해 다음 해 예산 편성에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사타를 주관하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연구계획에 따르면 이들 사업 중 5개 사업의 연구 종료일은 오는 12월 31일, 나머지 사업은 내년 2~4월이다.
특히 방사청의 각 사업팀이 예산요구서를 작성하거나(3월), 기재부에 제출하던(5월) 시기엔 모든 사업이 사타 시작 전이거나 착수 토론회조차 하지 않았던 상태였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당초 계획보다 1~5개월 앞당겨 실시한 최종 토론회를 토대로 내년도 예산에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종 토론회 결과도 석연치가 않다. 한기호 의원실에 따르면 8개 사업의 경우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거나 ‘조건부 타당’ 결론이 나왔다. 특히 이런 사업들 가운데는 해병대 상륙공격헬기처럼 그간 군 안팎에서 도입 방법 등을 두고 논란이 불거진 사업들이 포함돼 있다.
국내 개발(기동헬기인 수리온 기반 개량형)로 방향을 정한 상륙공격헬기(내년도 예산 981억원 편성)는 최종 토론회에서 핵심 무기인 공대지 유도탄(천검)의 장착 가능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등의 지적이 나왔다. 앞서 지난해 10월 당시 이승도 해병대사령관이 국회에서 “공격헬기다운 공격헬기를 달라”며 바이퍼ㆍ아파치 등 검증된 공격헬기의 도입을 주장한 바 있다.
기뢰 제거 작전의 핵심 전력인 해군 소해헬기(544억원 편성) 역시 최종 토론회 결과 타당성을 놓곤 이견이 제기됐다. 상륙공격헬기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수리온 기반 개량형을 제시하고 있지만, 성능과 총사업비 측면에서 국외 구매가 유리한 것으로 분석되는 등 보다 정밀한 검증이 요구되고 있다.
또 수직이착륙형 정찰용 무인항공기(31억원 편성)의 경우 최종 토론회에서 “타당성 미확보” 결론이 나왔다. 토론 결과 “사업 추진 계획을 보완한 이후 사업 추진 여부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정부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사타를 착수하지도 않은 사업을 기재부가 협의해준 것 자체가 자신들이 만든 지침을 스스로 어긴 꼴”이라며 “역대 정부를 통틀어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고 말했다.
예산 심의가 한창인 국회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에는 방사청이 사타가 완료되지 않은 사업에 대해 국회 심사 단계에서 예산 증액 시도를 하다가 여당 의원(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의원)으로부터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 한기호 의원은 “방사청이 정부 지침과 국회 지적까지 어겨가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무리하게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국회 예산 심사에서 엄정하게 점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