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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기후재앙과 나비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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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현철 정책디렉터

최현철 정책디렉터

‘나비효과’란 용어를 맨 처음 쓴 사람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스다. 그는 기상 시뮬레이션을 하던 중 초깃값을 넣을 때 정확한 수치인 0.506127 대신 소수점 넷째 자리에서 반올림한 0.506을 사용했더니 완전히 다른 기후 패턴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1972년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면서 나비효과는 사소한 차이가 의도치 않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지칭하는 보편적인 용어가 됐다.

최근 벌어진 요소수 대란을 보면서 나비효과가 딱 어울리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한 것이다. 호주가 미국 주도의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에 가입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였다. 마침 중국이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석탄 생산을 줄이던 시점과 맞물리면서 대대적인 석탄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전기마저 모자라고, 석탄에서 추출하는 요소 생산도 원활하지 않게 되자 중국은 지난달 사실상 요소 수출을 막아버렸다.

‘쿼드’ 보복이 한국 물류대란 유발
성과 없는 COP26은 혼란 부추겨
“곧 재앙 보게 될 것” 점차 현실화

국내에선 2011년 마지막 요소 공장이 문을 닫았다. 원가 경쟁력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그 무렵 ‘녹색성장’이란 구호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솔린 차량보다 상대적으로 적다는 ‘클린 디젤’에 꽂혔다. 디젤차를 친환경 차량으로 분류해 보조금까지 주기 시작했다. 2015년 폭스바겐 등 자동차 회사들이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클린 디젤은 희대의 사기극으로 끝났다.

하지만 한번 탄력을 받은 국내 디젤차 판매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대부분 유럽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6에 맞추기 위해 선택적 촉매환원기술(SCR)이 적용된 차량이다. 여기에 촉매로 쓰이는 것이 요소수다. 쿼드와 녹색성장, 클린 디젤이 물류대란으로 귀결될 것이란 상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김회룡기자

김회룡기자

요소수 사태가 안타까운 다른 이유도 있다. 최근 중국이 기존에 계약한 요소 물량을 보내주기로 하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일 기미가 보인다. 중국의 조치는 자국 내 석탄 생산이 늘면서 전력난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요소 가격도 안정을 찾기 시작하면서 나왔다. 현재 중국은 전력생산의 72%를 석탄 발전에 의존하고 있고, 당분간 줄일 계획도 없다. 중국이 기후 악당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는 물류가 멈출 위기에 처하자 기후 악당이 악당 짓을 더 하기를 은근히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버렸다.

기후재앙을 막기 위한 국제적 노력의 과정엔 이같은 나비효과가 무수히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COP26)를 전후해 이런 조짐이 한층 도드라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 COP26 정상회의에서 전임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이 파리협약에서 탈퇴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그런 바이든이 국제 유가가 오르자 자국 내 석유 생산을 늘리라고 독촉하고 있다. 앞뒤가 안 맞는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하룻밤 사이에 화석 연료를 재생 에너지로 바꿀 순 없다”는 옹색한 변명을 내놨다.

12일 폐막을 앞둔 COP26은 내내 혼란스러웠다. 첫날 정상회담엔 현재 탄소 배출 1위와 4위인 중국과 러시아 정상이 불참했다. 인도네시아 환경 장관은 2030년까지 산림 벌채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에 자국 대통령이 합의한 다음 날 “(합의는) 부적절하고 불공평하며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약속할 순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도 혼란한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 선진국은 2030년대까지, 개도국은 2040년대까지 석탄발전을 중단한다는 선언에 덜컥 서명하면서다. 당장 2050년까지 중단한다는 당초 계획보다 10년 앞당긴 것이란 해석이 나왔지만, 정부는 “취지와 방향성에 공감한 것일 뿐”이라며 얼버무렸다.

COP26을 주관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으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1.1도가 올라있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30년대에 마지노선을 넘을 것이란 비관론이 과학자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물론 기온 상승이 1.5도를 넘어 회복 불가능의 영역에 들어서도, 모든 곳에 똑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나비 날갯짓 정도일 수 있고, 다른 지역에서는 토네이도급 위력일 수도 있다. 기후재앙의 무서움은 그게 어디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남은 생애 동안 재앙을 보게 될 것”이라는 IPCC 보고서 참여 과학자들의 경고는 점점 현실이 돼가고 있는 것 같다.